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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8월 말, 맥도널드 배달노동자인 박정훈(32)씨를 만났다. 퇴근하고 온 그는 많이 지쳐보였다. 비를 맞으며 8시간 동안 오토바이를 탔을 테니 힘이 넘치는 게 오히려 비정상일 터였다.

그는 '건강한 일터 안전한 영등포를 위한 노동인권사업단'이 기획해 매달 만나고 있는 '우리집에 온 노동자'의 네 번째 주인공이었다. 사회자의 소개로 앞에 나선 그는 언제 피곤해 했냐는 듯 눈빛을 빛내면서 라이더 생활의 이모저모를 조곤조곤 풀어냈다.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속엔 우리가 집에서 편히 받아먹는 배달음식에 어떤 땀이 담기는지, 비 오는 날 오토바이를 타며 배달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9개월째 배달을 하면서 그가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생생한 이야기들이었다.

배달음식에 담긴 라이더의 눈물

 집에서 편히 받아 먹는 배달음식에는 배달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이 담겨 있다.
 집에서 편히 받아 먹는 배달음식에는 배달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이 담겨 있다.
ⓒ 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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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우선 배달노동시장과 관련한 숫자들을 나열했다. 1200만. 배달의 민족이나 배달통, 요기요 같은 배달앱으로 1달 동안 주문받는 건수다. 중국집이나 피자집에 직접 전화를 걸어서 주문하는 경우는 제외했다는 말이다. 6000만. 올해 4월 기준 배달앱이 다운로드된 수다. 5000만 대한민국 국민수를 넘어선다.

2조원. 배달앱을 통해 배달 거래되는 연간 규모다. 12조. 직접 주문을 포함한 국내 전체 배달음식시장의 규모다. 8200명. 통계청에서 밝힌 배달종사자의 수다. 앞선 수치들에 비해 턱없이 작다. 이 통계에 잡히지 않은 노동자의 수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례로 한 배달대행업체는 소속 배달대행인이 1만 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짜장면 시킬까?" "피자 시켜 먹자"고 가볍게 얘기하던 주문음식 속엔 이처럼 거대한 수들이 숨어 있었다.

배달노동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선입관도 있다. 배달은 10대 청소년들이 잠깐씩 하는 아르바이트라는 인식이다. 박씨는 이와 관련한 퀴즈를 냈다. '버거킹 강남점에는 할아버지 라이더가 있다?' '맥도날드에는 여성 라이더가 있다?' 답은 '그렇다'였다. 배달이 10대 청소년들만의 일이 아니었다. 그는 "라이더 중엔 가계를 책임지는 가장들이 많다"고 전했다.

질문은 계속됐다. '라이더는 대부분 1년 미만 일한다?' 답은 '그렇지 않다'였다. 근무기간은 극단으로 나뉜다. 3개월을 버티는 자와 못 버티는 자로. 3개월을 넘어선 사람들은 4~5년씩 일하는 경우도 많단다.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이 되어야 하지만 정규직인 경우는 거의 없다. 또 정규직이길 바라지 않는 배달노동자도 많다.

"왜냐하면 정규직이 돼도 좋아지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고용만 보장되지 임금은 어차피 최저시급이니까요. 그러면 정규직이 의미 없잖아요. 그럴 바에는 아프면 일찍 가고 휴가도 쉽게 낼 수 있는 알바가 낫다는 거죠."

박씨의 설명에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관된 질문이 이어졌다. '주로 학력이 낮은 사람들이 배달을 한다?' 답은 이번에도 '그렇지 않다'였다. 라이더 중엔 대졸, 대학원생도 많다. 그는 "대기업에 취직하면 연장근무도 많고 여가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젊은 층이 있다는 거다"라고 이 답의 의미를 설명했다.

