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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섭씨는 지금도 자신의 트럭에 기억할께라고 적힌 노란 세월호 리본을 붙이고 다닌다.
 신인섭씨는 지금도 자신의 트럭에 기억할께라고 적힌 노란 세월호 리본을 붙이고 다닌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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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 열흘이나 되는 추석 연휴에 오롯이 쉴 수 있는 노동자는 그리 많지가 않다. 추석에 쉬지 못하는 우리의 이웃을 만나 봤다. 충남 홍성에서 가축 사료 납품업을 하고 있는 신입섭(50)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신인섭씨는 지금도 여전히 트럭에 '기억할게'라고 적힌 노란 세월호 리본을 붙이고 다닌다. 사실 그는 홍성읍 복개 주차장에서 3년 넘게 촛불을 밝히고 있는 홍성세월호촛불지기 중 한사람이다.   

신인섭씨는 홍성군 은하, 홍동, 장곡, 결성면은 물론이고, 보령시 천북면까지 많을 때는 하루에 1000개 이상의 사료를 배달한다. 한 포대 당 20~25kg 정도의 무게다. 고강도의 노동을 마친 그는 얼마 전까지도 매주 목요일 마다 홍성세월호촛불을 밝히기 위한 장비를 복개주차장으로 실어 날랐다. 홍성세월호추모제가 매주에서 1달에 한번 열리는 것으로 변경되면서 그의 '일'도 그나마 줄었다.

신인섭씨는 거의 매주 세월호추모문화제에 필요한 엠프와 책상, 촛불, 스크린 등 각종 장비를 복개 주차장까지 싣고 왔다. 생업은 물론이고 홍성문화연대 공연연습, 세월호 문화제 준비까지 인섭씨는 요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일 P사료 하치장에서 그를 만났다.  

신인섭씨는 "명절이라고 해서 소나 돼지가 사료를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며 "명절 전이 오히려 더 바쁘다"라고 말했다. 긴 연휴를 대배해 주문량도 그만큼 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배달을 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는 그의 차에 동승해 두 개 트럭 분량의 사료 포대를 함께 날랐다. 사실 그의 일을 돕기 위해 현장에 나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여름 장마 때도 한 차례 그를 도운 경험이 있다.  

장맛비 내리던 지난여름, 사료 나르다가 '극한 직업' 체험

장맛비가 세차게 내리던 지난 8월의 어느 날, 갑자기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오늘은 도저히 혼자서는 못하겠다. 일 좀 도와 줄 수 있어?"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일을 시작하기 전 그는 기자에게 장화와 방제복을 건네며 "비가 올 때는 이 것 만큼 좋은 장비가 없다. 옷이 젖으면 힘이 든다. 가급적이면 옷을 끼어 입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단단히 준비하란 의미로 들렸다. 

하지만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일까. 거짓말 조금 보태서 '죽을 뻔 했다'. 사료 배달일은 극한직업 중 하나로 꼽혀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배달지는 돼지 농장이다. 돼지분뇨의 악취는 악명이 높다.

트럭에 배송을 나갈 사료를 싣고 있다.
 트럭에 배송을 나갈 사료를 싣고 있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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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kg의 사료 260개를 트럭에 가득 싣고 도착한 돼지농장에서 기자를 반겨 준 것은 분뇨 냄새였다. 역한 냄새 속에서 무거운 짐을 나르니 숨을 쉬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급기야 구토까지 쏠렸다.

사실 기자도 강도 높은 노동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귀촌을 결심한 직후 서울 생활을 정리하던 시점에 6개월 정도 생수를 배달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 송파구와 동대문구, 광진구 일대를 돌며 생수를 배달했다. 물론 그때도 힘들었지만 숨이 차올라 구토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물론 귀촌 이후 운동을 거의 안 해서 체력이 약해진 탓도 있다. 그래도 사료납품이 만만치 않은 일이란 점은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신인섭씨에 따르면 일이 많을 때는 260포대 이상의 사료를 하루 네 번에 걸쳐 싣고 배송할 때도 있다고 한다. 더구나 비가 오는 날은 일이 두 배로 힘들다. 사료가 젖지 않도록 포장을 치고 걷는 일을 반복해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포대 배달하면 500원 정도 남아"

추석을 이틀 앞둔 2일, 신인섭씨는 여전히 휴일을 반납한 체 사료를 배달하고 있다. 다행히 이날은 비가 오지 않았다. 그는 "사료 한포대를 배달하면 500원 정도가 남는다"며 "일이 없으면 그만큼 벌이가 안 되고, 반대로 일이 많으면 몸이 축 난다"고 말했다. 일이 많아도 걱정이고, 반대로 없어도 걱정이라는 것이다.

인섭씨가 일하고 있는 P사의 하치장.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추석연휴 동안 3일만 쉬고 일을 해야 한다.
 인섭씨가 일하고 있는 P사의 하치장.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추석연휴 동안 3일만 쉬고 일을 해야 한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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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도 배달을 나간 한 돼지 농가에는 파리가 한가득 있었다. 신인섭씨의 트럭에도 파리가 빼곡이 달라붙을 정도였다. 이에 대해 그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입을 벌리면 입안으로 파리가 들어올 정도인 곳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종은 몰라도 우리는 파리를 개량하는 데는 일조하고 있다"며 농담을 건넸다. 파리들이 트럭에 달라붙어 함께 이동하는 상황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는 이번 추석 연휴 때도 추석 전날과 당일, 그 다음날 딱 3일만 쉰다고 했다. 그나마 연휴 끝자락인 일요일과 한글날에 쉴 수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신인섭씨처럼 추석 연휴 기간에도 멈추지 않고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한국 경제를 멈추지 않고 돌리고 있는 주역들은 연휴 기간에도 그렇게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태그:#신인섭 , #사료 , #홍성세월호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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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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