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 개봉을 맞아, 5.18을 배경으로 한 다른 영화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80년 5월 광주. 그날 시민들은 왜 거리로 나왔을까. 일차적으로는 독재와 계엄군에 항거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갖게된 보다 기저의 계기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기저의 계기를 '상식'과 '이념'으로 이분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영화 <화려한 휴가>와 <부활의 노래>를 통해 톺아본다. 광주의 현장을 그린 두 영화의 주인공들은 당시 시민군 대변이었던 윤상원 열사를 모티브로 했다. 그러나 두 영화가 주목한 지점에는 차이가 있다.

다만 이 구분은 다소 작위적임을 미리 밝힌다. 모든 사람의 가치관에는 상식과 이념이 뒤섞여 있으며, 애초에 두 개념은 서로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각자의 동기에 있어서는 그 구분과 선후가 존재하기에 둘을 나누는 것이다.

상식의 힘 <화려한 휴가>

 영화 <화려한 휴가>(2007)의 한 장면. 민우(김상경 분)가 사랑하는 연인 신애(이요원 분)를 바라보고 있다. 극중 민우는 윤상원 열사를 각색한 캐릭터다.

영화 <화려한 휴가>(2007)의 한 장면. 민우(김상경 분)가 사랑하는 연인 신애(이요원 분)를 바라보고 있다. 극중 민우는 윤상원 열사를 각색한 캐릭터다. ⓒ CJ엔터테인먼트


민우(김상경 분)는 광주의 평범한 택시운전사다. 동생의 안위를 걱정해 시위에 나가는 것을 말렸지만, 동생은 계엄군의 총을 맞고 숨진다. 동생을 잃은 민우는 그때부터 시민군에 참여하게 된다.

항쟁의 선두에 섰던 민우는 이윽고 마지막 날을 앞두게 된다. 도청을 지키던 민우는 또 한 명의 사랑하는 사람, 그의 애인 신애를 도청 밖으로 보낸 후 최후의 결전을 준비한다. 그리고 다른 시민들과 함께 장렬히 죽음을 맞는다. 

이렇듯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민우는 거리에 나섰다. 거리에는 민우처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들이 나와 있었다. 그들은 떠난 가족과 친구에 대한 부채감을 갚기 위해, 그리고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 싸웠다. 

이들에게서 이념을 읽기란 어렵다. 그들의 동기는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다면, 또 지키기 위해서라면 죽음을 무릅쓰고 계엄군에 맞서 싸우게 될 것이다.   

이념의 힘 <부활의 노래>

 영화 <부활의 노래>(1991)의 포스터. 태일(이경영 분)의 모티브는 윤상원 열사다.

영화 <부활의 노래>(1991)의 포스터. 태일(이경영 분)의 모티브는 윤상원 열사다. ⓒ 새빛영화제작소


태일(이경영 분)은 광주의 야학 교사다. 대학을 졸업한 태일은 가난 탓에 학교를 다니지 못한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취직이 아닌 야학을 선택한다. 야학에서 태일은 교과 지식 뿐 아니라, 사회현실과 부조리에 대해 가르치고 토론한다.

한편 태일의 대학 후배인 철기는 사법고시를 포기한다. 사회구조상 정권에 봉사할 수밖에 없는 실정법의 한계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철기는 태일의 권유로 전남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다.

이때 철기가 이끈 독재타도 시위가 광주항쟁의 단초가 된다. 이후 계엄군이 광주에 투입되는데, 이에 맞서 시민군을 이끈 태일은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다 계엄군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태일을 비롯한 이 영화 속 인물들은 80년 5월 이전부터 이미 '반국가적인' 사람들이었다. 독재자의 지배에 맞서 각자의 현장에서 운동을 조직해오고 있었다. 그들에게도 물론 광주항쟁은 갑작스러운 사건이었다.

그렇지만 오래 전부터 독재에 맞서왔던 그들이기에, 항쟁에 나서는 것은 친지를 잃는 것 같은 충격적 계기를 새삼 필요로 하지 않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들에게는 이미 억압받는 온 '민중'이 친지이자 사랑하는 연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념의 상식화, 상식의 이념화

 영화<화려한 휴가>의 스틸컷

영화<화려한 휴가>의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윤상원 열사를 통해 <화려한 휴가>가 상식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부활의 노래>는 이념에 주목했다고 볼 수 있다. 두 영화가, 아니 그날의 광주시민들이 보여준 것처럼, 상식과 이념은 각기의 힘을 갖는다. 상식은 누구에게나 짙은 호소와 설득력을 가진다. 이념은 사회인식과 장기적 안목, 그리고 강한 행동력을 부여한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 유독 이념이란 단어에만 부정적인 편견이 생긴 것 같다. 하지만 이념은 나쁜 게 아니다. 우리가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지키고자 애써 온 '민주주의' 또한 이념이 아니던가. 개중 '나쁜' 이념이 나쁠 뿐이다.

상식도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반상의 차별이 상식이었듯이, 오늘날의 상식도 훗날에는 비상식이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맑스는 분석하길, 지배계급의 사상이 지배적인 사상, 즉 상식이 된다고 했다.

게다가, 선악이 명확히 드러났던 80년 5월과 달리, 오늘날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는 상식에만 의존하다가는 자칫 그 방향성을 잃은 채 정체되기 쉽다. 이럴 때 적절한 이념이 사회 인식의 틀과 방향성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물론 잘못된 이념이 전체주의를 낳고 그릇된 방향으로 치달은 선례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념은 상식에서 출발해야 하며, 마찬가지로 상식은 이념을 반영해야 한다. 이념의 상식화, 상식의 이념화가 요구되는 것이다.

80년 5월.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상식과, 모순된 사회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이념이 만나 광주항쟁, 나아가 지금의 민주주의를 이룩했다. 이러한 상식과 이념의 병행이 오늘날에도 사회문제를 푸는 그 열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① <죄책감과 부채감 사이>, ② <대속과 단죄 사이>, ③ <회한과 각성 사이>에 이어 ④ <상식과 이념 사이>를 끝으로, [다시 보는 '오월 광주' 영화] 연재는 마무리됩니다. 이로써 올해 개봉한 <포크레인>과 <택시운전사>를 제외한,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대중영화 8편을 모두 다루었습니다.
5.18영화 광주항쟁 화려한 휴가 부활의 노래 윤상원 열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