마지막 질문은 '맥도널드에서 배달할 때 수수료는 1건당 1천원이다?'였다. 앞선 질문들에 감으로 답을 척척 맞히던 참가자들도 이 질문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1천원은 받겠지"라며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답은 '그렇지 않다'였다. 맥도널드에서는 배달 한 건 당 400원을 받고 있었다. 객석 곳곳에서 "너무 한다"라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400원을 받기 위해 속도를 내지 않아요. 배달원 중 속도를 내는 사람들은 대개 배달대행이에요. 그 사람들은 건당 3000원을 받거든요."

배달 수수료 400원은 몇 년을 일했건 똑같다. 1시간 동안 평균 3~4건을 배달하니 1시간 동안 1500원 안팎을 받는다. 거기에 최저시급이 더해지니 1시간 숨차게 오토바이를 몰아봤자 7000~8000원을 버는 셈이다. 팔 이곳저곳에 화상 입으면서 햄버거를 굽는 크루(Crew)들은 최저시급만 받으니 400원이라도 감지덕지해야 할까. 귀한 이들의 노동이 하찮게 취급받는 현실과 마주한다.

"배달노동자에게 폭염수당, 한파수당 줘야 해"

박씨가 사진 한 장을 보여준다. 오토바이에서 박스 두 개에 가득 든 햄버거를 내리고 있는 그의 모습이 담겼다. 그는 "햄버거가 가볍다고 생각들 하는데 매우 무겁다. 이렇게 10만여 원어치를 배달한 뒤 400원을 받는 거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처럼 많은 양을 한꺼번에 시키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맥도날드에선 8000원 이상만 주문하면 배달을 해준다. 다만 비슷한 지역의 배달들을 묶어서 나가기 때문에 무겁긴 마찬가지다.  

그가 이어서 라이더로서 겪는 고충들을 열거했다. 무엇보다도 한여름이나 한겨울, 날씨가 안 좋은 날 배달할 때의 힘겨움은 상상 이상이다.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아스팔트에 아지랑이가 보여요. 특히 버스 옆에 갈 때는 열기가 장난 아닙니다. 잠깐 정신을 놓으면 사고 나죠. 또 오늘처럼 비 오는 날에는 앞이 보이지 않아요. 미세먼지가 많은 날도 저희는 방법이 없습니다. 평소에도 매연을 많이 마시죠."

그는 "폭염이나 한파가 있는 날엔 수당을 줘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제기를 했다. 그나마 맥도널드에서는 비나 눈이 너무 많이 내리는 날에는 라이더들이 얘기해서 배달을 막는다고 한다. 그 정도 힘이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 못한 업체나 배달대행 노동자들은 악천후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오토바이를 타야 한다.

 배달노동자들은 주소만 갖고 주문자를 찾기 때문에 사진처럼 신주소 표지판이 가려져 있으면 배달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배달노동자들은 주소만 갖고 주문자를 찾기 때문에 사진처럼 신주소 표지판이 가려져 있으면 배달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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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지 주소가 불명확할 때도 라이더들은 힘들다. 번지수를 쓰던 구주소와 도로명을 쓰는 신주소를 섞어서 쓴 경우, 주소에 층이나 호수를 기재하지 않은 경우, 상가가 많은 큰 건물에서 가게명을 쓰지 않을 경우 라이더들은 주문자를 찾아 헤맨다.

"요즘은 개인정보 유출 때문에 전화번호를 적어갈 수 없어요. 주소지로 와서 주문자를 찾을 수 없으면 매장에 전화를 해 그 자리에서 전화번호를 외워야 해요. 전화를 끊으면서 매니저와 '수고해' '고맙습니다' 하는 사이에 전화번호를 까먹기도 하죠. 그럼 또 다시 전화를 걸어야 하고요. 비 오는 날에는 핸드폰이 비에 젖지 않게 고개를 처박고 전화를 합니다."

그는 배달을 시킬 때는 주소를 정확하게 밝혀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건물에 5층까지 올라갔다가 잘못된 주소 때문에 다시 내려와야 할 때가 가장 화가 난다"면서. 덧붙여서 당부한다.

