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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꽤나 가까운 사이라서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은 보게되는 아주 오래된 지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그의 모습은 꽤나 염려스러워 보였습니다. 본래 밝은 성격에 일도 잘하고 농담도 잘 던지던 친구가 표정은 매우 어둡고 말수가 심각하게 적어지면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상당히 자기 중심적으로 되어갑니다. 내가 알고 있던 그 친구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말입니다.

물론 그가 하루아침에 그렇게 변한 것은 아닙니다. 몇년전부터 정도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쾌할함이 줄어들고 걱정이 많아지며 얼굴 속에 미소가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안좋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나름대로 조언도 해주었지만 효과가 그때 뿐이더군요. 머리로는 이해가 가도 막상 자기 삶 속에서 실천하기는 어렵나 봅니다.

나의 친구가 변해간 이유

과거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던 그 친구는 몇년전 새롭게 자기 일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잘 될까 걱정도 했지만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일이 잘되면서 그 전에 만져보지 못한 제법 목돈을 만지게 되었습니다. 돈 버는 재미 반 자기 생각대로 세상이 되어가는 재미 반으로 친구는 정말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건강에 자신이 있던 그 친구는 일주일에 단 하루의 쉬는 날도 없이 정말 일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푸근하고 보람있다며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쉴새 없이 약 2년 정도 일하자 조금씩 지치기 시작합니다. 건강에 자신이 있던 그의 몸이 탈 나는 경우가 자주 생겼습니다. 그러나 이미 일을 벌여놓았기에 당장 쉴 수 없었습니다. 아파도 일을 해야 했고 쉬고 싶어도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일이 너무 힘든 친구는 가사를 전담하는 자기 와이프에게  사업장으로 나와 같이 일을 해달라 부탁하기 시작합니다. 주부인 와이프는 조금씩 나와서 도와주었지만 그 친구의 성이 찰만큼 열심히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열심히'의 수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남편의 어려움이 생각한것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은 분명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남의 일 보듯 하기도 했었나 봅니다.

정말 처절하고 힘든 현실 속에서 와이프의 그런 태도를 보며 친구는 많이 서운했습니다. 자신이 돈을 버는 이유가 자기만 잘살자고 하는 것도 아닌데 자신의 어려움에 진심으로 공감해주지 않고 또 적극적으로 자기일처럼 나서지 않는다는 생각은 점점 와이프에 대한 원망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 한켠에 원망의 싹이 견고하게 자라게 됩니다.

친구 와이프도 잘 아는 저는 가끔씩 친구 몰래 남편의 어려움이 적지 않으니 좀 더 자기일처럼 해줄 필요는 없는지 또 만약 적극적으로 도와줄 형편이 안된다면 마음으로나마 진심으로 남편의 고생에 공감해줄 필요는 없는지 귀뜸해주었습니다. 남편이 변해가는 모습에 걱정이 되었는지 몇달전부터 그녀는 정말로 노력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일이 생각보다 간단치 않았습니다. 이미 오랫동안 마음이 많이 상한 친구는 이제와서 그렇게 태도가 달라지는 와이프의 모습이 달갑지만은 않았던 것입니다. 도와 주려는 와이프의 모습에 시큰둥하며 정말 최악으로 힘든 때가 아니면 와이프에게 굳이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외면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만큼 본인은 점점 더 힘들고 외로운 시간들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점점 말수도 적어지고 작은 스트레스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그렇게 그냥 두면 문제가 커질듯 하여 몇달전 친구와 제법 솔직한 대화를 했습니다. 친구에게 와이프가 도와주려 한다면 기쁘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와 돈을 적게 벌더라도 일을 더 줄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였는지 일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를 했으나 와이프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는 것에는 동의를 못하더군요.

지금껏 자기가 고생한 것이 있는데 이제와서 조금 도와준다는 것이 탐탁지 않아 했습니다. 이런 친구 마음에는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하나의 생각이 숨어 있습니다. 본인 혼자 죽기살기로 고생했던 제법 긴 시간동안 제대로 공감해주지 않은 와이프를 그렇게 쉽게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긴 시간동안 자신에게 잘못한 이에게 쉽게 면죄부를 줄 수 없다는 생각이지요.

