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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찾은 외국관광객들의 모습.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찾은 외국관광객들의 모습.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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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에서 유적가이드로 일하는 한국인 가이드 A씨는 요즘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또 다시 짐을 싸 다른 나라로 떠나야 할지를 두고 고민이 크기 때문이다.

그는 10년 전 태국에서 가이드를 하다가 국경을 넘어 이곳 캄보디아 유명관광도시 씨엠립으로 왔다. 2004년 태국에 불어 닥친 쓰나미 여파와 태국당국의 한국인가이드 단속이 대폭 심해지면서부터다.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방콕에 비해 모든 게 열악했던 씨엠립 생활이지만, 연간 앙코르와트를 찾는 한국관광객이 30만 명을 넘어 그래도 거의 매일 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참고 견딜 수 있었다.

기본일비수당에 손님들로부터 팁까지 받을 수 있어 수입은 꽤 괜찮았다. 그런데 이것도 잠시뿐이었다. 온 지 채 2~3년도 안 된 시점부터 동남아여행상품 덤핑 경쟁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여행업계 먹이사슬의 제일 아래 단계에 있는 가이드들에게 돌아갔다. 물론, 가이드 A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가지 쇼핑과 덤핑여행의 각종 폐해가 오로지 가이드 때문이라는 온갖 비난까지 고수란히 대신 감수하며, 매일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단내가 나도록 열심히 유적지설명을 하고 손님들에게도 친절히 대했다. 하지만, 가이드 A씨는 종종 빈손으로 집에 가는 일이 늘기 시작했다. 기본여행경비도 훨씬 못미치는 싸구려 여행상품들이 범람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게다가, 그는 소위 잘나가는(?) 가이드가 아니었기에 소속 여행사에서도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돈벌이가 될 만한 패키지 단체관광팀은 다른 가이드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생존경쟁이 치열해지자, 여행사들도 친절하고, 유적에 대한지식이 해박한 가이드보다는 쇼핑판매실적이 좋은 가이드를 능력있는 가이드로 인정해주는 분위기로 돌변했다.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오직 살아남아야겠다는 일념에 군말 없이 버텼다. 비수기에는 밀린 집세까지 걱정할 만큼 곤궁하게 살면서도 그는 착실히 일했다. 그 덕에 큰 돈은 아니지만, 몇 푼 저금도 할 여유까지 생기며 미래를 준비할 수 있었다.

현지 정부가 내놓은 자국가이드보호조치에 충격에 빠진 교민들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앙코르와트를 관광하기 위해 프놈펜출발 국내선항공기에 오르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앙코르와트를 관광하기 위해 프놈펜출발 국내선항공기에 오르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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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 그에게 최근 꿈에도 생각지 못한 날벼락 같은 일이 생기고 말았다. 3년 전 캄보디아 관광당국이 한국인 가이드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쿼터제'라는 것을 들고 나온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가이드 쿼터제'란 앙코르유적지에서 합법적인 가이드로 일할 수 있는 외국인의 수를 제한한 제도를 말한다. 한국가이드가 주된 '타깃'이었다. 지난 2014년부터 시행된 이 제도로 말미암아, 이후 한국인 가이드들은 482명만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대신 이들은 주관광청이 주관하는 별도의 교육과정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했고, 연간 220불 라이센스 비용까지 따로 납부해야 했다.

이로 인해 가이드 면허증을 취득한 가이드들과 프리랜서로 활동해온 가이드들 간에 보이지 않은 갈등까지 촉발됐다. 만약 면허증 없이 유적지에서 가이드 일을 하다가 관광경찰에게 적발될 경우에는 뒷돈을 주거나, 심지어는 조사 후 벌금까지 물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는 '가이드'라는 이름 대신 '한국어통역안내원'이란 이름표가 따라 붙었다. 가이드 A씨도 대외적인 직함은 '한국인통역안내원'이었다. 일반 관광객 입장에선 다소 이해하기 어렵지만, 한국관광 패키지손님들의 뒤를 따라다니던 현지안내보조원이 현지 노동법상으로는 실제 가이드인 셈이다.