"배달을 시켜놓고선 핸드폰은 절대 무음으로 해놓으시면 안됩니다. 잠을 자거나 볼일 보러 나가셔도 안 돼요."

1분, 1초가 아쉬운 라이더들이 길 위에서 몇 십 분씩 발을 동동 거리며 배달시간이 길어질 이유는 차고 넘친다. 그런데 고객들은 배달이 조금만 늦어도 화를 낸다. 그는 "고객이 늦게 왔다고 '이렇게 식은 걸 어떻게 먹느냐'며 던진 햄버거에 얼굴을 맞은 적도 있다"고 했다. 

여성 라이더의 경우, 남성들보다 곤욕스러울 때가 더 많다. 라이더들끼리 '팬티충'이라고 부르는 고객들 때문이다. 상의도 벗고 팬티만 입은 채 배달음식을 받으러 나오는 사람들이다. 10대부터 50대까지 전 세대에 걸쳐 그런 남성들이 있다고 그는 한숨을 쉬었다. 

직급에 따라 점심으로 주는 햄버거 종류가 달라

 '건강한 일터 안전한 영등포를 위한 노동인권사업단'은 지난 5월부터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우리집에 온 노동자' 공감밥상을 진행하고 있다.
 '건강한 일터 안전한 영등포를 위한 노동인권사업단'은 지난 5월부터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우리집에 온 노동자' 공감밥상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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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 생활에 대한 박씨의 브리핑이 끝난 뒤 참가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한 참가자가 점심을 어떻게 하는지를 물었다.

"햄버거로 줍니다. 그런데 직급에 따라 먹을 수 있는 햄버거가 달라요. 일반 크루들은 불고기버거까지, 라이더는 빅맥까지 먹을 수 있고 매니저는 제한이 없습니다."

그가 답을 하자마자 객석 곳곳에서 화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특히 50~60대 어머니들이 더 흥분했다. "아니, 누군 입이고 누군 주둥이야?" "빵장사가 종업원한테 빵도 하나 제대로 못 주면서 무슨 빵장사를 한다는겨?"

객석의 반응에 힘을 얻은 박씨는 "저는 위장 장애가 있어서 밥을 먹어야 힘이 난다. 그런데 만날 햄버거만 주니 힘들다"고 괴로움을 토로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가 조합원으로 있는 알바노동조합에서 맥도널드 측과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있단다.

식사 규정 폐지, 배달 수수료 인상, 산재 인정, 개인 물품 지급 들을 주요 요구사항으로 내걸고 있다. '개인 물품 지급'은 라이더들이 돌려쓰고 있는 헬멧 등을 개인별로 지급해달라는 요구다. 그가 "헬멧이 너무 냄새가 나서 처음엔 토가 나올 뻔 했다"고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데 알바노조와 맥도널드 사이의 교섭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는 "조합원이 얼마 없다고 사측이 교섭에 형식적으로만 응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했다. 조합원 수와 상관없이 상식적인 요구 같아 보이는데도 말이다.

모든 일엔 명과 암이 있는 법. 배달일도 어둠만 있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그가 라이더 세계의 밝음을 소개했다.

"햄버거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어요. 평일 오전에 배달을 가면 육아를 하는 어머니들일 경우가 많아요. 아이들 챙긴다고 자기 식사를 챙기지 못하고 햄버거를 시키는 거죠. 애들이 나와서 '햄버거 아저씨 왔다'고 하면 기분 좋아요. 또, 놀라겠지만 빵집이나 피자집에서도 햄버거를 시켜요. 거기서 일하는 알바들이 먹으려는 거죠. 손주 먹인다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배달을 시키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분들 만나면 기분이 좋아요. 여름에 배달 갔을 때 수고한다고 식혜를 준 분도 있고…."

