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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군농민회 주관으로 단양군청 사거리에 백남기 농민 1주기 추모 현수막을 게시하고 9월 24일~25일에 걸쳐 다누리센터 앞 상상의 거리에 추모분향소를 운영한다.
▲ 단양군 백남기 농민 1추기 추모제 단양군농민회 주관으로 단양군청 사거리에 백남기 농민 1주기 추모 현수막을 게시하고 9월 24일~25일에 걸쳐 다누리센터 앞 상상의 거리에 추모분향소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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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회장님,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다지요? 또다시 다시 가을이 왔습니다. 밤이 뚝뚝 털어지며 지붕을 때리는 소리에 잠을 깬 아침입니다. 오곡백과가 익어갑니다. 들녘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황금들녘이 물결치고 있습니다. 우리 농사꾼들은 올 한해 고되지만 수확의 기쁨을 노래하며 벼 베기를 시작했어요. 농사꾼들이 숙명처럼 지고 가는 인고의 세월이지만 생명과 평화의 길을 따르는 농사꾼은 가을 들녘을 바라보며 생명의 신비를 온몸으로 느낍니다.

황금 들녘에서 서서 백남기 회장님을 떠올립니다. 생전 한 번도 직접 뵙지 못했던 회장님입니다. 2015년 11월 14일, 회장님께서 경찰의 물대포에 피격되고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누워계시던 그때, 전 병원 밖 천막농성장에서 회장님을 지켰습니다. 그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동안 농성장에서 지내면서 백남기 회장님의 삶을 되돌아보고 또 되돌아보았습니다. 백남기 회장님이 평생에 걸쳐 맞섰던 불의한 권력에 대해, 반생명의 세상에 대해, 또 그 저항의 방식에 대해 곱씹어 보았습니다. 생명과 평화의 농사꾼으로서 거대한 어둠의 힘 앞에서 한 줄기 작은 빛으로 사신 회장님의 삶에서 어둠을 밝히는 등대를 보았습니다.

회장님께서는 무려 317일 동안 병상에서 세상을 일깨우셨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회장님을 사실상 '볼모'로 잡으려 했지만 오히려 회장님의 수난은 농민들과 시민에게 불의의 실체를 드러내고 저항의 용기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회장님께서 농사짓고 살던 고향 마을인 보성군 웅치면 부춘마을에서 사람들은 생명평화 도보순례의 길을 나섰습니다. 수많은 농민과 시민들이 그 추운 겨울 길에 나서서 서울로 걸었습니다. 그 길을 걷고 또 걸을 때마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두려움을 벗어낼 수 있었습니다. 함께 걷지 못하며 미안해하는 시민들이 응원하고 격려했습니다.

2015년 11월 말부터 2016년 3월 1일까지 남원에서 농사짓는 가톨릭농민회 김영길 농민과 함께 겨울 천막농성을 하다
▲ 백남기 농민 서울대병원 후문 농성장에서 2015년 11월 말부터 2016년 3월 1일까지 남원에서 농사짓는 가톨릭농민회 김영길 농민과 함께 겨울 천막농성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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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를 마치던 마지막 날, 서울시청광장과 종로, 대학로를 지나 회장님이 누워계신 서울대병원에 이를 때 시민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미안함과 안타까움, 함께 하는 마음을 담은 그 눈빛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전 그때 알았습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이긴다'는 말의 뜻을,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다'는 말을 뜻을. 결국 모든 언론이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이 압도적으로 이긴다고 말했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민심은 여소야대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때 전 예감했습니다. 불의한 박근혜 정권이 반드시 몰락할 것이라고.

새봄의 기운이 싹트던 지난해 봄, 전 다시 농사지으러 단양 산골로 돌아왔습니다. 병원에 계신 회장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농사꾼은 생명의 순환질서를 따르며 농사짓는 사람이기에 다시 논밭에 씨를 뿌리고, 나무를 가꾸었습니다. 생명평화의 일꾼의 첫 소임인 농사, 그것이 바로 밀밭에 씨 뿌리고 서울로 향하셨던 회장님께서 우리 농사꾼들에게 보여주셨던 올바른 삶의 길이었습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동안 인고의 세월이 영원처럼 흐르고 또 흘렀습니다.

9월 25일.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 날. 백남기 회장님께서 하늘로 돌아가신 날입니다. 회장님께서는 317일 동안 병상에서 온갖 약물과 의료기기를 이용한 치료를 기적처럼 견뎌내셨습니다. 외손주가 사는 네덜란드에서 온 가족이 모여 칠순 잔치에 하기로 했던 그 날을 딱 하루 앞두고 회장님의 이승의 마지막 끈을 내려놓고 하늘로 돌아가셨습니다. 회장님께서 소천하신 것도 황망한데 무도한 경찰이 야밤에 회장님의 시신 부검 영장을 강제 집행하려 한다는 소식에 농사일을 던져놓고 서울대병원으로 내달았습니다.

'내가 백남기다'가 만든 기적

그날 전 기적을 보았습니다. 농민들뿐만 아니라 '시민 지킴이'들이 회장님을 지키기 위해 서울대병원에 인산인해로 모여들었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용기가 경찰들을 물러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한 달 동안 벌어진 이른바 '부검정국'의 하루하루가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조건부' 부검영장 발부 과정을 보면서 온 국민이 경악하고 분노했습니다. 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경찰, 검찰, 법원이 사법질서에 유례가 없는 '조건부' 영장이라는 걸 발부하고 시신탈취를 시도하는 모습에 법을 떠나 인륜의 파탄을 보았습니다. 시민들은 '시민 지킴이'와 후원 물품으로 민심을 표현했습니다.

