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 16개 지역MBC는 서울MBC와 함께 무너졌습니다. 지역 현장에서 취재한 세월호 참사, 사드 배치 등은 제대로 방송되지 못했고, 서울MBC 편집자들의 구미에 맞는 뉴스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김재철, 안광한, 김장겸 사장이 내려 보낸 낙하산 사장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역MBC 잔혹사를 소개합니다. 김장겸 사장이 물러나도, 지역MBC에는 그가 내려 보낸 낙하산 사장들이 남게 됩니다. MBC가 완전하게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려면, 지역MBC도 살아나야 합니다. '지역MBC 잔혹사'는 안동MBC 강병규 PD가 연재합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 건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 건물. ⓒ 권우성


지난 8월 25일 언론전문지 <미디어오늘>의 정철운 기자는 매우 충격적인 기사를 올렸다. ''김장겸 체제 핵심' MBC 법무실장 사표'라는 단독 기사로 부당노동행위의 핵심인물들이 연이어 현 경영진에서 '탈출'하고 있다면서 해외 도피 우려까지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MBC 노조원들은 부당노동행위를 전반적으로 수립하고 지휘했던 당사자의 사표라는 기사에 '드디어 내부붕괴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라며 적폐체제의 붕괴를 기대했다.

그 보도가 나가자마자 오래전 알고 있던 분께 장문의 문자가 왔다. 십여 년 전 수용자 측면에서나 법 제도적 정책 측면에서나 서울 중심의 중앙 집중적인 미디어 현장에서 작게나마 기울어짐을 바로잡아 내고자 함께 노력했던 분이었다. 필자는 지역방송과 관련된 이슈들에 대응하고 정책수립 및 제도화를 위해 지역MBC와 지역민영방송이 힘을 합쳐 함께 꾸린 정책 단위 협의체였던 지역방송협의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그분은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지역방송 정책의 법 제도화를 위해 함께 일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연락해 온 그분은 "요즘 MBC 파업결의 보면서 잘 지키지 못한 정치권의 책임 속에 저도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라 많이 죄송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마음만으로 응원하고 있다"며 이러저러한 안부와 함께 확인해 볼 게 있다면서 질문을 던졌다. "그때 우리와 함께 일했던 정재욱 변호사가 지금 언론 보도에서 말하는 MBC 부당노동행위의 핵심이라 불리는 정재욱 법무실장, 그 사람이랑 동일 인물인가요?"라며 <미디어 오늘> 기사를 봤다는 것이었다. "그 정재욱이 이 정재욱이라 하니 충격이네요"라던 그는 사람이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일까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고 했다.

"그 정재욱이 맞나요?"

정재욱 MBC 법무실장은 지금 부당노동행위의 핵심으로 악명이 높다. 하지만 지역MBC와는 꽤 오랫동안 인연을 맺었던 인물이다. 서울 출신인 그는 1995년 당시 MBC경남으로 통폐합되기 전 서부경남을 취재 방송하던 진주MBC에 PD로 입사했다. 지역방송에서 일하며 PD들과 교분을 쌓았던 모양이다. 지금은 MBC 문화사업국장으로 있는 김석창 전 진주MBC PD와는 각별한 인연이 있었던 듯하다. 왜냐하면 그 이후로 지금까지 20년이 넘도록 두 사람이 끈질기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1996년 정재욱은 TBC 대구방송으로 자리를 옮긴다. 지역방송 PD로 일하면서 사법시험을 준비했는지 2002년 제4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2005년 서울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그때도 지역방송과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다.

2005년은 지역MBC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던 시기다. 각각의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고 있던 19개 지역MBC는 정책기능이 미약했다. EBS를 포함한 서울의 지상파 4사가 모두 정책부서를 두고 이른바 '대관업무'를 하고 있었지만 민영방송을 포함한 지역방송들은 당시 방송규제기관이었던 방송위원회를 접촉하거나 방송 관련 상임위의 국회의원들을 만나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할 때였다. 이런 정책기능을 하기 위한 연합 조직인 지역MBC정책연합(이하 정책연합)을 출범시킨 것이다.

