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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점호화 소비'. 늘 거리낌 없이 쇼핑하는 건 아니지만, 특정한 물건을 사는 데 있어선 돈을 아끼지 않는 소비 패턴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일본에서 넘어온 개념인데, 썩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밥을 굶는 한이 있어도 반려묘 사료만큼은 비싼 걸 사는 집사, 1000원짜리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지만 텀블러만큼은 '고급진' 걸 고르는 친구 등...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유별난' 소비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S카페 매장 안의 텀블러  매장 안에 전시된 텀블러들을 보기만 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쓰는 거 보다 보는 게 훨씬 더 뿌듯한데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 S카페 매장 안의 텀블러 매장 안에 전시된 텀블러들을 보기만 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쓰는 거 보다 보는 게 훨씬 더 뿌듯한데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 남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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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 번씩은 걸음을 멈추고 드나드는 곳이 있다. 우연히 지나쳐서든, 일부러 찾아가서든 꼭 한 번씩은 들르고야 마는.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S카페가 바로 그곳이다. 갈 때마다 커피를 사서 마셨다면, 이미 파산을 면치 못했을 수도 있겠다. 다행히도(?) 내 관심은 오직, 유리 진열장 안을 영롱하게 채우고 있는 텀블러뿐이다.

연예인 설현에 비하면 명함도 내밀기 어려운 수준이지만, 나는 텀블러 수집이 취미다. 개수는 뒤처질지 모르나, 그 애정만큼은 남다르다. 내 몸에 상처가 나는 것보다 텀블러에 흠집 나는 게 더 마음이 쓰라릴 정도다. 잔소리를 퍼붓던 식구들도 "집에 불이 나면 금붙이는 두고 가도 텀블러는 들고 탈출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한 이후엔 더 말을 보태길 포기한 듯 보였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환경 보호를 가장하고(?) 한두 개씩 샀던 텀블러들을 모아놓고 보니, 뭔가 묘하게 벅차오르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이후 본격적으로 사 모으기 시작했던 것 같다.

새 디자인이 출시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전날부터 심박수가 증가한다. 오픈 전부터 매장 앞에 줄 서는 건 이미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다. 원하던 텀블러가 해당 매장에 없는 경우, 다리가 부서질 듯이 아프도록 그 주변 일대를 다 뒤진다. 그렇게 해서 원하던 텀블러를 만났을 때, 그 짜릿함이란.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한정판 텀블러는 기존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곤 한다. 진짜 희귀한 제품은 순식간에 팔리기도.
 한정판 텀블러는 기존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곤 한다. 진짜 희귀한 제품은 순식간에 팔리기도.
ⓒ 포털사이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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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 모아 재테크? 나는 '텀테크'!

하지만 평균 가격은 재질에 따라 2만 원대 후반에서 5만 원을 호가하고, 같은 시즌에 출시된 디자인은 세트로(2개 이상) 사야 마음이 놓이니 참으로 호화로운 취미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나를 '봉인 해제'의 늪에 빠트리는 건 무시무시한 '시즌 한정'이라는 용어다. 그 단어가 붙는 순간 "이건 꼭 사야 해,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만날 수 없어!"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뇌 회로를 타고 전해진다. 나는 이성을 상실하고 만다.

이렇게 시즌 한정으로 구입한 텀블러는 일명 텀테크(텀블러+재테크)가 가능하다. 구입한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에 재판매가 가능한 것이다. 해외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거나, 특별한 기념으로 출시된 제품의 경우 가격이 더 붙기도 한다. 텀블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높은 가격에 거래되곤 한다.

"저 쓸데없는 것들을 어쩔 거냐"는 엄마의 타박에 "아~ 다들 저걸로 재테크할 수 있다니까?" 하고 큰소리를 치곤 했지만, 속마음은 이렇다.

"다들 하지만 나는 아니야~"

다 예쁘고 소중한데 어떻게 팔 수 있단 말인가. 옷이나 신발을 팔아 채워 넣지는 못할망정!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단 말이 새삼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모은 텀블러들 수집한 텀블러들을 모아놓은 장의 첫번째 칸. 가지고 있는 걸 다 합치면 서른 개가 조금 넘는다. 보기만해도 배가 부른 것 같다.
▲ 모은 텀블러들 수집한 텀블러들을 모아놓은 장의 첫번째 칸. 가지고 있는 걸 다 합치면 서른 개가 조금 넘는다. 보기만해도 배가 부른 것 같다.
ⓒ 남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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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 마세요, 텀블러에 양보하세요"

물론 선택에 따라, 포기해야 할 것들도 많다. 나사가 풀리면 초과 지출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을 고려해, 다른 지출은 줄이는 시도가 필요하다. 텀블러만큼이나 커피도 좋아하지만, 2000원을 넘지 않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 먹거나 집에서 타 먹는 커피에 만족한다. 과한 텀블러 입양으로 재정이 정말 쪼들릴 때는 김밥이나 컵라면 등 편의점 식사를 애용하기도 한다. "먹지 마세요, 텀블러에 양보하세요"의 생활 모토의 실천이라고나 할까.   

텀블러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물이나 음료 따위를 담는 용기라고 한다. 주변 사람들이 가장 의아해하고 이해할 수 없는 점이기도 한 것이, 나는 수집한 텀블러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소중하다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제품일수록 유리장 안쪽에 고이 모셔둔다.

제 용도를 다하지 못하고 '예쁜 쓰레기' 취급을 받는 텀블러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도 들지만 사용 후 설거지를 하면서 생길 수 있는 흠집, 사용하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생활 흠집이나 흔적들을 생각하면 역시나 이 아이들을 내보낼 수가 없다.

대체 무엇을 위해 쓰지도 않는 것들을 그리 열심히 모으는지 묻는다면 사실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냥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행복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걸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랑에 빠지는 데 이유가 있냐고 반문하면 너무나 억지인 걸까. 그래도 언젠가 정말 필요할 때 자산의 역할을 하지 않으려나 싶다.

국가적 차원에서 금 모으기 운동처럼 텀블러 모으기 운동 같은 게 있다면, 기꺼이 내어줄 마음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정신 승리를 도모하며 S카페를 기웃거린다. 통장 잔고가 비어갈수록 텀블러 전시장은 풍족해지지만, 언젠가는 텀블러가 통장 잔고를 채워줄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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