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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그내순례길에서 어쩌면 가장 알려지지 않은 곳이 이곳 무명순교자의 묘가 아닐까. 솔뫼성지나 신리성지 혹은 합덕성당 같은 다른 버그내순례길의 주요 거점들에 비해서 말이다. 


마을로 들어서는 볼품없는 이정표 하나를 놓치면 주변을 뱅뱅 돌고 도는 일이 생긴다. 겨우겨우 이정표를 찾아 작은 길로 들어서도 이곳이 맞나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간다. 간신히 마지막 이정표를 놓치지 않는다면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 


간이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면 저 멀리 작은 십자가가 보인다. 그곳이 무명 순교자의 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지역의 공동묘지 한 켠에 자리잡은 무명 순교자의 묘소다. 


순례길 탐방 후 마지막으로 들른터라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는 중이다. 어스름한 오후의 묘역은 찾는 이들 마저 없어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거미줄을 헤치며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1972년 봄 손자선 성인의 선산이던 곳이 과수원으로 개발되면서 연고자가 없는 32기의 묘가 발굴되었다. 이때 한결같이 묘마다 목이 없는 시신이 나왔는데 더 특이한 점은 묘마다 많은 묵주가 함께 나와 천주인들의 묘로 추정했다고 한다. 대원군이 교인들의 목을 베면서 그 수를 세기 위해 시신만을 버렸기 때문에 목 없는 시신들이 묻히게 되었다는 말도 전해진다.

1985년 4월 2차 파묘 때 14기의 무연고 묘가 또 발굴되었다. "대전리에 있는 십수 기의 묘는 손씨 가문의 치명자"라는 구전(口傳)이 있던 터에 십자가와 함께 발굴된 이들 묘는 손자선 성인의 가족 순교자로 전해졌고, 무명순교자묘 뒤편으로 옮겨졌다. 


찾는 이 없는 무덤엔 잡초가 무성하다. 살아서는 이름이 있었을까.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게 무에 그리 큰 의미가 있을까만은 순례객으로 찾아가 마주하자니 그렇게 애잔하고 쓸쓸할 수가 없다.   



'믿음'이라는 건 무엇일까. 목숨과 맞바꿀만큼 가치가 있는 걸까. 이렇게 쓸쓸한 묘역을 돌아보며 그들이 걸었던 하늘의 길을 감히 상상해본다. 

덧붙이는 글 | 충남넷에도 송고된 기사입니다.


태그:#버그내순례길, #무명순교자의묘, #손자선,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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