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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주> 세월호 참사에서 언론은 무기력했다. '기레기'라는 조롱도 받아야 했다.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후 한국의 언론은 달라졌을까. <오마이뉴스>는 재난을 겪은 시민들을 만났다. 국내외 기자들과 전문가도 만났다.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한국 언론의 재난 보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가 언론의 재난 보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잘못된 재난 보도의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우리이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은 취재진의 안전을 중시한다. 사진은 일본의 한 민영방송 기자가 헬멧과 구명조끼 등의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 취재를 벌이는 모습.
 일본 언론은 취재진의 안전을 중시한다. 사진은 일본의 한 민영방송 기자가 헬멧과 구명조끼 등의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 취재를 벌이는 모습.
ⓒ 일본민간방송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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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참사를 계기로 우리 언론인은 이런 의지를 담아 재난보도준칙을 제정하고 이를 성실하게 실천할 것을 다짐한다."

한국기자협회 등 국내 주요 언론단체가 재난보도준칙을 마련해 시행에 들어간 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꼭 다섯 달째 되던 2014년 9월 16일이었다. 여기에는 무리한 보도 경쟁을 자제하고, 선정적인 보도를 피하자는 다짐이 담겼다.

과연 기자 중에 이런 보도준칙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오마이뉴스>가 전국의 각 언론사 기자 1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재난보도준칙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답한 기자는 6명에 불과했다. 26명은 내용을 대충 안다고 답했다.

'본 적이 있지만 내용은 잘 모른다'는 응답이 34명. 본 적도 없으며 내용도 모른다는 경우가 34명에 달했다.

내용을 잘 안다거나, 대충이나마 안다는 응답자에게 다시 재난보도준칙이 실제 생활에서 유용하게 작성되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보통이라는 응답이 14명, 대체로 아니라는 대답이 10명이었다. 대체로 그렇다는 응답은 8명이었고, 매우 유익하다는 응답은 없었다.

작은 언론일수록 매뉴얼 구축해야

일본 언론은 재난 상황에 대비한 메뉴얼 구축에 힘쓰고 있다. <산케이신문>의 경우 와이셔츠 주머니에도 넣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대규모 재해 발생시 초동대응'이란 메뉴얼을 구비해 놓고 있다.
 일본 언론은 재난 상황에 대비한 메뉴얼 구축에 힘쓰고 있다. <산케이신문>의 경우 와이셔츠 주머니에도 넣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대규모 재해 발생시 초동대응'이란 메뉴얼을 구비해 놓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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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다양한 재난에 대한 매뉴얼을 구축해 놓은 언론사가 많다. 갑작스러운 재난에 당황하지 않고 초기에 제대로 된 정보를 전하기 위한 방법이다. 지진이나 원전 같은 분야에 전문 기자를 두고 있는 언론사도 상당수 있다.

물론 이를 한국에 직접 적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자만 2000명이 넘는 일본의 유력 중앙지와 전국의 기자를 다해 봐야 2~300명 남짓인 한국의 중앙지가 같은 규모의 인력 편성을 하기에는 사실상 여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가사리 코지(五十嵐 浩司) 오쓰마여자대학 커뮤니케이션문화학과 교수는 그럴수록 매뉴얼 정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직원이 200명밖에 안 되는 회사에서 전문가를 키우는 건 어렵습니다. 그럴 경우 일본의 작은 언론사들은 전문가들의 리스트를 갖춰놓고 있습니다. 원전의 경우 일반 전문가뿐 아니라 시민단체 등 원전에 반대하는 분들의 리스트가 매뉴얼에 정리되어 있죠. 이렇게 되면 굉장히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정보를 흡수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재난보도, 중요한 건 교육이다

일본 언론은 재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상시적인 재난 보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사진은 지난 8월 초 일본에 상륙한 제5호 태풍 '노루'와 관련한 정보를 야구 중계 중에도 전달하고 있는 모습.
 일본 언론은 재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상시적인 재난 보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사진은 지난 8월 초 일본에 상륙한 제5호 태풍 '노루'와 관련한 정보를 야구 중계 중에도 전달하고 있는 모습.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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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컸다. 타나카 아츠시(田中淳) 도쿄대학 종합방재정보연구센터장은 "불확실한 정보를 어떻게 취급하면 좋을지 판단할 수 있는 인재 육성이 중요하다"면서 "생명 지키기 위해 지금 뭘 할지 판단할 인재를 양성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의 언론인 설문조사에서 기자 100명 중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본 경우도 4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96명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기자들이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 없다고 느끼는 건 아니었다.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대답(57명)과 중요하다는 대답(39)을 더 하면 96명이 전문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가 교육을 하기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할까. 가장 많은 기자들(54명)이 한국언론진흥재단 등 준정부기관에서 전문적인 재난보도 교육을 맡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기자협회 등 언론단체(26명)나 사내프로그램 (12명), 대학 등 교육기관(7명)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였다.

<오마이뉴스>가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2012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5년간 재난보도 관련한 교육을 받은 언론인은 487명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전체 교육 건수 28건 중 18건이 신입 기자들에 대한 하루 정도의 짧은 교육이었다.

교육 장소가 서울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도 전국의 많은 언론인이 참여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지적이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많은 지역 기자들은 교육이 지나치게 서울에 집중돼 있는 점이 교육 참여의 어려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설문조사에서도 '재난보도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면 교육 장소는 고려사항으로 작용합니까'라는 질문에 33명이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고, 49명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 5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국내에서 실시한 교육 중 단 3건만 서울이 아닌 곳에서 이루어졌다.

우리가 재난 보도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

재난 보도와 관련한 교육 프로그램이 한국에도 존재하지만 그 폭이 넓다고 보기는 힘들다. 사진은 지난 2014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재난보도 해외 교육과정 참가자들이 강의를 듣는 모습.
 재난 보도와 관련한 교육 프로그램이 한국에도 존재하지만 그 폭이 넓다고 보기는 힘들다. 사진은 지난 2014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재난보도 해외 교육과정 참가자들이 강의를 듣는 모습.
ⓒ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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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보도에 있어 많은 전문가가 언론인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는 어쩌면 간단하다. 넘쳐나는 오보를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함이고, 재난 현장에서 언론인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물론 올바른 보도가 '독자'이자 '시청자'인 국민을 위하는 길임은 더 말 할 나위가 없다.

일본 현지 취재 과정에서 만난 작은 언론사 기자들까지 강조한 것이 바로 '재난보도'가 언론의 의무란 말이었다.

일본의 작은 인터넷 언론사 <Japan In-depth>의 아베 히로유키(安倍宏行) 대표는 "그냥 보도하는 게 아니라 그런 재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보도가 진정한 보도"라고 말한다. 그는 "미디어는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여러 곳에 광범위하게 알릴 힘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탐사보도 전문매체인 <와세타크로니컬>의 기무라 히데아키(木村英昭) 편집간사는 언론인들의 책무에 방점을 찍었다. 기무라 편집간사는 "자신은 관계가 없다고 해도 보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기만 관계 없다고 하는 것은 핑계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가 덧붙인 말은 인상적이었다.

"저널리즘의 문제를 저널리스트가 해결하지 못하면 되겠어요?"

덧붙이는 글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태그:#재난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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