가뭄 뒤 내리는 비처럼 라이더의 고된 노동 속에도 사람 사이에 나누는 정이라는 꽃이 가끔씩 피고 있었다. 그 꽃이 더 자주, 더 많은 배달노동자들에게 피려면 알바노조가 하고 있다는 교섭이 좋은 결실을 맺어야 할 것 같다. 그는 "맥도널드는 알바계의 '삼성'"이라고 했다. 법은 지키고 있고 다른 업종에 기준을 제시한다면서. 그 기준치가 더 높아지길 바랄 뿐이다.

같은 배달일을 하면서도 누구는 노동자, 누구는 사장님으로 불린다. 명목상 사장님이 바로 배달대행이다. 이들은 배달대행업체와 개인사업자로 계약을 맺어 건당 수수료를 받으면서 일을 한다. 박정훈씨는 "배달대행은 정해진 노동시간이나 기본급 없이 건당 3000원씩만 받으면서 일하기 때문에 노동시간이 엄청 길고, 사고 위험이 높은데 산재 혜택을 받을 수 없다"며 '사장님' 호칭 뒤에 감춰진 위험성을 설명했다.

배달대행과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택배기사들이다. 지난 6월 말, 공감밥상 '우리집에 온 노동자' 2회차에 만난 택배기사 서영수(가명‧41)씨가 이들 특수고용노동자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전해줬다.

- 하루 노동시간이 얼마나 되나.
"아침 7시쯤 출근해서 정오경까지 택배 물건들을 분류하는 일명 '까대기' 작업을 한다. 그 뒤 물건을 싣고 배달지로 나가 배달을 시작한다. 하루 배달하는 물품수가 평균 250개 내외여서 물건 1개당 쓸 수 있는 시간이 1분에서 1분 30초이다. 2분을 넘어가면 밤 12시 안에 집에 가기 힘들다. 내내 뛰면서 배달을 하는데도 저녁 8~9시에 끝난다. 그대로 일이 끝난 게 아니다. 배달 뒤에는 편의점이나 기업체를 돌면서 다음날 보낼 택배를 수거하는 집하작업을 한다. 이 집하작업까지 하고 집에 오면 밤 11시에서 12시다.

나는 요즘 몸이 힘들어서 집하작업은 잘 안 하는데도 하루 13~14시간 일을 하는 셈이다. 아이들이 큰 형님들은 학비 번다고 하루 400개씩 배달하는데 그 형들은 집에 새벽 1시~2시 들어간다. 하루 서너 시간씩 자고 주 6일을 계속 일만 하는 거다. 사실 '까대기'는 택배회사에서 따로 사람을 써서 해야 하는 건데 우리가 하루 4~5씩 무임금 노동을 하고 있는 거다. 그것만 없어져도 노동시간이 많이 줄 거다."

- 그렇게 장시간 노동을 하면 산업재해도 많을 것 같다.
"우리 대리점에서도 얼마 전에 한 형님이 일을 하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입원한 적이 있다. 나만 해도 공감밥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게 아파서다. 무거운 물건을 들다가 신경이 잘못 눌렸는지 머리를 망치로 때리는 것처럼 아파서 약을 먹지 않으면 잠도 못자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서 이틀 쉬었다. 택배일 한 지 6년 동안 한 집의 화분들이 택배차로 쏟아져서 죽을 뻔했던 때 하루 쉰 것 빼고 이번이 두 번째 쉬는 거다. 택배는 담당구역을 대신해 줄 사람이 없어서 아파도 쉬지 못한다.

우리 대리점은 그래도 택배기사끼리 안 나온 사람 구역을 나눠서 해주는데 몇 달 전 경주에서는 한 여성 택배기사가 다쳐서 깁스를 한 채고 택배를 배달했다고 한다. 이 정도이니 산재 처리는 꿈도 못 꾼다."    

서씨는 마지막에 가슴 속에 쌓아둔 말을 토해냈다. "잡 셰어링 한다면서요. 택배기사 좀 살려달라고요." 배달대행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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