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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정부가 10월 2일 월요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열흘짜리 황금연휴가 완성됐다. 하도 길어서인지 추석 덕에 생긴 연휴인데도 명절 분위기를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다. 직장인들은 단군 이래 최장의 연휴라며 입이 귀에 걸렸고, 아이들도 때아닌 '가을방학 선물'에 연신 싱글벙글하고 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좋은 계절이라, 한 달 넘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부럽지 않단다.

이미 국내외 항공편은 대부분 매진됐고, 연휴 기간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만 100만 명을 훌쩍 넘길 거라는 등의 호들갑스러운 뉴스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아이들도 교실에 삼삼오오 모여 연휴 계획을 짜느라 분주하다. 그래봐야 함께 영화관에 가거나 피시방에서 게임 한판 붙자는 게 고작이지만, 졸린 눈 비비며 등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눈치다.

연휴를 코앞에 두고 교사고 학생이고 마음이 이미 콩밭에 가 있는 탓인지 수업시간 교실 분위기도 붕 떠 있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곧장 중간고사가 치러진다고 겁을 줘도 아이들은 듣는 시늉도 하지 않는다. 시험일이 며칠 남았는지 헤아리며 긴장하기는커녕 숫제 몇몇 짓궂은 아이들은 종례를 할 때마다 연휴 시작 며칠 전이라며 카운트다운을 외칠 정도다.

'불안'해서, 추석에도 학교 나오고 싶다는 아이들

 9월 고1, 2 전국연합학력평가 및 고3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시험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고3 학생들 (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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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회도 학교도 마냥 들떠 있지만, 감히 내색해서는 안 될 곳이 있다. 바로 수능을 앞둔 고3 교실이다. 불안해 하는 수험생들 앞에서 연휴 관련 이야기는 일종의 금기다. 수능을 채 50일도 남겨두지 않은 고3들에게 연휴는 고사하고 추석과 같은 명절도 그저 '평일'일 뿐이다. 한때 유행했던 '월화수목금금금'은 사실 우리나라 고3의 일상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신조어다.

"고3인데 무슨 계획이 있겠어요? 달랑 추석과 다음 날, 이틀 쉬는데."

퇴근하다 만난 한 아이에게 지나가는 말로 연휴 계획을 물었다가 괜히 면박만 당했다. 고3 수험생들의 일상을 모르는 것도 아닐 테고, 수능을 코앞에 둔 마당에 무슨 얼어죽을 연휴 계획이냐며 어이없다는 투다. 여름방학이란 단어조차 사라진 지 이미 오래고 보면, 고3에게 추석 연휴는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염장을 지를 게 아니라면 꺼내선 안 될 질문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남들 다 쉬는 연휴에 학교에 나와야 한다니 투덜거릴 만도 하건만, 불평하는 아이는 드물다. 교사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고3이니 다들 그럴 줄로 안다. 작년도 그랬으니, 올해도 그럴 것이고, 내년에도 별반 달라지지 않을 거라 지레 짐작하고 있다. 하긴 지금 고2 아이들도 얼마 전 고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여름방학을 보낸 거라면서, 내년 여름방학과 추석은 애초 '없는' 날로 여기고 있다.

이번 연휴를 수능 등급을 올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각오를 다지는 아이도 있었다. 어쩌면 '생과 사의 갈림길'이 될 수도 있다며 애써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대학별 수시모집이 마무리된 지난 15일 이후, 한 고비 넘겼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려 공부에 소홀한 아이들이 적지 않다면서, 연휴 때 풀어진 고삐를 다시 바짝 죄지 못하면, 입시를 망칠 수도 있다며 걱정했다.

한 아이는 아예 '대포자(대학 포기자)'가 아니라면, 공부를 잘 하든 못 하든 입시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집에서도 두 발 뻗고 편히 쉴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 학교만 개방된다면 주말은 물론, 추석 당일에도 나와 공부를 하고 싶다며 덧붙이기도 했다. 불안은 이팔청춘 고3 아이들의 얼굴에서 젊음의 활기를 앗아갔다. 

아이들을 만난 때는 공교롭게도 고3 기말고사의 마지막 날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교내 시험을 치르고 난 오후였으니, 수고했다는 격려의 말을 우선 건넸어야 옳았다. 며칠 동안 시험에 지친 아이들에게 위로는커녕 한가하게 연휴 타령이나 읊었으니 그들에게 몹쓸 짓이라도 한 듯 뒤통수가 따가웠다. 헤어진 뒤 퀭한 눈의 아이들은 저녁을 먹기 위해 급식소로 향했다.

어둑해진 저녁, 급식소로 향하는 아이들의 축 처진 어깨를 보니 문득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미래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시험을 치른 날조차 밤 10시까지 학교에 남아 책과 씨름을 할까'라며 혼잣말을 되뇌었다. 어쩌면 여름방학과 연휴를 즐기지 못한다는 것쯤은 약과일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고3 아이들의 학교생활은 '정상적'인 게 단 하나도 없다.

