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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드  채플 농장
 올드 채플 농장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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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중부 웨일즈의 케수스 역에 내려 올드 채플 농장으로 가는 30분 내내 사방이 양 목장이었다. 앞에도 양, 옆에도 양, 뒤에도 양, 숨 쉴 때도 바람에 섞인 쾌쾌한 양 똥 냄새가 났다. 30분 내내 생활 편의 시설이라고는 주유소 하나, 편의점 하나뿐이었다. 올드 채플 농장은 사람보다 양이 더 많은 깡촌에 있었다.   

올드 채플 농장의 주인인 케빈과 프렌 부부는 18년 전 자녀 3명과 귀농했다. 농촌에 헐값으로 나온 교회 건물을 매입했다. 올드 채플 농장은 만 이천 평 규모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그 열 배인 12만 평(여의도 면적의 약 7분의 1) 규모가 됐다. 케빈과 프랜 가족, 10명 정도의 단기 자원봉사 일꾼, 무급 장기 인턴이 같이 산다.

농장에는 풍력 발전기, 야채 텃밭, 과수원, 생활 하수 처리 시설, 태양열 충전기, 장작 연료로 돌아가는 보일러 시설 등 자급자족 생활을 위한 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물론 농장 부지의 90%는 양 목장이다. 케빈과 프렌 가족의 자급률은 곡류, 기름류, 향신료, 열대과일 등을 제외하면 100%였다.

남편 케빈은 고고학자다. 중세 시대 교회 유물 발굴팀에서 일하며, 1년에 천 팔 백만 원 정도를 번다. 케빈의 수익은 세금 납부, 생필품 구매, 보험료 납부 등의 가족 생활비로 쓴다. 영국은 무상 의료와 대학을 제외한 무상 교육을 하므로 의료비와 교육비 지출은 없다. 농장에서 나온 야채, 과일은 100% 농장 식구들이 먹고, 양고기와 양털은 95% 판매한다. 여름, 가을에는 농장에서 민박도 운영한다. 양 목장과 민박 운영으로 번 돈은 농기구 구매, 차량 유지비로 쓴다. 

 올드 채플 농장 감자 수확 후 정리 중
 올드 채플 농장 감자 수확 후 정리 중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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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채플 농장의 하루 노동 시간은 7~10시간이었다. 올드 채플 농장 홈페이지에 노동 시간은 하루 5시간 반이라 적혀 있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주로 양 목장의 녹슨 울타리를 제거하고, 새 울타리를 설치하는 일을 했다. 양들이 녹슨 울타리 사이로 빠져나가 다른 사람의 농장으로 갔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해야 할 일이었다.

녹슨 울타리 제거를 위해 집어 든 와이어 자르는 도구는 3kg 정도 되는 쇳덩이였다. 3kg 쇳덩이 도구를 어깨높이까지 들기도 하고, 바닥에 용변 보는 자세로 쭈그려 앉아 울타리를 제거했다. 녹슨 울타리 주변에는 1초만 스쳐도 피부에 독이 오르는 독초들이 가득했다. 피하려고 해도 자꾸만 손등과 발목에 독초가 스쳤고, 그때마다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한번 부풀어 오른 피부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야 가라앉았다.

주방에서 10시간 동안 혼자 일한 날도 있었다. 농장 식구들은 내게 한식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농장에 오기 전 한인 마트에서 산 고춧가루와 참기름으로 상추 겉절이와 수제비를 만들었다. 아침 식사 후 남은 설거지를 하고, 9시 40분부터 점심 준비를 했다.

흰 밀가루가 없어 호밀가루로 수제비 반죽을 했다. 감자, 당근, 양파, 마늘을 씻어서 다듬고 끓는 물에 넣으니 12시가 됐다. 서둘러 수제비 반죽을 떼어 끓는 물에 던지다시피 넣고 간을 맞추고 나니 12시 30분이었다. 점심시간까지 30분이 남았다. 30분 동안 상추와 오이를 대충 찬물에 씻어 겉절이를 만들었다. 급하게 만들다 보니 상추는 손으로 자르고, 오이는 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크게 잘랐다. 겨우 오후 1시 점심시간에 맞춰 식사 준비를 끝냈다.

 올드 채플 농장 수확물
 올드 채플 농장 수확물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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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 준비는 더 힘들었다. 호스트 가족이 가스레인지 말고 화목난로가 에너지 효율이 우수하고 유지비가 낮다며 저녁에는 요리용 화목난로 사용을 권했다. 난로에 지푸라기, 나뭇가지, 장작을 피라미드형으로 차곡차곡 쌓고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가스레인지 없이 불을 붙인 게 뿌듯하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가스레인지보다 뜨거운 화덕 난로 앞에서 기름 냄새 맡아가며 7시간째 서있자니 어지럽고, 숨이 막혔다. 몸이 너무 고되 혼자 한국말로 욕을 중얼댔다.