문제는 그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지금 자기 상황을 매우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상대에게 부정적 감정을 품는 동안 정작 본인 자신이 자기 본래의 삶에서 소외되며 안좋은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매일 얼굴을 보는 사람에게 원망의 마음을 한 켠에 가지니 처음에는 일터에서만 안좋은 감정이 있던 것이 다른 삶의 부분들로 확산됩니다. 그러다 점점 와이프에 대한 감정의 문제를 넘어가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인간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 숙명을 가집니다. 그런데 관계라는 것이 그냥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관계에는 보이지 않은 여러 유기적인 끈들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의 관계는 그 둘 당사자만의 관계가 아닙니다. 그 둘이 포함된 여러 상황과 문화가 같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둘의 관계는 둘의 관계 이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인생에 가까운 한 사람을 용서할 수 없어 소외시키려하거나 거리를 두게 되면 그와 연관된 다른 여러 사람과의 관계도 함께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 연관 관계에 있는 다른 사람과의 자연스러운 관계도 무엇인가 걸리게 되고 거짓말도 해야 하고 때론 의도치 않은 의견 충돌도 감내해야 됩니다. 예를 들어 부부가 서로를 이해하지 않고 안좋은 관계가 되면 가족 행사를 하는 것이 편하지 않고 가족들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챕니다. 시댁에서는 며느리를 오해하게 되고 처가에서는 사위를 오해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기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다 보니 삶의 여러면이 같이 힘들어지고 어려워집니다. 모가 난 자신의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내지 못하니 마음은 더욱 딱딱히 굳어가고 다른 여러 관계가 불편해지니 스스로 만나는 것을 피하게 되고  일은 일대로 혼자 힘들게 감당해야 했습니다. 친구는 그렇게 홀로 어깨에 온갖 무거운 것들을 다 짊어지고 스스로 고립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점점 쾌활하고 활기차던 예전의 그의 모습을 찾기 어렵고 우울증과 같은 정신병적 질환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워 얼마전부터 용서의 가치에 대해 살짝 귀뜸을 해주고 있습니다. 과거에 자신에게 소홀했기에 아내를 용서하지 못하는 동안 정작 본인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잔인한 일을 하고 있는지, 또 용서하면 얼마나 마음이 편해지고 삶이 자유로워지는지 알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용서를 한다는 것

용서한다는 것은 단순히 원망의 대상을 용서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원망스런 상대를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용서받는 상대보다 용서하는 나 자신이 더 많은 것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진심으로 용서하면 동시에 원망의 감정에 휘둘렸던 자기 자신도 되돌아보고 그런 불씨를 제공한 자신의 과도한 욕심이나 실수, 상대를 향한 악감정 등등 자신의 어두운 과거도 용서받게 됩니다. 그렇게 원망스런 상대를 용서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덕지덕지 붙어 있던 무거운 것들들 떼어내고 스스로 용서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자기를 힘들게 하거나 괴롭힌 사람에 대해 원망의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 원망의 대상은 주로 먼 관계의 사람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일 확률이 높지요. 가족이거나 가까운 친구이거나 아니면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직장 사람이거나... 가까운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면 나의 삶은 훨씬 더 불행해지고 부자유스럽게 됩니다. 

반면 용서 하면 많이 편해지고 자유롭게 됩니다. 용서가 가져다 주는 치유의 효과는 상상이상입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먼저 잘못했는데 왜 내가 먼저 용서를 해야 하냐고.... 안타깝지만 그게 우리 삶의 본질입니다. 소설가 알베르 까뮈가 말했듯 우리 현실은 온통 부조리합니다.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계산대로만 살려고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타인의 잘못을 그와 동일한 성질의 잘못으로 대응하려 하거나 두고두고 잊지 않으며 돌려주려 하면 상대 뿐만 아니라 나도 상처받고 불행해지게 되어있는 것이 세상 법칙입니다.

하지만 이러 부조리에 참 오묘한 진실도 들어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내가 먼저 나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 이상 내 마음에 상처 줄 수 없다는 진실말입니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어떤 불행한 사건도 내가 그것을 상처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게 작은 고통이나 불행을 줄 수 없습니다. 타인의 잘못으로 내 마음이 무거울때 용서의 마음을 가져보면 왠지 내 내면이 가벼워짐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그런 용서에는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의 힘이 필요하며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의 힘이 필요합니다.

분명 우리가 살아가면서 나에게 먼저 잘못한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논리적으로 보아도 그리고 계산적으로 보아도 그럴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내게 잘못한 이를 오랫동안 증오와 원망의 감정을 품으며 용서할 수 없을때 많은 피해를 보는 것 역시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인지 주기도문에는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해하고 용서하는 행복한 한가위 되기를...

한가위는 일년간 경작한 농작물을 수확하는 풍요의 명절이며 또한 가장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행복한 연휴입니다. 오죽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큼만 하여라'라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안타깝지만 가족 친지들 사이에서 불화의 사건 사고가 가장 많은 시기이면서 또한 부부간의 다툼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시기도 추석 연휴 기간입니다.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부대끼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사랑의 감정만큼이나 원망의 감정도 가지기 쉽습니다. 그만큼 이해하고 용서해주지 않으면 가족이나 친지가 아니라 적이나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성경에서도 사람의 원수가 자기 식구라고 했겠습니까?(마태복음 10장 36절)

한가위입니다. 다들 반가운 가족 친지들의 얼굴을 보게 되겠지요. 이 소중한 기간에 서로 즐겁게 대화하며 보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혹여 원망의 감정이 있어 만나기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이 기회를 빌어 용서해주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바랍니다. 그만큼 나는 보다 자유롭고 편안하며 행복해질 것입니다.


태그:#용서,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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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다시 페미니즘, 싱글의 철학 외 다수) / 철학상담치료사/ 희망철학연구소 연구원 /불교상담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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