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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명현 MBC 기자
 임명현 MBC 기자
ⓒ 임명현 기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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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범자들>의 흥행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난 9년 동안 공영방송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며 사람들이 언론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마침 이때 지난 5년 동안의 MBC 상황을 기록한 <잉여와 도구>가 출간됐다.

임명현 MBC 기자가 쓴 <잉여와 도구>는 MBC 기자 27명을 인터뷰해 MBC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뤘다. 특히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MBC에 들어간 시용·경력직 기자들의 입장도 들어 본 것이 흥미롭다. 출간 뒷이야기기가 듣고 싶어서 지난 26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저자인 임 기자를 만났다.

임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최근 지난 2012년 170일 파업 후부터 5년 동안의 MBC를 기록한 <잉여와 도구>란 책을 출간하셨어요. 출간 소회가 있을 것 같아요.
"MBC가 지나온 시간을 기록으로 남겨 놓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제가 다 기록으로 남길 수는 없잖아요. 제가 관심 있었던 부분은 '지금 상황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너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왜 다같이 일어서지 않는가'였어요. 여기엔 어떤 심리적 이유나 정서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았어요. 또 각자의 사연이나 사정, 고민이 있었을텐데, 그런 걸 기록해 두고 싶었어요.

구체적으로 제가 관심 있던 부분은 그렇게 못한 이유나 그렇게 안 된 이유, 경영진이 잘못된 보도를 강제할 때 대항하지 못했던 이유, 또 밖에 나온 사람들은 나온 사람들대로 올바른 저널리즘을 위해 행동하지 못했던 이유 등을 기록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논문을 쓰는 것으로 그 작업을 했는데, 아무래도 논문보다는 책으로 내는 것이 관심 있는 분들이 찾아보기 편할 것 같았어요. 지난 몇 년간 제가 붙잡고 있었던 고민이나 주제 같은 걸 조금 더 많은 분과 공유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소회가 있을 것 같아요."

- <잉여와 도구>는 석사 논문을 보강한 것으로 아는데 책을 출간해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셨어요?
"논문을 낸 다음 책으로 내고 싶은 마음이 있긴 했어요. 그러나 요즘 출판 시장이 어렵다 보니 제 욕심 때문에 출판사에 이런 걸 내달라고 하기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어서 조금 기다리고 있었어요. 다행히 제가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을 올해 초 졸업했는데 대학원 동문 중 출판사를 하시는 분이 계셨어요. 4월쯤 그분이 '책을 한 권 내 보면 어떻겠냐'고 하셔서 제가 '이거 많이 안 팔릴 텐데 괜찮아요?'라고 했더니 의미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해주셔서 저도 감사한 마음으로 출판 계약을 했죠."

- 쓰시며 힘든 부분도 있었을 것 같은데.
"책을 읽으신 분들이 힘들었겠다고 말씀해 주시는 데 다른 건 안 힘들었지만, 녹취 풀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일단 물리적으로 힘들기도 해요. 제가 예전에 <시사메거진 2580>에서 취재를 해오면 작가들이 녹취를 풀었거든요. 그래서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이번에 제가 몇십 시간 분량의 녹취를 풀다 보니까 이게 물리적으로 장난이 아니란 걸 느꼈어요, 그리고 대충 풀 수가 없는 거예요. 이 사람들의 워딩 하나하나에 담긴 맥락이나 의미가 있기 때문에 숨소리까지 다 기록했거든요.

정서적으로 힘든 건 자금도 제가 인용한 인터뷰를 읽다 보면 그때 그 사람이 하던 목소리가 지금도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것처럼 플레이가 돼요. 제가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보니 새벽에 추로 녹취를 풀었어요. 녹취를 풀고 자려고 하면 이명처럼 사람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면서 꿈에도 나왔어요. 글 쓰고 사람들에게 이야기 듣는 건 힘들지 않았습니다. 저도 글 쓰면서 마음이 정리된 측면도 있어서요."

 <잉여와 도구> 책표지
 <잉여와 도구> 책표지
ⓒ 정한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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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지난 5년 되돌아보는 게 힘들었을 것 같은데.
"사실 기자로서 지난 5년을 그냥 날린 거죠. 그 생각을 하면 아주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김민욱이라는 기자 후배도 <파업자들>이라는 동영상에서 자기가 입사해서 기자로 일한 시간보다 기자가 아니었던 시간이 더 길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요.

