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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졸업한 지 십 년도 더 지났는데 전 공부를 합니다. 학창 시절과 지금은 공부의 의미와 목적이 다르기는 하지만 여전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선 남들이 좋다고 하는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를 했습니다. 농사를 짓던 저의 부모님께서는 "힘들게 농사 지을래, 공부할래"라고 묻곤 하셨습니다. 따로 공부하란 말씀은 하시 않으셨지만, 힘들게만 보였던 농사보다 손쉬워 보이는 공부를 택했습니다.

부모님은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믿으셨습니다. 저 역시 당시엔 이 믿음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노력하면 보상을 받게 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자연스레 범생이가 되어 대입시험 준비를 열심히 했고, 나름 괜찮은 성적을 받아 좋다는 대학교에 합격했습니다. 대학교에서도 범생이로 생활했고, 역시 운좋게 괜찮다는 기업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으로 공부는 끝이 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적이 아닌 생존을 위한 무한 경쟁이 지배하는 직장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일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등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거기다 범생이로 살면서 미뤄두었던 것들(악기, 언어 등)도 배우고 싶었기에 시간을 쪼개가며 학생 시절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해왔습니다.

새로운 시대, 과거의 목적은 효력을 다했다

 공부 공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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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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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엄기호 작가의 <공부공부>를 읽다 "공부를 왜 할까?"라는 물음에 멈칫했습니다. 저자는 지난 시절 한국 사회에서 '공부'의 이유가 '1990년대 이전: 신분상승, 1990년대: 자아실현,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생존'으로 변화해 왔다고 분석합니다. 제가 공부하며 성장했던 시기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시기인데 제가 공부했던 목적도 저자의 구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공부 목적은 이제 그 효력을 다했다고 저자는 선언합니다. 또한 전국민이 열심히 '공부'를 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진정한 공부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공부가 신분상승의 도구도 되지 못하고, 자아실현에 이르게도 못합니다. 더군다나 철저한 성과 중심의 경쟁 사회에선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그 노력이 성과로 인정받기는커녕 탈락의 근거가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공부를 해야 할까요?

네 공부를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요. 저자는 "자신이 망가지지 않게 돌보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부를 새롭게 정의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공부란 단순히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도우며 성장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서로를 고양하며 기쁨을 주는 관계가 되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새로운 공부를 통해 아래와 같은 모습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자기 삶을 다루는 데는 무능하기 짝이 없다. 남을 조롱하고 파괴하는 기술은 기가 막히게 발달했지만 자기를 돌보는 언어와 기예는 없다. 자기계발 하느라 새벽부터 밤까지 공부하며 능력을 쌓고 있지만, 계발한다는 자기는 잃어버린 지 오래다. 무얼 계발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계발만 하고 있으니, 그 계발은 자기 자신을 파헤치는 삽질에 불과하다."(14쪽)

자신을 돌보는 공부로의 전환

저자가 제안하는 공부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탐색하고 준비하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결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때문에 공부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무엇을 배우고 익히는 것을 견디고 즐기는 몸을 만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려는 강박에서 벗어나 긴 호흡으로 자신과 사회를 돌아보며 개인적 문제뿐만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며 토론하는 공부를 하자고 저자는 제안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발견하는 진로 교육보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내 삶을 돌볼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발견할 수 있는 전환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이것을 '자아실현'에서 '자기에 대한 배려/돌봄'으로의 전환이라고 제안한다."(134쪽)

여기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과 자신의 한계를 잊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성과주의 사회에서 남과 비교되기 때문에 한계는 극복해야만 하는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남과의 비교에서 벗어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한계를 바라보자고 말합니다. 한계를 다룸의 대상으로 삼을 때 그 위에 성장의 발판을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한계를 인정한다는 말은 자기 능력에 미리 선을 긋고 노력하지 말라거나 주제 파악하고 찌그러져 살라는 뜻이 아니다. 주어진 것이 극복이 아니라 다룸의 문제가 되면, 한계를 인정한다는 것은 늘 잠정적이다. 지금은 내 능력이 거기까지 닿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렇기에 그 능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먼저 집중한다는 뜻이다. 지금 내가 가진 능력을 능수능란하게 잘 활용할 수 있을 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으며, 넘어갈 용기와 자신도 생긴다."(141쪽)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가장 먼저 자신의 한계를 알려면 무엇인가를 충분히 해봐야 합니다. 이 '충분히'를 혼자서 아는 것이 쉽지 않기에 객관적으로 바라봐 줄 수 있는 좋은 스승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제안합니다. 이와 함께 개인은 자신이 모르는 게 뭔지 알기 위해서 자신의 무지를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때로는 하고 싶은 것에 끌려다니는 삶에서 벗어나 언제든 그만 둘 수 있는 힘을 키우며 욕망을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저자는 나와 나에게 속한 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자신을 배려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재산(소유), 육체, 지위나 정체성, 욕망 등 내게 속한 것들은 자신을 알아가는 데 활용해야 하는 도구들입니다. 또한 나를 알아가기 위해선 자신에 대해 관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배우는 과정에선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배우고 있는지 관찰하고 파악하는 태도가 필요함을 저자는 강조합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하는 것'이 너무 많아 그 '하는 것'에서 '겪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체험의 과잉/경험의 빈곤에 시달린다."(188쪽)

자기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도모하며 자기 자신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알아가는 과정으로서의 공부에서 이 체험의 과잉/경험의 빈곤을 주의해야겠습니다. 익힘의 과정은 고단하고 지루하기에 이를 다루기 위해선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알게 되어 느끼는 매력(지적쾌감)이 있어야 한다는 점도 주지해야겠습니다. 이제부턴 기쁨을 주는 공부를 해보려고 합니다.

"두 가지 기쁨이 있다. 자유와 창조의 기쁨, 향유의 기쁨이 있다. 창조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능수능란한 기예를 배우고 익히며 연마하는 과정이 바로 공부다. 창조하고 향유하는 삶, 이것이 멋진 삶이며, 멋지게 사는 것은 삶의 목표이자 공부의 쓸모다. (중략) 창조와 향유에서 인간이 느끼는 것은 성장의 기쁨이다. 공부는 성장을 통해 기쁘게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공부의 목적은 재미가 아니라 기쁨이다."(216-217쪽)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바라건대, 지치지 말기를. 제발 그러하기를. 모든 것이 유한하다면 무의미 또한 끝이 있을 터이니. -마르틴 발저, 호수와 바다 이야기-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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