한 달 전쯤, 미국 코네티컷에서 신혼집을 스스로 짓고, 뒷마당에 닭과 오리를 키우며 자급의 살던 친구 헤이워드를 만났을 때만 해도 자급자족 삶이 자유롭고 멋있어 보였다. 자급 농장에 들어와 매일 고강도 육체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100% 자급자족하는 삶이 사회생활 하며 월급 받는 일만큼이나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현금사용을 최대한 줄이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생산하는 삶이 반자본주의적, 친환경 살이에 가깝지만, 먹고사는 일은 뭐든 만만한 건 없었다. 자급자족 노동과 임금 노동이 절충된 생활 방식이 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몸도 피곤한데, 마음도 편치 않았다. 호스트 프렌이 불편했다. 양 목장 울타리 제거 작업 중 내 팔 길이만 한 대형 전정 가위로 울타리 근처의 나뭇가지를 잘라야 하는데, 손에 힘은 없고, 근육통은 갈수록 심해졌다. 손가락 굵기 두께의 나뭇가지 하나 제대로 못 자르고 낑낑거리는 나를 본 프렌은 한숨을 쉬고 미간을 찌푸리며 "더 세게 잘라야지. 대형 전지가위 나 줘. 넌 소형 전지가위로 작업 해"라고 했다. 내가 기대한 말은 "좀 쉬웠다 해. 일 힘들지?"였는데. 나뭇가지 자르기 뿐 아니라 울타리 기둥 박기, 철사 설치하기 등 애를 먹고 힘만 축내고 있으면 프렌은 어디선가 나타나 한숨을 쉬며 핀잔을 줬다.

울타리 제거 작업하는 날 생리 중이기도 했다. 올드 채플 농장에 오기 전에 있던, 텐이프론 공동체에서는 회원들의 배려로 생리 양이 많은 날엔 하루 2시간만 일했다. 프렌에게 "나 생리 중인데, 숙소에 가서 생리대 좀 갈고, 조금 쉬었다가 오고 싶어요"라고 했지만 프렌은 한숨을 쉬며 "그래, 차로 데려다줄 테니 생리대 챙겨서 와"라고만 했다. 생리한다고 쉴시간은 커녕 4시까지 농장의 모든 일꾼과 울타리 제거 및 설치 작업을 마치고, 나와 다른 단기 봉사자 단 둘이서만 감자 수확 작업을 했다. 프렌이 울타리 제거 작업 하러 가기 전 시킨 일이었다.

올드 채플 농장 일이 벅차고, 호스트와의 관계는 어색하니 자꾸 올드 채플 농장에 오기 바로 전에 있던 탠이프론 공동체가 떠올랐다. 텐이프론 공동체는 1만1000평이니 12만 평의 올드 채플 팜에 비해 일이 적었다. 텐이프론 자급률이 떨어지더라도, 여유 있게 일하며 소비를 줄이고 자연과 가까이 살고, 공동체 사람들끼리 도우며 사는 게 목표였지만, 올드 채플 농장은 현금사용을 자제하고, 자급률 100%를 유지하는 게 우선이었다. 여유 있게 일할 사치 따위 없었다.

텐이프론 공동체에서 나는 일시적이지만 공동체 회원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내 생일에 텐이프론 공동체 회원들은 본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는 녹차 케이크를 만들어 줬고, 생리 때는 일을 적게 해도 된다고 했다. 그곳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잘 살기 위해 일하고, 다른 사람에게 돌봄 받았다. 올드 채플 농장에서는 나는 근육통, 생리통에 시달리는 일 못하는 일꾼에 불과했다.

정반대 분위기의 텐이프론 공동체와 올드 채플 농장을 경험하고 난 후,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할까 선명하게 느껴졌다. 내가 지쳐 있을 때 돌봄 받고, 반대로 이웃이 힘들 때 돌보며 사는게 자급자족, 친환경 살이보다 우선이었다. 내게 자급자족, 친환경 살이의 궁극적 목표는 사회적 약자를 착취하는 사회 구조를 벋어 나고 싶어서인데, 정작 같은 건물에 살며 매일 얼굴 보는 사람과 서먹한 사이라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까. 결국, 내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건 타인의 사랑과 이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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