얼마 전 김재철 사장이 고통도 은총이라고 했잖아요. 가해자가 그렇게 말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러나  힘든 시기를 살아낸 MBC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지난 시간과 화해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가해자들을 용서하는 문제는 다른 문제지만, 지난 시간들을 자신의 방법으로 살아온 것들이 분명히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나중에 저희가 더 좋은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데 분명히 도움 되는 경험으로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지난 5년을 통해서 얻은 게 있었나요?
"처음 기자를 하면서는 내가 사회와 접촉하며 사회 속에서 호흡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정규직 노동자로 MBC 내부의 자율적이고 공동체성이 강한 분위기 속에서, 영향력 있는 방송사 기자로서 말이죠. 그런데 사회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렵고 힘든 걸 몰랐다는 게 아니라 제가 약하다는 거죠. 어려운 상황이 왔을 때 저도 흔들릴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것을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제도가 중요하고, 약한 사람들끼리 연대하는 게 중요하고, 어렵고 고생하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 게 중요하죠.

후배들과 얘기해 보면 아주머니들이 전단지 나눠줄 때 거절 안 한다고 해요. 그전엔 잘 안 받았겠죠. 그러나 지금은 저희가 거리에 가서 나눠주니 그 마음을 알게 되잖아요. 지금은 나누는 사람 마음도 알게 되어서 저도 어떤 아주머니들이 음식점 전단지 나눠주면 거절 못 하고 다 받아요. 사회에 대해 알게 되고 제가 약하다는 걸 알게 되고 어렵고 약한 사람들끼리 함께 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 1부는 지난 5년에 대한 상황과 27명 인터뷰 취지 등을 서술하셨는데 MBC 로고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셨잖아요. 의도가 있을 것 같아요.
"지난해 11월 12일이 촛불집회 역사상 처음으로 백만 명이 넘은 날이었을 텐데, 그날 MBC 중계차의 현장 기자가 마이크에 붙어 있던 MBC 태그를 떼고 리포트를 했어요. 방송계 내부에 있었던 입장으로 봤을 때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만큼 MBC 보도의 신뢰나 영향력, 시민을 향한 자신감이 없어져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죠. 마침 저에게 태그와 관련한 경험 있어서 책에 쓴 거예요. 그때 식겁했던 생각 하면 지금도 아찔하거든요. 그걸 드러내기 위해 에피소드를 쓴 거죠."

- 2012년 170일 파업을 먼저 얘기해야 할 거 같아요. 책에 보면 홍대입구역과 강남역 10번 출구를 피하셨다고 하셨어요. 그만큼 170일 파업에 대한 트라우마가 컸던 것 같은데.
"트라우마는 큰 재난이나 전쟁, 참사를 겪은 후에 나타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MBC 문제를 가지고 트라우마란 용어를 써도 되는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학문적인 용어가 아니라 심리적인 내상이나 외상으로 본다면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뉴스QC팀으로 전출돼 늦게 출근을 했는데, 강남역에 학원을 다녔어요.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학원 가다보면 이게 뭐하는 짓인가란 생각이 들었어요. 2012년 파업 당시 선전전하던 기억이 계속 떠올라 힘들었죠.

근데 제 주변 사람이 더 심했던 것 같아요. 정신과 치료를 받은 선배, 약먹는 분도 계시고, 집에서 가구를 부쉈다는 분이나 폭력적인 행동을 하셨다는 분도 많은데 저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저보다 더 강도 높은 트라우마를 경험하긴 분들이 많았어요."

- 단지 파업이 길었기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트라우마가 큰 이유는 뭘까요?
"트라우마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경험할 때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소설가 박민규씨가 사고라는 건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지만, 사건은 의도가 개입된 거라고 했어요. 교통사고를 교통사건이라고 하지 않고, 살인사건을 살인사고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세월호도 사고냐 사건이냐고 부르는 것에 따라서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고 보거든요. MBC에서 일어난 일은 사건이었어요. 징계나 해고 또 그 이후 발생한 MBC 저널리즘의 붕괴 이런 게 납득이 가지 않는 사건이었죠. 또 제가 징계를 받고 방출됐는데 그 이유를 몰랐단 말이죠.

제가 의료사고를 경험한 유족을 취재한 적이 있어요. 누가 어떤 실수를 했길래 의료사고가 났는지에 납득할 수 없으면, 죽은 사람에 대해 애도를 할 수가 없어요. 장례도 못 치르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도 없는 거죠. 저는 MBC 사람들도 비슷한 측면이 있었다고 보거든요. 자기가 당한 이유를 모르고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고 현재 상황을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이 구성원 마음속의 심리적인 상처를 발동시킨 것 같아요."

- 27명을 인터뷰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시용·경력 기자 4명을 인터뷰했는데 그분들은 제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고 업무를 하며 만날 일도 없었고 일상적으로 뵙지 못했죠. 그러나 조사연구를 위해서는 반드시 그들 인터뷰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여러 경로를 통해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게 기억에 남아요. 그분들 입장에서도 조심스러울 수 있었을 텐데, 본인들 경험을 공유해 주신 것에 대해서 연구자의 입장에서 감사하게 생각해요.

