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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관 고택 돌담길 풍경
 김명관 고택 돌담길 풍경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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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살이 눈부시다. 살랑살랑 춤추는 코스모스가 그지없이 아름답다. 은은한 흙냄새가 온몸을 휘감는다. 처연할 정도로 아름다운 하늘과 가을을 노래하는 코스모스가 향토적 서정성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세월의 깊이가 묻어나는 흙돌담이 여유와 운치를 더한다. 정감 넘치는 고즈넉한 풍경, 흙 한주먹, 잡초 한포기도 풍요롭게 느껴진다.

전북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 창하산(蒼霞山·지네산) 아래 자리한 <김동수씨 가옥>(중요민속자료 제26호) 돌담길 풍경이다. 자료에 따르면 이 가옥은 '역사와 유래를 알 수 있도록 혼란을 주는 명칭을 기준에 따라 변경하라'는 문화재청 방침에 따라 2017년 2월 '김명관 고택'(최초 설립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아래는 안내문 앞부분이다.

"조선 중기 상류층 주택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는 이 집은 김동수(金東洙)의 6대조인 김명관(金命寬)이 정조 8년(1784)에 건립했다. 이 집은 창하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동진강 상류의 맑은 물이 흐르는 전형적인 터전에 동남쪽을 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줄임)"

 우물 옆에서 바라본 고택
 우물 옆에서 바라본 고택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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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고 단아한 건축미가 돋보이는 이 고택은 조선 시대 아흔아홉 칸 양반집 면모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안채를 중심으로 안사랑채, 바깥사랑채, 안행랑채, 바깥행랑채, 사당 등이 적당한 공간을 유지하며 조화를 이룬다. 특이한 것은 사랑채와 행랑채가 각각 두 개씩이라는 것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나 행랑채가 나타나는 일반 사대부집과 달리 각각 독립된 대문과 마당이 있는 것도 또 하나의 특징이다. 외양간과 바깥행랑채, 곳간 사이에는 'ㄱ'자형으로 담을 쳐 공간을 차단하였다. 담 사이에는 사랑채 쪽으로 문을 내서 대문채 마당이 사랑채 공간의 완충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고택 안으로 향하는 골목, 뒤로 창하산이 보인다.
 고택 안으로 향하는 골목, 뒤로 창하산이 보인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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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을 지은 김명관은 가을에 수확한 벼가 1천200섬이 넘는 대 부호였다 한다. 당시 한양에서 내려온 그가 배산임수(背山臨水) 지세인 이곳을 자손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릴 터전으로 정하고 10여년의 공사 끝에 집을 완성하였고, 대문 앞에는 30여 평의 연못을 만들고 나무를 심었다 한다. 그러나 최근 연못을 정비하면서 나무도 사라졌다.

재미난 도깨비 이야기도 전해진다. 도깨비들이 오공리 창하산 아래(지금의 집터)를 점지해주면서 이곳에 집을 지으면 백섬지기 부자가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풍수지리에 얽힌 사연을 보면, 창하산은 지네를 형상하는 지형이고, 지네 머리에 해당되는 지점이 안채의 중앙이라 한다. 따라서 지네의 기운을 얻기 위해 바깥마당 앞에 연못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습지를 만들고, 지네의 먹이인 지렁이를 살게 했었다고 전한다.

조선 시대 고택 돌아보기

 단아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안채
 단아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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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관 고택은 동서 65m, 남북 73m 장방형 흙돌담이 호위하듯 둘러싼 모양새다. 주 건물은 동·서면을 향하여 들어앉았다.

고택 구조를 살펴보면, 바깥행랑채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아담하게 조화를 이룬 사랑채가 보인다. 그리고 안쪽 행랑채 대문을 들어서면 대청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도록 좌우에 부엌을 배치한 안채가 나온다. 안채 뒤편에는 장독대와 우물이 있고, 안채 동북쪽에는 작은 사당이 자리한다.

안채는 대청 좌우에 방이 있고 양 끝에 자리한 부엌이 앞으로 튀어나온 'ㄷ자형' 구조다. 안채는 좌우 대칭을 이루게 지어 좌우 돌출된 부분에 부엌을 배치한 특이한 평면을 갖추고 있다. 건축가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조선 후기 사대부 가옥의 중후한 모습을 원형대로 유지하고 있어 건축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연구 자료로 평가받는다.

 조선시대 건축미를 그대로 간직한 안사랑채
 조선시대 건축미를 그대로 간직한 안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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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서남쪽에 자리한 안사랑채는 집주인 김명관이 공사 기간에 자신과 목수들이 기거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준공 후에는 안주인 손님들이 유숙하거나 출가한 딸이 해산을 위해 친정에 오면 이곳에서 몸을 푸는 등 별당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다.

안사랑채는 정면 여섯 칸, 측면 두 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에 일자형 건물이다. 기단은 안채와 같이 외벌대로 바닥에 납작하게 자리하고 있다. 평면 가운데 두 칸이 대청으로 꾸며져 있고 좌우에 방이 배치되어 조화를 이룬다. 서쪽에는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 반 크기의 부엌이 딸려있는 등 조선 시대 부잣집 생활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흥미를 더한다.

 꽃들이 감싼 모습의 사당
 꽃들이 감싼 모습의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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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행랑채는 살림을 돕는 여종들과 소년이 공부하던 책방, 안변소, 곡간 등으로 구성됐고, 바깥행랑채는 정면 열두 칸의 기다란 건물로 입구에는 솟을대문이 세워져 있다. 대문 앞에는 화강석으로 만든 노둣돌이 놓여 있는데 말을 타고 내릴 때 사용됐다고 한다.

자그만 담장이 경계를 이루는 사당도 볼거리다. 사당은 맞배지붕 형식으로 고택에서 유일하게 둥근 기둥을 사용하였다. 측면에는 방풍판을 달았다. 또한, 사당은 한 칸 규모로 작지만, 소로수장집의 단청 없는 간결함은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공간으로 엄숙함을 잘 반영하고 있다. 사당 좌우의 커다란 동백나무와 담장 아래 아름다운 연산홍은 집을 지을 때부터 심어져 있었다고 전한다.

 한가로운 초가와 소담스럽게 영근 박들
 한가로운 초가와 소담스럽게 영근 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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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들이 거주했다는 '호지집' 8채(지금은 2채만 남았음)가 담장 밖에 배치되어 눈길을 끈다. 그중 고택 입구에 자리한 '호지집'은 외거 노비들이 거주했던 곳으로 최근 초가삼간으로 복원됐다. 이곳은 평상시 주인집 외곽을 보호하고, 비상시에는 가족들의 피신처로 삼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안채에서 가까운 호지집에는 가장 믿을 수 있는 노비를 거주시켰다고 한다. 노비제도가 폐지된 후에는 소작인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호지집 초가지붕 위 박들이 가을을 노래한다. 예전에는 시골집 마당의 붉은 고추들과 초가지붕 위에서 영그는 박들이 가을의 전령사였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기억에서조차 사라진 한 폭의 풍경화가 되고 말았다. 자칫 지루함에 빠지기 쉬운 추석 황금연후, 정읍 창하산 아래 자리한 고택에서 가을의 정취에 흠뻑 빠져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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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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