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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이주여성의 명절 스트레스는 심각한 수준이다
 결혼이주여성의 명절 스트레스는 심각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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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편 고향 가면 '월남댁' 소리 듣는 지연씨의 이야기

지연(가명, 30대)씨는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이다. 엄연히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한국인이지만, 시댁이 있는 시골에 가면 그냥 '월남댁'으로 불린다. 평생 벼농사와 함께 8000평이 넘는 비닐하우스에서 땀 흘렸던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올 때마다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에 여념이 없다. 걸음마를 시작한 손녀와 며느리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인 시아버지는 그렇게 할아버지 티를 팍팍 낸다.

마흔 넘도록 결혼하지 않고 타향에서 제빵사로 일하던 막내아들이 같은 공장에서 만난 외국인 아가씨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시아버지는 마뜩잖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손녀가 생긴 이후로 입이 헤벌어졌다. 달력에 빨간 날이 보이면 어김없이 전화를 해서 "놀러 안 와?"라며 다그치기 일쑤다.

직장 때문에라도 살고 있는 곳에서 돌잔치를 하기 원했던 지연씨와 달리 남편은 부모님이 계신 곳에서 해야 한다고 우겼다. 어쩔 수 없이 지연씨는 지지난 주에 아이 돌을 맞아 시댁에 갔다가 힘든 이틀을 보냈다.

농부 특유의 부지런함이 배여 있는 시부모님은 달리 일이 없어도 언제나 새벽 5시면 일어났다. 지연씨는 아이 때문에 새벽잠을 설치다가 잠시 눈을 붙이려고 할 때 시어머니가 부엌에서 뭔가 다듬는 소리를 들었다. 부엌에 가면 시어머니는 들어가 자라고 하실 게 뻔했다. 그래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놔두고 부엌으로 가기 전에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요즘 한참 걸음을 배우는 아이는 손 닿는 것마다 잡아당긴다. 엄마가 없는데 깨어나기라도 하면 사방이 지뢰밭이 될 게 뻔했다.

야속한 남편은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리 흔들어도 꿈쩍도 않았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지만, 시부모님이 들을까 봐 그럴 수도 없었다. 남편은 한 번 잠이 들면 아이가 울든 말든 깨어나는 법이 없다. 시부모님은 막내아들에게 농사일을 시켜 본 적이 없다. 그래서 8시 넘어서야 눈 비비며 일어나도 뭐라 하는 법이 없었다.

지연씨는 베트남 항구이자 공업도시인 베트남 하이퐁 출신이다. 부모님은 시내에서 건어물 장사를 했다. 농사일이라곤 구경조차 해 보지 않았던 지연씨에게 시댁은 모든 게 낯설고 서툰 일뿐이다. 하우스에서 뭔가 따라 해 보려고 해도 요령도 없고 힘도 달려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실수만 안 해도 다행이다. 그런 지연씨에게 시아버지는 아이나 보라고 손사래를 친다. 그런 배려가 고맙긴 하지만, 내심 며느리가 하우스에 들어가길 바란다는걸 모를 만큼 눈치 없진 않다. 

반면, 남편은 모든 게 어색하고 서먹서먹하기만 한 지연씨가 왜 시골 생활을 어려워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고향에 가면 어린아이가 돼 버리는 남편, 그런 남편에게 고향은 꿀맛 같은 휴식을 보장하는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며느리에 대한 편견 드러낸 시댁 이웃들

지연씨가 아이를 낳은 후로 상황은 좀 더 복잡해졌다. 특히, 시아버지가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술판이 벌어질 때면 지연씨는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심정이다. 시아버지는 여자들이 부엌에서 안주를 차리는 동안 며느리 얼굴을 동네 사람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보이고 싶어 '빨리 안 나온다'고 재촉한다. 며느리 자랑을 하며 우쭐해 하는 소리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월남댁'이 어떻고 하는 소리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하이퐁이 베트남 북부라고 해도 어른들에겐 의미 없는 항변이다.

지연씨는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입국하는 다른 결혼이주여성들과 달리 한국에서 연애 결혼했다. 동네 사람들이 베트남 사람이 어떻다 하는 소리가 자신과 비교하며 칭찬하는 이야기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괜히 얼굴이 빨개지고 속상해진다.

그들은 어느 집 며느리가 국적 따더니 아이를 버리고 집을 나갔다느니, 사람이 변했느니 하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안주거리로 삼았다. 마치 모든 베트남 여자가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중에 자신만 칭찬하는 소리가 마음 편하게 들릴 리가 없었다.

돌잔치 때 벌어진 일도 여느 때와 똑같았다. 동네 어른들은 덕담 속에 툭툭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외국인 며느리들에 대한 편견을 드러냈다. 지연씨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였지만, 그들은 그게 상처가 되는 줄도 몰랐다. 그렇게 마음도 상하고 몸도 피곤한 이틀을 보내고 돌아오자, 아이는 콧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지연씨도 덩달아 감기에 걸려 며칠을 고생했다.

지난 일요일, 지연씨는 추석 연휴 때문에 남편과 다퉜다. 이제 겨우 아이 콧물이 멈췄는데, 남편은 열흘 가까운 연휴를 부모님과 함께 보낼 궁리를 하고 있었다. 말로는 연휴 때 하우스 일이 한창 바쁠 때라 그렇다고 했지만, 소가 웃을 일이었다.

남편은 하우스에 잠깐 얼굴을 내밀었다가 어디 가서 낚시하고 와선, 반찬값 해 왔다고 자랑할 사람이다. 그런 남편과 함께 시댁에 갔다가는 열흘 동안 아이를 안고 하우스에 들어가야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지연씨는 오늘도 요구한다.

