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시대2>의 한 장면. 돌아온 강언니는 화끈했다. 하지만….

<청춘시대2>의 한 장면. 돌아온 강언니는 화끈했다. 하지만…. ⓒ JTBC


"스트레스 좋아하네. 그게 뭐? 미친 년, 지만 힘들어, 사는 거 안 힘든 사람 어딨어, 다 힘들지. 지 힘든 건 지가 알아서 해야지, 왜 우리 예은이한테 지랄이야, 지랄이. 그리고 니들 누구편이야? 그년 편이야? 왜 그년 편이야? 뭐해 바보야, 빨리 옷 입어."

'강언니'가 돌아왔다. <청춘시대> 속 시원하게 할 말 다 하는 인물이었던 '강언니' 강이나(류화영)의 등장은 비록 10분여의 짧은 분량이었지만 강렬하고 속 시원했다. 23일 방송된 시즌2 10화에서 '데이트폭력'의 피해자이자 그 상처를 이겨나가는 과정에서 친구들과의 불화를 겪고 상심한 정예은(한승연)을 화끈하게 위로하는 이 강언니의 직설화법은 분명 캐릭터로나 극의 전개로나 '활력'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10분뿐이었다. 기이하게도 '활력'을 잃은 <청춘시대2>는 급기야 10화 마지막, 이 '벨 에포크' 셰어 하우스의 하우스메이트들이 다시금 남성의 과도한 물리적 폭력을 넘어 자신들의 공간에서 인질로 잡히고 협박을 당할 것을 예고했다.

도대체 지지부진했던 극의 활력을 왜 이런 '자극적'인 사건에서 찾으려고 하는지, '현실적인' 캐릭터와 에피소드로 상찬 받았던 시즌1의 장점들은 어디로 휘발됐는지 의아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건, 이제 4화만을 남긴 시즌2 전반에 녹아든 캐릭터와 전개의 문제를 곱씹는다면 해소되는 '극약처방'이기도 했다. 그건 비단, '강언니'의 부재에서 비롯된 약점은 아니었다.

2016년의 드라마였던 <청춘시대> 시즌1

"<청춘시대>의 박연선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는 여기에 담겨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지극히 '꼰대'스러운 해결책이 아닌, "니가 왜 죽어"라거나 "그래, 살어! 죽지마"라는 단편적인 이해를 넘어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통한 '함께 살아가기'의 모색."

작년 8월, 시즌1의 종영을 아쉬워하며 이러한 상찬을 보냈더랬다(관련 기사: 단언컨대, '올해의 드라마' <청춘시대>). 분명 박연선 작가와 제작진은 이 반짝반짝 빛나는 드라마를 통해 다섯 '청녀'들의 성장과 사랑에 '죽음'과 '비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게 하면서도 결코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균형감을 잡을 줄 알았었더랬다. 우리네 삶이 그렇다는 듯, 형식과 내용 양면에서까지 모두 이 다섯 청춘들의 희로애락을 넘침도, 모자람도 없이 그려냈다.

특히나 강이나의 캐릭터가 그랬다. 명백히 '세월호 참사'를 은유하는 선박사고의 생존자인 강이나와 그를 쫓아다니던 또 다른 사고 희생자의 아버지 오종규(최덕문)의 오해를 풀고 화해를 이끌어낸 <청춘시대>는 명백히 "살아라"는 메시지를 던진 바 있다. 이는 그 어느 때 보다 죽음의 그림자가 개개인에게 가깝게 드리워진 시대의 우울을 다독이는 것에 다름 없었다.

헌데, 시대가 바뀌었다. '촛불'이 당도했고, '정권'이 바뀌었다. 그러면서 캐릭터들은 훨씬 더 납작해졌다. 시즌2의 방영 시점과 함께 캐릭터들 모두 정예은의 데이트폭력 사건을 해결한 이후 현실 속 시간과 함께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시즌2의 캐릭터들은 분명 위의 극 내외적 요인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기이한 퇴행을 반복 중이다.

캐릭터들의 활력은 어디로 갔을까

 <청춘시대2>의 한 장면. 시즌 1에서 빛났던 캐릭터들이 돌아왔지만, 어쩐지 매력이 예전 같지 않다.

<청춘시대2>의 한 장면. 시즌 1에서 빛났던 캐릭터들이 돌아왔지만, 어쩐지 매력이 예전 같지 않다. ⓒ JTBC


죽음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던 유은재(지우)는 시즌 내내 헤어진 '구남친'과의 재회에만 온 신경을 쏟는다. '빈곤'하지만 당당했던 '윤언니' 윤진명 역시 시즌 내내 망해가는 아이돌 그룹 멤버 헤임달(안우연)과의 에피소드로만 기능한다.

정예은의 트라우마 극복기는 현재 진행형이라기보다 처음부터 캐릭터나 개별 에피소드들 모두가 중심이 모호해보였다. '송선배' 송지원의 친구 찾기는 시즌1의 '벽장귀신'과 같은 주요 '맥거핀'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맥없이, 큰 의미를 주지 못하고 끝나 버렸다.