서울에 사무실을 내고 지역MBC에서 6~7명의 인력을 파견해 지역방송 정책을 고민하고, 주무 기관인 방송위원회에 의견을 전달하며, 국회와도 협력해 법률 개정작업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지역방송 대상을 제정해 콘텐츠경쟁력 강화에도 나섰으며 당시 위성방송과 케이블TV, IPTV 등 뉴미디어에 지상파 콘텐츠 재전송 문제까지 매우 폭넓은 활동을 전개해 나갔던 그야말로 지역방송 정책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던 시기였다. 지역MBC 정책연합에서 팀장으로 활동했던 김석창 진주MBC PD(현 MBC 문화사업국장)는 진주MBC시절 PD 후배였던 정재욱 변호사를 정책연합의 법률자문 역할로 합류시켰다.

당시로써는 종합편성채널(종편PP)에 대한 논의도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정책연합은 < BOB>이라는 채널명까지 확정해 지역MBC와 민영방송을 아우르는 지역연합 종합편성채널을 야심 차게 준비했다. 결국 종편PP허가 여부에 대한 방송위원회의 머뭇거림과 서울MBC의 반대로 출범은 좌절되었고, 당시 MBC 최문순 사장은 '종합편성채널을 지향하는 지역전문채널'을 우선적으로 발족시키자고 지역MBC를 달랬다. 그나마 다행히도 지역MBC가 제작했지만, 지역 내 송출이라는 한계를 극복해 유료채널을 통한 지역 콘텐츠의 2차 유통을 담당하는 전문채널인 지역MBC 슈퍼스테이션 MBCNET을 개국하는 성과를 일궈내기도 했다. 정재욱은 그런 이력을 바탕으로 2008년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임기 3년의 지역방송발전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기도 했다.

한때였지만 지역MBC와는 깊은 인연을 맺고 지역방송발전을 위해 지역방송인들과 함께 노력했던 그가 말을 갈아탔다. 친정 진주MBC를 떠나 자신의 고려대학교 선배인 김재철 사장의 휘하로 MBC에 입성한 김석창이 정재욱을 끌어준 힘센 동아줄이었다. 2011년 3월 김재철은 정재욱 변호사를 자회사인 MBC플러스미디어 이사에 임명했다. 통상 MBC의 국장급 이상들이 차지했던 자회사의 이사 자리를 서울MBC출신도 아닌 사람이 꿰찬 것이다.

 뉴스타파가 보도한 'MBC 고위간부의 밀담, “그 둘은 증거없이 잘랐다” 편에 나온 백종문 MBC미래전략본부장의 발언

뉴스타파가 보도한 'MBC 고위간부의 밀담, “그 둘은 증거없이 잘랐다” 편에 나온 백종문 MBC미래전략본부장의 발언 ⓒ 뉴스타파 화면


 백종문 녹취록 파문을 보도한 문화방송 노보 2196호.

백종문 녹취록 파문을 보도한 문화방송 노보 2196호. ⓒ 언론노조MBC본부


MBC 노동탄압의 주역이 된 정재욱

이사 임기가 끝난 뒤 김재철 사장의 자문변호사 역할을 하고 있던 정재욱은 구설수에 오른다. 지난 2016년 1월 25일 당시 민주당 최민희 의원이 폭로한 소위 '백종문 녹취록'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백종문 녹취록'은 2012년 MBC의 170일 최장기 파업 사태 이후 MBC 사측의 악의적 노동탄압의 적나라한 증거였다. 지난 2014년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 등 MBC 간부들은 극우 매체인 <폴리뷰> 편집국장 등을 만나 파업 참가자에 대한 '보복성 징계'뿐 아니라 노골적인 프로그램 간섭과 압력 행사, '상해임시정부 폄훼' 등 반헌법적인 극우 발언을 쏟아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MBC의 각종 프로그램 폐지와 인사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백종문 MBC 부사장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의 공영방송 장악 의혹과 관련된 조사를 받기위해 31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하고 있는 가운데 MBC노조 조합원들이 '백종문 구속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7.10.31

MBC의 각종 프로그램 폐지와 인사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백종문 MBC 부사장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의 공영방송 장악 의혹과 관련된 조사를 받기 위해 10월 31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하고 있는 가운데 MBC노조 조합원들이 '백종문 구속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최윤석


 MBC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이 해고된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왼쪽)를 두고 "증거가 없는 것을 알고도 해고했다"라고 말한 녹취록이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에 의해 공개되어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26일 오후 마포구 상암동 MBC본사앞에서 언론노조MBC본부와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MBC를 국민의 품으로 공동대책위' 주최로 공영방송 MBC장악음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운동 돌입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박성제 기자와 최승호 PD가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 면회 신청을 위해 건물로 들어가려하자 청원경찰이 출입문을 걸어잠궜다.