그동안 현지인 안내원들은 가이드 본연의 업무 대신 한국인 가이드의 업무를 보조하는 단순역할을 주로 해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들의 한국어 발음이 대부분 정확치 못한데다 한국식 서비스와 접대를 원하는 까다로운 한국관광객들의 입맛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이 급반전되기 시작했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현지인 가이드들이 최소 50여명 이상 급격히 늘어나면서부터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불과 한국어 현지 가이드는 그 수를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는 고용허가제(EPS) 한국어시험대비 어학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현지인 가이드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리고 이들이 점차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8월말 주씨엠립대사관분관과 교민여행사대표들이 현지관광당국책임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간담회를갖고, 한국인통역안내원 쿼터제에 관한 교민사회의 입장을 전달했다
 지난 8월말 주씨엠립대사관분관과 교민여행사대표들이 현지관광당국책임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간담회를갖고, 한국인통역안내원 쿼터제에 관한 교민사회의 입장을 전달했다
ⓒ 주씨엠립한국대사관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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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이들은 자국관광청과 노동부를 상대로 자국 가이드들의 근로권 보장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일부 현지인 가이드들은 한국인 가이드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논리와 주장을 내세워 정부당국을  압박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 나라 관광부도 자국 가이드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런 가운데 주관광청당국은 그마나 지난해 연말 아무런 사전통보도 없이 쿼터제마저 폐기한다고 발표한데 이어 지난 9월 초에는 이를 번복하고, 또 다른 시행령을 발표했다. 당국이 통보한 내용은 가이드 A씨 입장에선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기존 쿼터인 482명의 절반도 채 되지 않은 200명만에게만 한국어통역안내원으로 일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겠다는 게  골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해마다 50명씩 인원을 더 줄여나가겠다고 했다. 이런 계산대로라면 4년후 이 나라에서는  한국인 가이드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다"는 한숨과 자조섞인 반응들이 교민사회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한국인통역안내원협회가 최근 전수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캄보디아 한국인 가이드수는 쿼터보다 많은 280여 명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만약 정부당국의 계획대로 한국인 가이드수를 200명으로 제한하는 조치를 실행에 옮긴다면, 나머지 최소 80여명 가이드들은 지금 당장 불법가이드로 내몰리거나, 실업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주정부 당국의 이같은 방침에 가이드 A씨 뿐만 아니라 교민사회전체가 또 다시 패닉상태에 빠진 상태다. 성수기만 돌아오면 한국인 가이드가 부족해 애를 태우던 현지 랜드 여행사들도 고민이 커지긴 마찬가지다. 기념품가게와 전통마사지샵, 한인식당 입장에서도 한국관광객들이 줄면 타격이 크기에 결코 남일이 아니다.

결국 더 이상 가이드로 일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한국인들이 상당수가 이미 씨엠립을 떠났거나 다른 나라로의 이주를 심각히 고민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한인식당들은 문을 닫거나, 교민수가 많은 수도 프놈펜으로 옮겼다.

현지에서 여행사를 운영중인 김병희 소장은 "작년 하반기부터 금년 초까지 라오스와 베트남 다낭 등 다른 나라로 옮겨 간 교민들이 대략 200~300명 이상은 족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한국인 가이드는 "많은 가이드들이 요즘 한창 뜬다는 이웃나라 베트남 휴양도시 다낭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요즘 가이드가 부족해 바쁘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썩 밝지 못했다. 그 역시 "이곳에선 가이드로 먹기 살기도 힘들어 다른 나라로 떠날지를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교민은 "이런 추세라면 한때 2천명이 넘었던 교민사회가 와해될 수도 있다"며 깊은 우려감을 표시했다.

또 다른 나라로 떠나야 할지를 고민하는 교민들

앙코르 톰으로 들어가는 남문 입구 전경 캄보디아 정부당국이 지난 9월초 자국가이드보호차원에서 가이드로 활동해온  한국인통역안내원수를  200명으로 제한하고 내년부터는 50명씩 더 줄여나가겠다고 발표해 교민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다.
▲ 앙코르 톰으로 들어가는 남문 입구 전경 캄보디아 정부당국이 지난 9월초 자국가이드보호차원에서 가이드로 활동해온 한국인통역안내원수를 200명으로 제한하고 내년부터는 50명씩 더 줄여나가겠다고 발표해 교민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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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일해 온 한국인들 중에는 가이드 A씨처럼 태국에서 국경을 넘어 이주해온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일부 교민들은 말그대로 일자리 찾아 삼만리(?), 인도차이나반도를 떠돌아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가 서럽다며 기자 앞에서 푸념을 늘여놓았다.

"온지 10여년도 채 안 돼 또 다시 일자리를 찾아 다른 나라로 떠날지 고민하다니, 요즘 심정이 이만저만 착잡한 게 아니다."   

그런 가운데, 지난 7월말에는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한국인 가이드 문아무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씨엠립에서 가이드로 일했던 그는 베트남 다낭으로 옮겨갔지만, 그 곳에 가서도 집세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관련기사 : 베트남 한인가이드 숨진 채 발견... "생활고 따른 자살").

2~3년마다 거의 주기적으로 반복발생하는 이 같은 가이드들의 자살에 교민들은 더 이상 말을 잃은 상태다.

최근 씨엠립에 남아 있는 한국인 가이드들이 모여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한국노총에 가입하기로 최종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가입신청에 앞서 지난 9월 10일 시내 모처에서 노조결성 발대식을 가졌다. 인도차이나반도에선 베트남과 태국 한국인 가이드들이 최근 노조를 결성한데 이어 세 번째다.

10년 넘게 프리랜서 가이드로 일해 왔다는 한 교민은 "다들 씨엠립에선 희망이 별로 없다고들 한다. 주변엔 떠날 궁리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솔직히 노조를 결성하고 한국노총에 가입한다고 해서 당장 달라질 것은 별로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해야 가이드일도 좀 더 할 수 있을 것 같고, 힘든 교민사회도 다소나마 희망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며 씁쓸하기만 한 교민사회 분위기를 전했다.

가이드 A씨도 "베트남 다낭도 상황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는 소문에 라오스나 미얀마 등 또 다른 나라를 찾아 갈지, 고국으로 다시 돌아갈지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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