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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도 쪽방 상담소가 있지. 사랑 그루터기라고."
"아 그렇습니까. 제가 서울 쪽만 가봐서, 있는지 몰랐네요."
"의사들이 사랑그루터기 진료소에서 오랫동안 진료를 또 하고 있지. 그런데, 10년이 넘어도 바뀐 건 없다."


최충언 선생님과의 인터뷰 이후, 부산에 쪽방상담소가 두 곳이 있다는 것을 듣고 의대생들과 함께 부산진구를 관할하고 있는 '사랑 그루터기' 쪽방 상담소를 방문했다. 알다시피, 가난은 구경거리가 아니기에 방문약속을 잡는데 까지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01년에 개소한 '사랑 그루터기' 쪽방 상담소는 노숙자의 건강한 삶을 위해, 쪽방 거주자들의 자활·지원·의료복지 및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보증금 없는 쪽방 들어가 보니 "너무 좁아서 우울증 걸릴 것 같다"

부산에서 쪽방은 대부분 고시원, 여인숙, 여관으로 남아있다.
 부산에서 쪽방은 대부분 고시원, 여인숙, 여관으로 남아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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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위로 올라 가실게요. 계단 조심하시구요."

쪽방은 여관, 노후화 주택, 그리고 고시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원룸의 1/4 남짓한 공간이라고 보면 된다. 올라가는 계단 또한 유난히 가파르고 좁아서, 미끄러지거나 발목을 다친 분들도 간혹 보인다.

같이 간 의대생 한 명은 "여기서 일주일간 있으면 우울증 걸리겠다"라고 할 정도로 공간의 분위기는 숨 막혔다. 쪽방 거주자들은 여기서 매일 살아가다 보니, 우울증이나 수면장애 또는 정신질환 유병율이 거리 노숙인 보다 상당히 많다.

거리노숙인들 중 쪽방에 사시는 분들도 간혹 계시는데, 거주지가 있음에도 일주일에 3~4일은 왜 밖에서 사려고 하시는지 알 것 같았다.

함께 방문한 의대생이 그린 쪽방의 대략적인 구조. 매우 협소하고, 창문조차 없는 곳이 많다. 창문이 있는 방은 월세를 더 올려 받는다고 한다.
 함께 방문한 의대생이 그린 쪽방의 대략적인 구조. 매우 협소하고, 창문조차 없는 곳이 많다. 창문이 있는 방은 월세를 더 올려 받는다고 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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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는 얼마인가요?"
"약 20에서 25만 원 정도 합니다. 보증금 없이요. 수급을 받더라도, 조금 부담이 있긴 하지요."
"취사나 용변은..."
"다 공동시설이죠. 취사도 하긴 하지만, 대부분 무료 급식소를 이용하시고 저녁에 잠깐 밥 해먹고 하십니다."
"열악하네요. 이런 곳이 많이 있나요?"
"아니오. 이제 많이 사라지고 있죠."
"옆에 보시면, 다 쪽방촌이었는데 지금은 다 부수고 아파트 짓는다고 하데요."


독립된 주거 공간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렇기에, 조금 더 나은 인생을 살아보려고 하는 이들이 있다면 거리에서 벗어나 쪽방에 정착하게 하는 것이 먼저다. 쪽방은 초기 정착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도 해서, 세상에 다시 발을 내딛는 첫 디딤판이다.

주거 대책뿐만 아니라 꾸준한 관심과 관리가 필요한 이유

전포동은 현재 대규모 도시 재개발 사업으로 많은 쪽방들을 철거했다.
 전포동은 현재 대규모 도시 재개발 사업으로 많은 쪽방들을 철거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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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재생사업으로 인해 쪽방촌이 사라지고, 현재 그 자리에는 다세대 주택과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고 한다. 주거소외계층을 수용할 '공간'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이 크게 없다 보니, 무허가 숙박업소를 찾아 달라고 복지사들 에게 요청하거나 졸지에 거리에 다시 내몰리게 되는 분들도 많다.

"쪽방도 많은데, 재활정착 하시는 분들도 관리를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분들은 마음의 상처가 많습니다. 그래서, 혼자 사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세요."


사랑 그루터기 쪽방 상담소는 '주거' 중심의 활동을 많이 진행해 왔다고 한다. 특히 매입 임대주택 지원 사업을 추진하여 '주거의 상향'을 통한 주거안정을 위해 노력해 왔었다. 현재는, 약 100가구가 들어서서 살고 있다(주거의 상향은 '노숙->쪽방->임대주택 또는 재활센터->영구임대주택' 순으로 이루어진다).

"아 그런데, 의대생이시면 약을 좀 아시지예? 혹시 수면제 많이 먹으면 큰일 납니까?"
"네, 큰일나죠. 자살 목적으로 많이 복용하기도 합니다."
"아.. 최근에, 문자 잘 보내고 연락 잘 되던분이 갑자기 약을 많이 먹었다 카데예... 약도 꽤 오래 타 먹었을 텐데, 몇 개 먹어야 되는지 까먹진 않았을 거 아닙니꺼."


하지만 '주거안정'에도 갑자기 돌연 사라지거나 자살 하시는 분들도 있고, 고독사의 비율도 높다고 한다. 정신적인 트라우마와 아픔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꾸준히 관리해줘야 한다. 그래서 이들에겐 주거 대책뿐만 아니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환경과 꾸준한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

다행히 쪽방 상담소에서는 노숙 생활을 거치면서 잃어버린 '사회성'을 다시 되찾아 주기 위해 등산, 탁구, 난타 동아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복지사분 말로는 이러한 것들을 통해 노숙인들 중 약 30% 정도가 안정을 찾으시는 것 같다고 한다. 생각보다 그리 많은 비율은 아니지만, 과거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그만큼 힘든 것이라서 그렇지 않을까 한다.

이날 우리는 그들의 삶의 현장을 보며 작은 생각들을 나누었다. 그러나, 잠깐 건넨 일방적인 인사를 제외하고는 그들과 단 한마디를 섞어볼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의 문제를 깨닫는 순간, 우리의 존재 또한 문제가 됨을 느끼며 발자국 소리를 숨겼다.    

사랑그루터기 쪽방상담소 한남식 소장님.
 사랑그루터기 쪽방상담소 한남식 소장님.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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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 관계고 사람입니다. 아무리 사업을 잘해도, 노숙자분과 상담사 간의 인간적인 관계가 제일 영향을 많이 줍디다."

쪽방 방문을 마치고 나니 상담소 소장님이 힘주어 이야기했던 부분이 떠오른다. 공부를 무조건 열심히 해서 의사가 돼서 여기로 오시라. 그래야 많은 걸 도와줄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도 하셨다. 하지만, 결국 다 관계고 사람인데. 우리는 그러한 관계에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덧붙이는 글 | 부산의 의대생들 약 10명이 함께 '노숙인의 잠못 이루는 밤'이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9월 마지막주에 부산진구 '사랑 그루터기' 쪽방 상담소를 방문했습니다. 다음 방문지는 '사랑 그루터기'에서 운영하는 무료 진료소입니다!



태그:#쪽방, #상담소, #의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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