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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1977년 11월 11일 밤 9시 15분 이리역 주변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철도 호송원이 폭약을 실은 객차 내에 켜둔 촛불이 잠든 후 부주의로 40여 톤의 다이너마이트에 불이 옮겨 붙어 일어난 사고 때문이다. 피해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원자폭탄이 터진 줄 알았다" "전쟁이 일어난 줄 알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당일 신문에 따르면, 폭발 사고 현장에는 깊이 10여m, 지름 30m의 웅덩이가 파였고, 역주변 500m 안에 있던 건물의 흔적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30km 떨어진 전주까지도 폭발음이 들릴 정도였고, 철도 공무원 16명을 포함한 사망자 59명, 부상자 1402명, 그리고 9973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사고다. 철도 사고 역사상 전무후무한 참사 사고로 기록하고 있다.

당시 폭발사고의 피해액은 90여억 원. 당시 강남의 40평형 아파트 분양가격이 2000여만 원 정도였다고 하니 피해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40년 지난 지금, 피해는 아직도 '진행형'

2017년의 익산역
 2017년의 익산역
ⓒ 익산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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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난 후 나흘 뒤 합동위령제가 치러졌다. 사고로 남편과 삼남매를 한꺼번에 잃은 부인, 자식과 남편을 잃은 유족들이 함께 끌어안고 울며 통곡하는 현장 사진이 남겨져 있다.

또 위령제에 참여한 이재민들이 함께 슬픔을 달래고 서둘러 복구 현장으로 다시 달려갔다는 신문 기사는 당시 사고의 참상과 복구 현장이 어느 정도 급박했는지를 짐작케한다.

한편 익산 문화재단에서는 오는 11월 11일 '이리역 폭발사고 40주년 추모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아픔을 넘어 치유로, 치유를 넘어 화합과 도약의 미래를 꿈꾼다'를 주제로 당시 사고의 아픔을 추모하고 기억하자는 뜻으로 시민합창단도 모집하고 있다.

익산의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리역 폭발 사고 30주년에 맞춰 2008년 개봉된 <이리>(엄태웅, 윤진서 주연)라는 영화 한 편을 소개했다.

그는 "<이리는> 엄마 뱃속에서 폭발사고의 영향으로 장애를 갖고 태어난 순수하고 여린 여동생 진서와 장애를 가진 동생을 보살피며 살아가는 오빠 태웅 남매의 이야기다. 사고 이후에도 이리에 남아 힘겨운 삶의 상처를 감내하며 살아가는 슬픈 영혼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잊고 지내고 생각지 못한 유가족들의 아픈 삶을 상기시켜준다"며 사고 이후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치유의 시간이 되는 40주년 행사여야

40년 전 당시 사고 현장을 목격했다는 50대 남성은 "엄청난 참상 속에서도 약탈이나 강도가 전혀 없었고 사고가 난 역 주변 식당이 모두 피해를 입어 밥을 먹을 수 없었는데 형편이 나은 인근의 시민들이 집에서 가져온 솥으로 라면을 끓어 나눠주었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남성여고에 재학 중이었다던 나아무개씨는 "학교 건물이 무너져 추운 날씨에 운동장에서 수업을 받은 기억이 생생하다. 피해를 입은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나눠 먹은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당시 <동아일보> 11월 12일자 기사는 시내에 7개의 무료 급식소와 임시 천막이 곳곳에 설치됐고, 1주일 간 앞다퉈 달려온 학생 봉사대와 군인, 전주·군산·김제 등의 자원 봉사자가 15만 명을 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당시 현장 구호와 복구에서 드러난 시민정신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신문 기사가 있다. 사고 2년 후인 1979년 12월 <경향신문>은 "'피해자와 유족들이 폭발사고를 내고 10년 형을 받고 수감된 호송원 신아무개씨를 석방해달라'는 내용으로 최규하 대통령에게 탄원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석방탄원서에는 "사고를 계기로 입었던 뜨거운 동포애에 보답하고 자랑스러운 시민상 정립을 위해 펼치고 있는 애향운동에 호응하고자 한다"라고 쓰여 있다. 

이처럼 당시 참사현장에서 빛난 시민들의 봉사와 나눔 정신은 사고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큰 힘이 되었고 재기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사고 후 40년이 흐른 지금, 익산역에는 1시간이면 서울에 닿을 수 있는 KTX가 정차한다. 당시 폭발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모현동에는 초고층 아파트와 신시가지가 조성돼 사고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다가오는 이리역 폭발 40주년 행사를 맞아 익산시의 임형택 시의원은 "이리역 화약폭발사고는 비록 아픈 역사이지만 희생자와 유족을 다시 한번 살피고 고락을 함께한 위대했던 시민정신을 기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이제라도 각종 자료와 증언 등을 수집하고 이와 부합되는 장소를 찾아 전시관을 마련해 살아있는 교육장으로 활용케 하고 나아가 지역사회발전 동인으로 삼을 수 있는 자산으로 활용한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익산참여연대 '참여와 자치' 81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이리역 폭발 사고, #이리역 폭발 40주년, #익산역, #이리역 폭발 사고 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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