"딱 이틀만 갔다 오자."

지연씨 투쟁이 승리로 끝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막내아들 내외가 손녀와 함께 열흘 정도 묵었다 가기를 바라는 시부모님 말에 남편은 그저 순종하기 때문이다. 그걸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연씨를 위해 외쳐 본다. 연휴 내내 시댁에 있겠다는 "이 사람 누가 좀 말려 주세요!"

2. 남편과 사별했지만, 10년 넘게 시댁에 가는 빈씨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그러나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만 놓고 보면 크게 변한 게 없다. 오히려 어떤 부분에선 퇴행하는 실정이다.
 계속 시댁에 가야 하는걸까? 빈씨는 마음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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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30대, 가명)씨는 자신을 '사라 엄마'라고 부르라고 말한다. 베트남에서 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한국 국적을 따지 못한 그는 한국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다. 그래서 속 편하게 '사라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빈은 추석 연휴 때 10월 1일부터 7일까지 쉰다. 직장생활을 하며 이렇게 길게 쉬어 본 적은 처음이다. 여름휴가도 고작 사나흘이 대부분이었고, 이렇게 길지 않았다. 빈씨가 여태 국적을 따지 못한 이유는 아이를 낳던 달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귀화 시험을 몇 번 봤지만 계속 떨어졌다. 혼자 일하면서 사라를 키우느라 시험공부 할 여력이 없었던 탓도 있고,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 기초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게 큰 원인이었다.

사람들은 사별한 지도 10년이 넘는데 왜 재혼하지 않는지 종종 묻는다. 그러면서 주위에서는 자꾸 결혼을 부추긴다. 빈씨는 이제 겨우 서른을 조금 넘긴 젊은 나이다. 하지만 빈씨는 병원에서 처음 딸아이에게 젖을 먹이며 '아빠는 세상을 떠났지만, 남부럽지 않게 잘 키우겠다'던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빈씨를 시부모는 기특해 했다. 명절 때마다 잊지 않고 찾아오고, 안부를 묻는 며느리가 대견하다며 어린 손녀에게는 제법 큰돈을 용돈으로 주는 것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사실 빈씨가 처음부터 그런 사랑을 받았던 건 아니었다. 남편이 죽자마자, 시댁에서는 얼마간의 목돈을 쥐어주며 귀국을 종용했다. 그 중심에 남편의 누나이자 사라 고모인 '형님'이 있었다.

형님은 사라를 시부모에게 맡겨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형님은 남편이 없으면 불법체류자가 되는 거라며 빈씨에게 귀국까지 3주간의 말미를 준다는 통보를 하고, 사라를 데리고 사라지기도 했다. 형님은 애타게 사라를 찾는 빈씨에게 아이를 입양 보냈다면서 찾지 말라고 했다. 그는 사라의 미래나 행복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단지 상속권이 빈씨에게 돌아가는 게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사라를 되찾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지가 벌써 10년 전이다. 그동안 시부모님과는 사이가 좋아졌다. 특히 재작년에 남편 남동생이 빈씨의 소개로 베트남 여자와 결혼할 때까지만 해도 시부모는 "사라 엄마가 우리 집 복덩이야"라고 했다.

동서가 남자 아이 낳은 뒤, 태도 바뀐 시댁 식구들

그런데 작년 추석을 앞두고 동서가 남자 아이를 낳으면서 시댁 식구들 눈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라 입양 문제로 시비가 붙었던 형님은 빈씨의 부아를 돋우기로 작심한 사람 같았다. 10년 전 일 때문에라도 미안해 하는 게 마땅한 형님은 지금까지 국적 못 딴 것도 억울한데, 베트남 사람들을 싸잡아 욕하며 핀잔주는 걸 아무렇지 않게 했다.

"베트남 여자들은 국적만 따면 베트남 남자 만나서 딴 살림 차린다며. 혼자 애 키우려고 국적 안 따는 거야? 여태 국적 못 따고 뭐했어."

형님 말대로라면 동서야말로 화를 내야 할 텐데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동서는 멀뚱멀뚱 옆에서 눈치만 보며 둘의 심기를 살폈다. 어색함을 달래려던 시어머니는 동서가 살림을 잘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명절 땐 좀 일찍 오든가. 명절이라고 음식 한번 해 본 적이 없잖니"라는 말로 전에 없던 타박으로 빈씨에게 섭섭함을 드러냈다.

그 와중에 시아버지는 "아이고, 우리 집 기둥, 크는 거 봐라" 하며 손자를 들어 올렸다 내렸다 했다. 사라를 예뻐하긴 했지만, 손자를 대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는 걸 빈씨는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시아버지에게 손자는 가문을 이을 자식이지만, 사라는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인연이었다. 시아버지뿐만 아니라 시댁 식구들 모두, 심지어 동서까지 이제 빈씨를 남이 돼도 좋을 사람 취급하기 시작한지도 모른다.

지난 추석을 생각하면 빈씨는 시댁에 가는 게 마음 편할 리 없다. 그래도 사라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르고 자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빈씨는 불편해도 시댁을 방문하기로 했다. 다만 속상한 일만 있을 걸 뻔히 알면서 하루라도 먼저 가서 동서와 같이 음식을 장만할지, 추석 당일에만 인사를 드리고 올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딸아이를 위해 재혼도 하지 않고 억척스레 살아온 사라 엄마가 긴 추석 연휴가 마음 편치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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