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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 예산읍내 상설시장 안의 점포들이 하나둘씩 철시를 해도 휘둘리지 않고 슬기롭게, 때론 고집스럽게 문을 열고 있는 가게가 있다. 수십년 단골고객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진영슈퍼(옛 진영상회)도 그런 곳이다. 상호 옆에 '미원', '다시다'를 선전하는 간판이 참 정겹다. 전화번호가 한자릿수(2국)이던 시절에 만들었으니, 정말 오래됐다. 사람들은 이곳을 시장안 '건어물집'이라고 부른다.

상설시장 안쪽에 자리한 진영슈퍼 전경.
 상설시장 안쪽에 자리한 진영슈퍼 전경.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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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30여 평의 넓은 공간에 각종 건어물과 제수용품, 식재료 등 수많은 물건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상품 진열방식도 마트나 편의점들처럼 얍삽하지 않다. 일자형 선반 위에 우직하지만 한 눈에 보일 수 있도록 진열해 놓아 보는 이의 마음이 편하다.

진영슈퍼의 주인은 김윤수(70) 사장이다. 70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 동안의 환한 얼굴로 손님을 맞이한다.

김 사장은 예산리(신흥동)에서 딸 여섯 사이에 외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연기군청에서 공무원이 됐다. 하지만, 3년 뒤 공직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외아들이기도 하거니와 공무원 월급으로는 살 자신이 없기도 했단다.

그리고 1971년 시장 구옥에서 <진영상회>를 열었다. 부모님이 노점서 하던 건어물가게를 물려받아 본격적으로 가게를 시작한 것이다. 상호는 선친의 함자를 따서 지었다고 한다.

김윤수 사장이 가게 안에서 상품들을 정리하고 있다.
 김윤수 사장이 가게 안에서 상품들을 정리하고 있다.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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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반대를 하셨죠. 넥타이 매고 깨끗하게 살 수 있는 직장을 버리고 왔으니... 하지만 곧 받아들이셨어요. 아들이 하나 밖에 없으니까. 지금 생각해도 장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1979년 상설시장이 생겼고, 지금의 점포 12평을 분양받아 가게를 옮겼다. 그리고 20여년 넘게 성업을 이뤘다. 당시만 해도 마을공동체가 살아있고 대가족사회여서 각종 잔치가 풍성했다. 혼인, 환갑, 장례 등 관혼상제를 집에서 치르던 시절이었으니, 건어물 등 각종 식재료들이 얼마나 많이 팔렸겠나.

"호시절이었죠. 도고, 선장, 청양까지 잔치음식재료 배달을 했으니까요. 두 세집 잔치거리를 한 번에 배달했을 정도였죠."

돈도 잘 벌었고, 2남1녀를 낳아 모두 대학 가르치고 '재금'나는데 보태줬으니 누구보다 아버지 역할을 다 했다. "큰 아들은 서울대, 둘째 아들은 고려대를 나와 좋은 직장을 잡았고, 딸은 선생을 하고 있으니 더 바랄 나위가 없다. 그야말로 보람있는 결실"이다. 3층 건물도 지어 노후도 안정됐다.

김 사장은 그러면서도 아직까지 가게를 열고 손님을 맞이하는데 조금도 소홀함이 없다. 세상이 변해 찾아오는 손님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들었지만, 슈퍼는 여전히 꼿꼿하다.

진영슈퍼 안
 진영슈퍼 안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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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물건 찾는 사람들은 우리가게에 옵니다. 수십년 단골들이지요. 나 또한 그런 단골들이 있기 때문에 물건 하나하나에 더 신경을 쓰죠. 고객을 놓치지 않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신용과 신뢰에요. 수입산과 국산을 정확히 구분해 팔고, 웬만한 음식은 내가 요리법도 설명을 해줘요"

아주머니들이 몰려와서 음식재료를 살 때 서로 요리하는 비결을 주고 받는데, 그걸 수십년 동안 어깨너머로 배웠으니 이론만큼은 일류요리사란다.

김 사장은 또 식재료를 담을 때도 반드시 일회용 위생장갑을 끼고, 반드시 흰 봉지로 한 번 담은 뒤, 검은봉지에 넣는다. 검은 봉지는 재생봉지이기 때문에 가려서 쓰는 것이다.

그 옛날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갔던 사탕들. 잔치집은 사라졌지만 무속인들이 사간다고 한다.
 그 옛날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갔던 사탕들. 잔치집은 사라졌지만 무속인들이 사간다고 한다.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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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지만 정말 사소하지 않은 것들이 쌓여 신용과 신뢰를 만들었고, 아직도 많은 단골들이 진영슈퍼를 찾는 이유다.

"상설시장 안의 점포수가 너무 많이 줄었어요. 3분의 1도 안남았으니까.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려면 예산군행정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스레트 지붕도 교체가 필요하고, 버스노선도 시장을 경유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줬으면 좋겠어요."

김 사장의 바람대로 예산상설시장이 역사의 뒤안길에서 빠져나와 오래도록 사람사는 맛이 거래되는 곳으로 남기를, 한가위 보름달에 기원해보자.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와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건어물, #제수용품, #잔치, #추석,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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