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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회사에 출근하고, 친구들과 잡담을 하며, 가족과 식사를 한다. 직장 상사와 오늘 날씨에 대하여 얘기하고, 친구들과 회사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가족들과는 쇼핑을 가기도 한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위와 관계는 모두 다른 사람과의 접촉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관계에 대해서 서로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있다. 이런 기대나 바람은 다른 이에게 압박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압박을 당해 피곤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사람들은 가끔 아예 어디론가 홀연히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하게 된다.

이런 일이 가끔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주기적으로 반복해서 다른 사람에게 압박을 받고, 내가 부끄럽다고 느낀다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걸 다 버리고 떠나겠다는 충동이 강해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인간증발
 인간증발
ⓒ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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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증발>은 어느 날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매년 10만 명이나 사라지는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말 그대로 조용히 증발해버려서, 다시는 찾을 수가 없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일본 문화에 낯선 프랑스인 부부 둘이서 일본을 방문하고, 일본의 실종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기록을 추적했다.

사람들이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전형적인 이유는 빚이다. 빚을 갚지 못해서 야반도주하는 일은 한국도 흔하다. 일본의 경우 부동산 버블이 붕괴한 90년대 이후 막대한 빚을 갚지 못해서 도망치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이들은 야반도주 이사 업체를 이용한다. 야반도주 업체는 더 많은 이사비용을 받지만, 홀연히 조용하게 밤에 남 몰래 떠나는데 도움을 준다. 이렇게 떠난 사람들은 다른 도시에서 살아가는데, 쉽게 발각되지 않는다.

'그는 직원과 야반도주를 신청한 고객을 모두 사무실로 불러 칠판에 지도를 그리면서 가장 좋은 은신처를 찾고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예상했다. 야반도주 서비스는 비용이 40만 엔(약 400만 원)으로 일반 이사보다 세 배나 비쌌다. 샐러리맨, 대학생, 쇼핑과 명품에 중독된 부부, 빚에 허덕이던 고객들은 빚쟁이로부터 도망치겠다는 것이 공통된 목표였다.' -42P

이렇게 빚 문제가 가장 전형적이지만, 세상의 시선과 압박이 두려워서 도망치는 사람도 있다. 일본은 아직도 내재화된 차별이 많은 국가다. 부라쿠민이라는 과거의 낮은 신분을 가졌던 사람들에 대해 공공연히 차별을 가하고, 그들과 결혼을 피하기도 한다. 이렇게 차별받는 집단은 자신이 살던 곳에서 사람처럼 살기 힘들기 때문에 자신의 과거를 뒤로하고 자신을 모르는 곳에 가는 것이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것보다 좋은 대안이다.

저자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탐정, 실종자 본인, 실종자 가족 등이다. 탐정의 경우 한국과 달리 그런 사람들을 전문적으로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실종자 본인들은 다른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도 하지만, 사람이 두려워서 도망친 이들은 이후에 제대로 된 관계를 구축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사람으로서 다른 이를 마주보는데 어려움을 느낀 이들은 특별한 신분과 이름 없이 부탁받은 험한 일을 하며 살아간다.

저자는 명시적으로 일본의 모든 것을 분석하지는 않는다. 실종은 다른 나라에서도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저자가 그려낸 일본의 모습 중에 '왜 잘 살고 부유한 일본에서 실종이 심각한지'에 대해 단서를 주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숨막히는 조직 문화다. 일본의 기업은 사람들이 조직과 유리되지 않도록 하는데 온 힘을 다한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지 않고, 자잘한 행동이나 예절부터 일상까지 통제하려고 하는 기업이 존재한다.

이런 기업의 조직 문화의 극단적인 예가 바로 직업 훈련소다. 어떤 기업은 임원에게 기초적인 교육을 시키기 위해 직원 훈련소에 사람을 보내기도 한다. 훈련이라고 해서 전문적인 기술을 배우거나 경영 혁신을 배우는 곳이 아니다. 어릴 적 수련회처럼, 고된 육체 훈련을 받고 단순한 행동을 하며 혼이 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회사들이 그럼으로써 다시 조직에 융화되는 법을 배울 것이라는 기대에 직원들을 훈련소에 보낸다.

'임직원 재교육학교'를 취재하는 특파원 르포를 제안했다. 스테판과 함께 이미 며칠 전에 다녀왔는데, 학교라기보다는 정신병원에 가까운 곳이다. 이곳에서 여러 회사의 임직원들이 정신병원의 흰색 환자복을 입고 13일 동안 긴장된 분위기속에서 아이처럼 읽는 법, 쓰는 법, 말하는 법, 생각하는 법, 행동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중략) 15년간 영업부에서 일해온 신고는 화장품 홍보팀을 이끌고 있다. 양복과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그는 여느 샐러리맨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중략) 신고를 재교육시키기 위해 회사가 내야 하는 비용은 2,600유로(약 330만원)이다. -102~103P

저자들이 그려낸 일본의 실종을 보고, 조직 위주의 삶과 압박이 인간을 쥐어짜서 황폐화시킨 결과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살면서 겪은 스스로의 모든 것을 잊고 싶어지는 사회의 모습에 숨이 막힌다. 막다른 골목에서 증발하는 사람들에게서, 낯익은 절망과 불안이 보였다. 한국도 군대 및 회사의 조직 문화가 유연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홀연히 사라지는 미래는 남의 일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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