남은 것은 단 하나, 'PPL'이라 오인 받을 정도로 꾸준하게 카메라에 비춰진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의 저서 <지연된 정의>에서 떨어진 쪽지가 이끌 후반부 반전 혹은 극적 전개일 터.

시즌2는 초반부터 이 '하메'들을 저주하고 죽여 버리고 싶다는 내용의, 오인됐을지도 모를 쪽지가 '맥거핀' 역할을 하는 동시에 정예은의 데이트폭력 2차 피해 가능성과 연결하면서 극을 전개해 나갔다.

더군다나 이 (내용의 진실이 계속 지연되는)쪽지를 가지고 이 '벨 에포크'에 입주한 '조자룡' 조은(최아라) 캐릭터의 성정체성과 가족과의 갈등을 극 초반에 배치함으로서 나름 촘촘한 전개를 꿰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은의 성정체성 화두 역시 후반으로 갈수록 스무 살 무렵 여성이 소녀에서 성인 여성으로 성장해 나가는 예상 가능한 범위의 캐릭터 양상을 보여줌으로서 그 극적·성정치적 가능성을 휘발시켜 버렸다.

지극히 이성애적인 시각이라는 비판이 돌출됐던 것도 이에 기반 한다고 볼 수 있다. 페미니즘은 둘째 치더라도, '여성혐오 반대'라는 동시대적 화두는 그저 유은재가 듣는 심리학과 수업의 배경으로만 (시청자들이) 전해들을 수 있을 뿐이다. '여성'과 '청춘', '계급'과 '동시대성'이란 의미와 주제들이 '하메' 다섯 캐릭터에 분산돼 극의 전개와 적절이 녹아들어갔던 시즌1과는 다른 양상임이 분명하다.

'한드' 시즌2의 성공, 어려울까

 <청춘시대2>의 포스터. 시즌제 제작 자체가 많지 않은 환경에서 시즌2로 돌아와 반가웠다. 그래서 더욱 그 결과물이 아쉽기만 하다.

<청춘시대2>의 포스터. 시즌제 제작 자체가 많지 않은 환경에서 시즌2로 돌아와 반가웠다. 그래서 더욱 그 결과물이 아쉽기만 하다. ⓒ JTBC


시즌2 방영 소식에 환호했던 팬들 역시 소셜미디어 상에서 꽤나 당혹스런 반응을 고백하는 중이다. 시즌1에서 유은재를 연기했던 배우 박혜수가 "대본 때문에 하차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왔다. 팬 층이 없지 않았고, 여러 호조건 속에 야심차게 1년 만에 방영된 시즌2는  2~3%대 시청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즌1 방영 당시 공감대를 형성했던 호평들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 모든 걸 차치하더라도, 시즌2는 '게으른' 후속편의 전형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시작부터 그랬다. 아무리 '세월호' 사건을 품은 강이나 캐릭터가 버거웠든, 배우 스케줄의 문제든, 1화에서 강이나를 떠나보내기 전 떠들썩하기만 한, 게다가 우연에 가득 찬 '운전 미숙' 에피소드와 펜션 강도 사건을 별다른 개연성 없이 엮은 것은 시즌2의 출발로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평범해지고 납작해진 유은재와 윤진명 캐릭터는 스스로 발산했던 <청춘시대>의 매력을 절반으로 감소시키기에 충분했다. '데이트폭력' 희생자 정예은의 성장기는 큰 공감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건 작가 스스로 무리수를 둔 것 같은 조은 캐릭터도 마찬가지였다. '강언니'의 빈자리는 컸고, 송지원의 분량은 대거 늘었지만 시즌1에서 두드러졌던 감초 이상의 역할에서 도약하진 못했다.

인간이 무릇 '진보'하는 존재일 순 없다. 그러나, '미드'나 '일드'나 시즌2로 거듭되면서 변화하고 진화하는 것이 '좋은' 드라마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시즌1에서 비롯된 환경 내에서 캐릭터 스스로의 성격과 목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든, 더 흥미롭게 전편의 상황을 반복하든 말이다. 그건 '벨 에포크'의 하메들이 제 아무리 스무살이고, 사회 초년생일지라도 예외는 없을 것이다. 

이상하게 <청춘시대2> 속 캐릭터들은 매력도, '유니크'함도 전편만 못 하다. 이미 익숙한 캐릭터들이라서가 아니라 에피소들 자체의 활력도 현저히 떨어진다(아이돌 그룹과 소속사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아, 우리의 '윤선배'가 이렇게 '병풍'으로 전락하다니...) 심지어, 반짝였던 나레이션들도 평이한 수준으로 전락한 듯 느껴질 정도다.

개인적으로, <청춘시대2>의 퇴행의 요인이 궁금해서라도 꼭 14부화 마지막까지 챙겨볼 작정이다. '한드'의 시즌2는 성공 자체가 그리도 어려운지, 아니면 시즌1을 향한 과한 상찬이 문제였는지 말이다. 더군다나,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 침입한 범죄자'라는 영미권 영화에서 많이 본 듯한 설정이 예고된 11화는 기필코.  

청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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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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