또 보도국에 있었던 사람 중에 연락을 못 하고 지내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본인들의 상황을 말씀해준 분이 계셨던 것도 기억납니다. 물론 쫓겨났던, 나와 같은 처지의 기자들이 평소 속상하니까 잘 하지 않던 이야기를 공유해 주셨다는 것에 대해서도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시용·경력직 기자와 인터뷰하기가 어렵진 않았나요?
"논문을 써야 하는 입장에서 피해갈 수는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그분들과 그 집단에 대해서 가진 개인적인 느낌과는 별개로, 현재 MBC 뉴스조직 상황이나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의 심정을 파악하기 위해 인터뷰했어요. 사실 좀 더 했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도 하는데 제가 그분들과 접촉할 수 있는 경로가 제한돼 있다 보니 결국 시용기자 2명, 경력 기자 2명과 인터뷰했어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죠. 근데 이게 연구자로서 느꼈던 생각과 파업에 참여했던 MBC 구성원으로서 느끼는 감정이 섞여서 그걸 명료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연구자로서 그분들에게 감사하고 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그분들이 그렇게 해주시지 않았다면 좋은 글을 쓰기가 어려웠을 것 같아요."

- 파업에 참여했던 노조원과 시용·경력직들은 '물과 기름 같은 사이'란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인터뷰를 하며 생각이 달라지진 않았나요?
"꼭 시용·경력 기자들과의 문제만이 아니라 MBC 구성원들이 지난 2012년 파업 이후 여러 상황을 겪으면서 서로의 취약한 민낯을 생생하게 봤거든요. 이건 저와 인터뷰를 했던 한 동료 기자의 말이기도 해요. 그렇게 목격한 민낯에 대해서 실망하거나 거리감을 느끼게게 되거나, 혹은 분노하거나 용납할 수 없게 된 감정이 형성된 측면이 있어요. 그 문제가 현 경영진의 퇴진 이후 MBC 구성원들이 맞닥뜨리게 될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자들 일이라는 게 협업이 필수적이고 또 긴밀하게 소통해야 하는데, 이렇게 민낯을 본 사람들끼리 과연 가능할까 생각하면 좀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어요. 결국은 잘 풀어갈 거로 생각하긴 합니다만 한동안은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 임 기자도 '잉여 기자' 중 하나잖아요. 객관화할 필요가 있지만, 당사자라서 그게 힘들었을 것 같아요.
"객관화보다는 '거리 두기'라고 표현할께요. 그게 필요하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성공회대에서 공부할 때 과제를 제출하면, 제가 아무래도 MBC 경험이 있다 보니 MBC를 소재로 글을 많이 쓰게 되었어요. 그러면 '임명현씨 글이 너무 MBC와 밀착돼 있어서 그러면 연구자와 행위자 사이가 너무 가까워 내부 문화나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공감하기가 어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기를 여러 교수님에게 들었어요.

그래서 논문을 쓰면서는 일부러 거리 두기를 많이 하려고 노력 했습니다. 질문할 때도 서로 상황을 알기 때문에 하지 않는 질문이 있을 수 있는데 일부러 물었어요. 완벽히 잘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노력이 조금이라도 반영되었다는 점이 논문을 좋게 봐주셨다는 평가가 많은 거랑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번에 책을 쓸 땐 조금 더 제 개인적인 얘기를 썼습니다."

- <잉여와 도구>로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을 것 같은데.
"MBC 사람들이 힘들었던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워낙 힘든 분들이 많은 시대죠. 그런 상황에서 저희 문제를 이야기하고 관심을 많이 가져 달라고 사회에 말씀드리는 것이 과연 얼마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MBC가 매체로서 가진 위상이 예전 같지 않고 사람들이 지금 원하는 정보를 JTBC나 페이스북 등 각종 미디어를 통해서 채울 수 있는데 사람들이 과연 MBC 문제에 관심 있겠느냔 생각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영방송이란 플랫폼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시민의 관심사와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방송사로서 다시 우리가 되찾을 수 있도록 관심을 보내주십사란 측면도 있죠. 또 다른 측면은 버림받지 않으려면 이용당해야 하는 삶의 문법이 MBC에만 있는 건 아니고 우리 삶의 여러 현장에 있을 텐데 사실 MBC 구성원으로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던 것 같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삶의 문법은 권력을 향해 저항하다가 패배했을 때 버림받고 배제당하고 추방당하고 그렇지 않으면 도구로 이용당해야하는 것이죠. 그런 상황을 공유하면서 그런 상황을 어떻게 바꿔가고 우리 후속 세대들에게 이런 삶을 어떻게 물러주지 않을까 조금 더 넓은 차원에서 고민을 나눠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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