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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그믐 대목장날
푸줏간도 큰 상점도 먼발치로 구경하고
사과며 동태 둬마리 대목장을 봐오시네
집에 다들 있는 것들인디 돈 들일 것 있느냐고
못난 아들 눈치 보며
두부전 명태전을 부치신다
큰형이 내려오면 맛보이신다고
땅속에 묻어뒀던 감을 내어 오시고
밤도 내어 오신다 배도 내어 오신다
형님의 방에는 뜨끈뜨끈 불이 지펴지고
이불홑청도 빨아서 곱게 풀을 멕이셨다
이번 설에는 내려 오것제
토방 앞 처마 끝에 불 걸어 밝히시고
오는 잠 쫓으시며 떡대를 곱게 써신다
늬 형은 떡국을 참 잘 먹었어야
지나는 바람 소리
개 짖는 소리에 가는 귀 세우시며
게 누구여, 아범이냐
못난 것 같으니라고
에미가 언제 돈보따리 싸들고 오길 바랬나
일 년에 몇 번 있는 것도 아니고
설날에 다들 모여
떡국이나 한 그릇 허자고 했더니
새끼들허고 떡국이나 해 먹고 있는지 (떡국 한 그릇)

 겉그림
 겉그림
ⓒ 펄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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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집을 읽습니다. <박남준 시선집>(펄북스 펴냄)은 시를 쓰는 박남준 님이 그동안 길어올린 노래를 둘레 벗님이 가리고 추려서 엮은 책입니다. 시집도 시집이지만, 그 시집 가운데 더 사랑해 주면 좋으리라 여기는 노래를 찬찬히 갈무리한 책입니다.

이 가을에 한가위를 둘러싸면서 어느 시보다 '떡국 한 그릇'을 다룬 노래를 읽어 봅니다. 아마 시인네 어머니일까요, "늬 형은 떡국을 참 잘 먹었어야" 하고 읊는 어머니는 "못난 것 같으니라고" 한 마디를 털어놓습니다. "에미가 언제 돈보따리 싸들고 오길 바랬나" 하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거든요.

아이들이 제금을 나서 저마다 제 뜻을 펴고 살 적에는 '뜻을 이루기'를 바랄 뿐입니다. 뜻을 이룬다고 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릴 적부터 품은 뜻을 이루는 삶이란 돈만 많이 버는 삶이 아니에요. 걸어가려는 길을 씩씩하게 걸어갈 적에 뜻을 이루어요. 즐겁게 웃고 기쁘게 노래하는 하루를 지을 수 있을 적에 뜻을 이룬다고 할 수 있어요.

개울물 소리 저리 시리도록 푸르른가
동지 까만 밤 부쩍이나 귀는 밝아져서
산 아랫마을 뉘 집 개가 짖는다 먼 장닭이 운다
눈이 오는가 누가 오는가 (동지 밤)

설날에 어머니한테 찾아가지 못하는 아이를 두고서 "새끼들허고 떡국이나 해 먹고 있는지" 하고 근심을 하는 마음을 읽습니다. 한가위를 앞두고는 "새끼들허고 송편이나 해 먹는지" 하고 걱정을 하는 마음이 되겠지요. 여느 때에는 여느 때대로 밥술 넉넉히 뜨면서 식구들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가 하는 대목에 마음이 쓰일 테고요.

어버이 마음은 아이 마음하고도 같습니다. 어버이는 다 큰 아이들이 돈만 많이 벌기보다는 착하면서 참되고 고운 마음으로 살기를 바라요. 다 큰 아이들이 새롭게 어른이 되어 낳은 아이들한테 즐거운 사랑을 물려주면서 살림을 짓기를 바랍니다.

아이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아이들은 밥 한 그릇 배불리 먹고 신나게 뛰놀 수 있으면 좋아요. 까르르 웃고 개구지게 뛰고 달릴 수 있으면 좋지요. 아이들은 자가용을 달려 어디 대단한 놀이공원에 가기를 바라지 않아요. 뭔가 값비싸거나 값진 장난감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어머니 아버지하고 눈을 맞추면서 소꿉놀이를 하거나 한 손씩 맞잡고서 나들이를 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겨우 해가 드는가
밀린 빨래를 한다 금세 날이 꾸무럭거리네
내미는 해 노루꽁지만 하다
소한 대한 추위 지나갔다지만
빨랫줄에 널기가 무섭게
버썩버썩 뼈를 곧추세운다 (겨울 풍경)

한가위에 설에 서로 한 자리에 모입니다. 한가위나 설이 아니어도 틈틈이 한 자리에 마주앉습니다. 맛난 밥을 먹거나 으리으리한 잔칫밥을 먹을 뜻이 아닙니다. 서로 즐거이 잘 사는가 궁금한 마음을 나누려고 모입니다. 서로 오붓하게 둘러앉아서 그야말로 이야기꽃 이야기잔치 이야기마당을 누리려고 마주앉습니다.

겨울날 빨래하는 이야기가 밥상에 오를 만합니다. 아기를 낳아 돌보면서 빨래하느라 얼마나 등허리가 휘었는가 하는 이야기가 밥상에 오를 만하지요. 뒤집고 기고 서고 걷고 달리면서 활짝 웃음을 짓는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흐름을 지켜본 이야기가 밥상에 오를 만하고요.

굽이굽이 휘돌지 않는 강물이 어찌
노래하는 여울에 이를 수 있는가
부를 수 있겠는가 (마음의 북극성)

 한가위에는 송편이지만, 시집에 나온 '떡국 한 그릇'을 떠올리면서, 올 한가위에 새삼스레 떡국을 한 그릇 끓여서 오붓하게 먹어 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밥 한 그릇에 담는 마음을 돌아보면서.
 한가위에는 송편이지만, 시집에 나온 '떡국 한 그릇'을 떠올리면서, 올 한가위에 새삼스레 떡국을 한 그릇 끓여서 오붓하게 먹어 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밥 한 그릇에 담는 마음을 돌아보면서.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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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준 시선집> 한 권을 읽으면서 달빛하고 별빛을 어림합니다. 보름달은 한가위를 앞두고 얼마나 밝을까 하고 어림합니다. 눈부시게 밝은 보름달 곁에서 별빛은 또 얼마나 반짝거릴까 하고 어림합니다.

아이들하고 마을 어귀 빨래터를 치웁니다. 아이들은 빨래터를 다 치우고서 물놀이를 합니다. 가을이 깊으나 낮에는 볕이 퍽 뜨겁습니다. 물놀이를 할 만합니다. 함께 빨래터를 치운 저는 빨래터 담벼락에 걸터앉아서 시집을 읽습니다.

시집에 흐르는 "굽이굽이 휘도는 물줄기"를 그려 봅니다. 여름에 마르지 않고 겨울에 얼지 않는 마을 빨래터 물줄기를 나란히 그려 봅니다. 노래하는 여울이 되는 물줄기를 그려 보고, 노래하며 재잘거리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는 마을 빨래터를 새삼스레 그려 봅니다.

이 가을 한가위에 집집마다 아이들하고 오붓하게 송편을 빚어서 먹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을이 저물고 겨울이 다가와 설날이 다시금 찾아오면, 설날에는 집집마다 떡국 끓이는 구수한 냄새가 퍼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박남준 시선집>(박남준 글 / 펄북스 펴냄 / 2017.8.30. /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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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 편집자로 일하면서, 전남 고흥에서 <사전 짓는 책숲집 '숲노래'>를 꾸립니다.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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