'부검정국' 마지막날인 2016년 10월 25일 농민과 시민지킴이들이 경찰 진입을 막으며 우리가 백남기다를 외쳤다.
▲ 우리가 백남기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부검정국' 마지막날인 2016년 10월 25일 농민과 시민지킴이들이 경찰 진입을 막으며 우리가 백남기다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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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지킴이들이 목숨을 걸고 '조건부' 부검영장을 막아내었음에도 경찰, 검찰, 법원은 또다시 부검영장을 들고 회장님의 시신을 빼앗아 가겠다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습니다. 10월 24일, 1만 명에 가까운 경찰들이 서울대병원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날 오전까지도 개헌을 하겠다며 으르렁대던 박근혜 정권이 어둠이 내리자 모래성처럼 무너졌습니다. JTBC <뉴스룸>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보도를 하면서 권력의 정당성이 송두리째 뽑혔습니다. 이 소식에 부검영장을 집행하려던 경찰조차 허탈해하며 영장집행의 의지를 잃어버렸습니다.

부검영장 집행 마지막 날이었던 10월 25일, 경찰이 서울대병원을 둘러쌌음에도 백남기 회장님과 함께 밤을 보낸 시민지킴이들은 승리를 확신하며 축제를 벌였습니다. 망자가 누워있는 장례식장에서 축제라니 상식으로는 참으로 불경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빛이 어둠을 이기고, 진실이 침몰하지 않는 역사의 현장을 직접 경험한 농민과 시민지킴이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촛불을 들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산골 농사꾼인 저는 이 기적의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부검영장정국' 한 달이 끝나고 박근혜 정권의 모래성이 무너지는 과정은 더 큰 기적입니다. 10월 29일 청계광장에서 3만 5천 개의 촛불이 타올랐습니다. 11월 5일, 회장님의 영결식이 있던 날 광화문광장에서는 무려 20만 개의 촛불이 밤을 낮처럼 밝혔습니다. 이른바 세계가 놀란 1700만 개의 촛불이 타오른 촛불혁명. 처음에 '백남기를 살려내라'로 시작된 저항의 외침은 '내가 백남기다'로 전화되더니 '우리가 백남기다'라는 외침이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습니다.

전봉준투쟁단은 11월 25일 1차 상경에 이어, 12월 9일 2차 트랙터 상경을 했다. 전농 단양군농민회는 전 과정을 함께 했다.
▲ 전봉준투쟁단 2차 상경, 국회 앞에서 전봉준투쟁단은 11월 25일 1차 상경에 이어, 12월 9일 2차 트랙터 상경을 했다. 전농 단양군농민회는 전 과정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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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의 작은 겨자씨에서 싹이 터서 거대한 민주공화국의 나무로 자라나 또다시 1700만 개 씨앗으로 뿌려진 겁니다. 그 씨앗이 추운 겨울에도 촛불의 온기로 싹이 텄고 봄이 오자 온 세상이 촛불 민주주의의 숲이 되었습니다. 생명평화의 일꾼의 기적이 완성되는 걸 제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전 헌 세상을 갈아엎고 새 세상을 일구는 '전봉준투쟁단'으로서, 10살 아들의 손을 잡아 목말을 태우고 촛불 든 '촛불시민'으로서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했습니다.

생명평화 촛불혁명은 벚꽃이 활짝 피던 오월에 '촛불혁명 정부'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산골 농사꾼은 또다시 새봄을 맞아 논과 밭에 씨앗을 뿌리고 가꾸었습니다. 유례없는 혹독한 가뭄과 기나긴 장마의 시련을 겪었습니다. 농사꾼들은 우박에, 가뭄에, 장마로 시름이 깊습니다. 여전히 농민은 천대받고 있습니다. 나이든 농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작은 산골 마을인 성주 소성리에는 이 땅에 전쟁의 재앙을 몰고 올지도 모르는 사드가 연이어 배치되고 있습니다. 생명평화 통일운동가였던 조영삼 선생이 회장님의 추모주간에 분신을 하고 회장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모든 일이 가을이 두 번 가고 오는 동안 일어났습니다.

촛불혁명의 현장에 아들 한결이와 함께 참여하여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며 역사의 현장에서 산 교육을 했다.
▲ 10살 아들과 함께 한 촛불시민혁명 촛불혁명의 현장에 아들 한결이와 함께 참여하여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며 역사의 현장에서 산 교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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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회장님, 하늘에서 이 모든 역사를 지켜보고 계시지요? 이 땅에 회장님께서 평생 일구려 했던 생명평화의 세상이 올까요? 산골 농사꾼인 전 회장님의 삶을 보면서 그 날은 꼭 오리라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을이 두 번 가고 오는 동안 '내가 백남기다'로, '우리가 백남기다'로 살며 회장님처럼 겨자씨 뿌리는 농사꾼이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겨울에도 촛불의 온기로 싹을 틔우는 겨자씨가 이 땅에 뿌려지는 만큼 생명평화의 세상은 가까이 오리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비록 오늘 하루가 힘겹더라도 하루, 한 달, 한 해를 생명평화의 일꾼으로 살다 보면 그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백남기 회장님의 1주기를 맞이하여 옷깃을 여미고 제 삶의 스승 영전에 꽃 한 송이 올립니다. 영면하소서!

덧붙이는 글 | 유문철 시민기자는 충북 단양에서 10년째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유기농민, 블로그 단양한결농원으로 농사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국농민회총연맹 단양군농민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백남기 농민, #촛불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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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단양한결농원 농민이자 한결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아빠입니다. 농사와 아이 키우기를 늘 한결같이 하고 있어요. 시골 작은학교와 시골마을 살리기, 생명농업, 생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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