MBC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이 해고된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왼쪽)를 두고 "증거가 없는 것을 알고도 해고했다"라고 말한 녹취록이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에 의해 공개되어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2016년 1월 26일 박성제 기자와 최승호 PD가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 면회 신청을 위해 건물로 들어가려하자 청원경찰이 출입문을 걸어잠갔다. ⓒ 권우성


백종문 본부장이 참석해 최승호, 박성제 두 사람에 대한 이유 없는 해고 발언을 했던 이 자리에도 김석창 기획홍보본부 부국장이 동석했다. <폴리뷰> 편집국장이 자신들에게 MBC 관련 정보를 입수할 창구를 마련해 달라고 하자 정재욱 변호사는 자신이 관련 정보를 가장 많이 안다며 직접 나서 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다만 자신을 인용하지 말라는 말은 덧붙였다. 이에 백 본부장은 "(정 실장이) 임원회의도 다 들어간다"며 신뢰를 보내기도 했다. 정재욱은 "당구장 건물 이만한 데 세 얻어서 그냥 말만 하던 데가 임시정부인데 무슨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느냐"며 헌법상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왜곡된 역사관을 보여주기도 했다.

'백종문 녹취록' 사태가 있은 후 2014년 4월 정재욱 변호사는 MBC법무저작권부에 부장으로 입사한다. 부장 입사 후 불과 한 달 만에 부국장으로 승진했고, 그해 10월 상암동 시대를 맞아 단행한 MBC의 조직개편에서 정재욱 부장은 확대 개편된 기획국 산하 법무실장으로 영전을 거듭한다. 부당징계, 전보 등 관련 소송을 통괄 지휘했던 정재욱 실장은 김재철-안광한-김장겸으로 이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노동탄압과 불법노동행위의 주역으로 성큼 올라섰다.

지난 2014년 12월 <한겨레21>이 단독으로 입수한 '장기 저성과자에 대한 조치 관련' 답변서에 따르면 MBC는 8~9월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화우로부터 각각 두 차례에 걸쳐 저성과자를 해고할 때 법적 정당성을 획득하는 방법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이들 법무법인에서조차 인사평가의 최저등급 강제할당에 따른 저성과자 해고는 정당성이 인정되기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당징계, 전보에 대한 소송을 이어갔고 대부분 패소해 소송비로만 수십억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 모든 행위의 설계자는 다름 아닌 정재욱 법무실장이었다.

김장겸이 강제수사를 받게 될 상황이 다가오고 언론노동조합이 발표한 부역자 명단에도 오르게 되자 위협을 느낀 것으로 보이는 정재욱 실장은 회사를 떠나려 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MBC의 법무실장이다. 사의를 표명했지만 경영진 고위층의 만류로 잔류했다는 후문이다. MBC의 부당노동행위를 총괄해 지휘한 그가 그동안 MBC에서 벌어졌던 부당노동행위의 전모를 폭로할까 두려워한 현 경영진이 압박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지역MBC의 등에 비수를 꽂으며 김재철의 품으로 들어간 정재욱, 배신자의 말로는 비참할 것이다.

MBC상암 사옥 집결 '총파업 승리' 다짐 ‘김장겸 체제 퇴장, 공영방송 MBC 재건을 위한 언론노조 MBC본부 합동출정식’이  4일 오후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 광장에서 전국에서 모인 2천여명의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MBC상암 사옥 집결 '총파업 승리' 다짐 ‘김장겸 체제 퇴장, 공영방송 MBC 재건을 위한 언론노조 MBC본부 합동출정식’이 4일 오후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 광장에서 전국에서 모인 2천여명의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 강병규PD는 1996년 안동MBC 프로듀서로 입사해 2005년~2007년까지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조직국장과 지역방송협의회 사무국장으로 일했습니다. 2011년~2012년은 MBC본부 안동지부장과 지역방송협의회 정책실장으로 활동하면서 김재철 퇴진을 위한 총파업 당시 정직3개월 징계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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