당장 평일에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는 꿈에서나 가능하다. 이날 만난 아이들 모두 습관대로 아침을 거른다고 했는데, 점심과 저녁 모두 학교에서 해결하다 보니 가족과 식탁에 마주 앉을 일이 없다고 했다. 주말을 이용해 학원을 다닌다는 한 아이는 최근 한 달 동안 가족과 단 한 번도 식사를 함께해 본 적이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고3 아이들에게 집은 그저 '여관'인 셈이다.

입시에 종속된 교육과정... 고3도 연휴 누리는 '교육개혁' 했으면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지는 12일 오전 서울 청운동 경복고에 마련된 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이 책을 펴놓고 마지막까지 하나라도 더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뤄지는 2015년 11월 12일 오전 서울 청운동 경복고에 마련된 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이 책을 펴놓고 마지막까지 하나라도 더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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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은 교육과정조차 무시되기 일쑤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분명 고1부터 고3까지 연계되어 있지만, 실제 운영에 있어서는 고3은 늘 예외다. 학사일정도 별도로 진행되고, 수업 방식과 시험 일정도 다르며, 심지어 체육대회 같은 단체 행사조차 고1, 고2 후배들과 날짜가 다르거나 단축돼 운영된다. 고3의 일상이 모두 대학입시 하나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수업은 죄다 수능을 대비해 문제풀이를 반복하는 것들뿐이고, 수능에 출제되지 않는 교양 교과는 교육과정에 배정돼 있다 해도 이름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 수능 교과에 할애되거나 자습 시간으로 운영되기 일쑤다. 동아리 활동과 봉사 활동조차 고3에겐 '아까운' 시간으로 치부되며, 창의적 체험 활동의 일환이라는 그 취지조차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내신을 좌우하는 교내 시험은 더욱 가관이다. 전형 일정이 빠듯하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대학에서 고3 1학기까지의 성적만 반영하다 보니, 2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기간은 아이들에게 차라리 '휴가'다. 일찌감치 재수를 고려하는 경우라면 모를까, 아직 수능을 치르지 않은 아이들에겐 너무 먼 미래의 일이다. 대부분의 고3에게 2학기 시험은 그저 '찍기 테스트'일 뿐이다.

대개 고3의 2학기 중간고사는 한여름인 8월에, 기말고사는 늦어도 9월이면 끝난다. 고1, 고2 같으면 중간고사가 시작되지도 않은 때에 기말고사까지 마무리되는 셈이다. 학교생활기록부에 성적이 입력되어야 하니 필요한 것일 뿐, 과목별 성취수준과 기준은커녕 범위조차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이 치러지게 되는 셈이다.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2학기의 시작인 9월에 시험을 비롯한 모든 학사일정을 끝내려는 건, 사실 고3을 위한 학교 나름의 '배려'다. 수능이 매년 11월 중순에 잡혀 있다 보니, 아이들이 그동안 공부한 것들을 최종적으로 정리할 시간을 주자는 취지다. 대략 한 달 반 동안 아무런 '방해'를 받지 말고 수능 준비에 '올인'하라는 것이다. 이는 특정 학교만의 문제가 아닐 뿐더러,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교육부나 교육청이 지금껏 이를 문제 삼은 적 없다.

그렇다고 고3의 1학기는 멀쩡한가. 5월 초 중간고사가 마무리되면 곧장 수시모집 준비 체제에 돌입된다. 담임교사는 물론, 교과 담당 교사들까지도 고3 아이들의 학교생활기록부 작성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고3 담임교사의 진학 지도 업무란 수능 대비를 위한 문제풀이 수업과 아이의 희망 대학과 학과에 따라 맞춤형 학교생활기록부를 작성하고 자기소개서를 첨삭 지도하는 게 전부다.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이 대세가 된 이후론 교실에서 '가르치는' 일보다 교무실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기록하는' 게 교사로서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돼 버렸다. 한 아이는 고3 수업이 학교생활기록부 작성을 위한 상담 아니면 자습시간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로지 대학입시에 고등학교 교육과정 전체가 철저히 종속되어 있다 보니 온갖 편법과 파행이 난무하고 있는 셈이다.

수능을 앞두고 긴 연휴로 인해 더욱 불안하다는 고3 아이들을 보면서, 온 사회가 갑론을박하고 있는 교육개혁이라는 화두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자사고와 외고 폐지도 좋고, 수능개편안과 고교학점제도 다 좋지만, 당장 고3에게도 추석 연휴를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소소할지언정 교육개혁의 시작 아닐까 싶다. 서글프지만, 올해도 추석날 성묘 대신 독서실을 찾는 고3 아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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