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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체 카마와 함께 보츠와나의 민주주의를 이끌었던 2대 대통령이었던 퀘트 마시레이, 올래 그는 91세로 사망했다. 아프리카인들이 존경하는 지도자다.
▲ 제2대 대통령 퀘트 마시레이 세레체 카마와 함께 보츠와나의 민주주의를 이끌었던 2대 대통령이었던 퀘트 마시레이, 올래 그는 91세로 사망했다. 아프리카인들이 존경하는 지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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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6일부터 8월 15일까지 20일간 남부 아프리카의 5개 나라를 둘러보면서 그동안 이름도 잘 몰랐던 보츠와나라는 남부 아프리카 내륙 중앙에 있는 나라를 알고 나서 잔잔한 흥분에 빠지게 되었다.

전·현직 교사와 그 가족 등 8인으로 꾸려진 남부 아프리카 연수단 '청바지' 멤버 중에는 이번 아프리카 여행을 위하여 여러 가지 자료를 사전에 뒤져보고 여행 중에 보츠와나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김은형 샘이 보츠와나라는 나라에 대하여 갖고 있는 좋은 이미지는 그대로 나에게 전이되었다.

우리 '청바지' 팀이 남부 아프리카 연수에서 맨 먼저 찾은 나라는 '모시오아튠야 폭포(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짐바브웨와 잠비아였다. 주로 짐바브웨에서 3일간 머물고, 차량을 이용하여 보츠와나의 카산을 향하면서 보츠와나 국경을 통과하면서부터 보츠와나에서의 5박 6일간의 일정을 보내면서 보츠와나라는 나라에 대하여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구리 덩어리를 싣고 국경 통관을 기다리고 있는 트럭,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의 주 수입원은 다이아몬드, 니켈, 구리 등 지하자원이다.
▲ 국경 마을에서 구리 덩어리를 싣고 국경 통관을 기다리고 있는 트럭,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의 주 수입원은 다이아몬드, 니켈, 구리 등 지하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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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청바지' 팀이 짐바브웨를 들어갈 때는 비자 발급을 받아야 했는데, 보츠와나는 우리나라와 무비자 협정이 체결되어 비자 없이도 입국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달랐다. 그리고 입국 신고 등의 절차를 밟을 때도 출입국 사무소 직원들이 '코리아'라는 나라에 대하여 관심을 표명하면서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는 것부터가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는 달랐다. 어떤 자료를 보았더니 한동안은 북한과 외교적으로 가까웠으나 북한이 인권 탄압국이라는 이유로 단교할 정도로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강한 나라임을 알 수 있었다.

국가의 독립과 민주주의, 세기의 사랑을 이끌어낸 초대 대통령 '세레체 카마'

보츠와나는 아프리카에서 민주화가 제일 잘 되어 있고, 국민 소득도 높아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여 상당한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여행을 하였다. 여행을 다녀와서도 이러 저러한 자료들을 챙겨보면서 흐뭇한 기분의 여운은 지금도 여전하다. 보츠와나는 196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이 되기 전에는 '베추아날란드'라는 이름의 영국 보호령이었다.

보츠와나가 독립되기 전, 초대 대통령인 세레체 카마는 4세 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응와토 족의 추장이 된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대학을 나온 후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 가서 법학을 공부하면서 영국인 백인 여성 루스 윌리엄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세레체 카마가 베추아날란드로 돌아오자 그를 대신해 베추아날란드를 통치하던 숙부는 영국을 설득하여 그가 백인 여성과 헤어지든지 추장 자리를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이런 요구에 대하여 그는 이혼을 거부하고 추장 자리를 내놓고 국외로 추방당한다. 그의 사랑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졌을 정도다. 그는 5년간 국외 생활을 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보츠아나 민주당을 설립하고 독립운동에 들어간다. 그는 영국과 협상 끝에 196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끌어 내고,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보츠와나를 이끌게 된다. 그러던 중 1980년 췌장암으로 사망하자 그동안 그를 도와 보츠와나의 민주주의를 함께 이끌던 부통령 퀘트 마시레이가 잔여 임기를 이어받았고, 그 후에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18년 동안 집권을 한다.

초베국립공원이 가까이에 있는 카산은 관광객들이 많이 모이는 읍 정도 규모의 도시였는데, 시내는 비교적 깨끗했다.
▲ 카산 시내 초베국립공원이 가까이에 있는 카산은 관광객들이 많이 모이는 읍 정도 규모의 도시였는데, 시내는 비교적 깨끗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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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베강에서 물을 끓어 올려 정수를 하여 시민들에게 공급을 하고 있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국민들 건강도 챙겨나가는 모습들이다.
▲ 카산 시내 초베강에서 물을 끓어 올려 정수를 하여 시민들에게 공급을 하고 있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국민들 건강도 챙겨나가는 모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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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정 속에는 보츠와나는 다이아몬드 광산의 발견되어 국가 재정수입이 많이 늘어난다. 여타 아프리카 국가들은 권력자들이 광산 수입이 생기면 자신들이 챙겼지만, 보츠와나의 지도자들은 사적으로 이익을 챙기지 않고 이를 국가 기간산업의 발전에 투척하였다.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웠으며, 도로를 건설하는 등 국가의 경제 성장 동력을 이끌어 낸 것이다.

학교 교육을 통하여 국민 전체가 철저하게 부패를 배척하는 노력을 이끌어내고, 매년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이런 노력으로 현재 GDP가 1만6000달러에 이르러서 아프리카에서는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정치 지도자들의 청렴과 민주적 리더십으로 인권과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나라가 될 수 있음을 멀리 아프리카에서 확인할 수 있어 참 행복했다.

반면 우리는 해방 이후 역사에서, 이승만과 박정희와 같이 절대 권력을 갖고 영구집권을 꾀하면서 그 측근들과 재벌에게 온갖 특혜를 주어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키고, 경제적 불평등 구조를 심화시켜온 과거를 떠올리며, 아프리카에서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룩한 보츠와나를 대하는 내내 여행이 흥미롭고 행복했다. 

우리 청바지팀이 묶었던 아프리카 전통 양식으로 꾸며졌지만 내부는 침대 등 양식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하여 손님을 받고 있었다.
▲ 카산 로지 우리 청바지팀이 묶었던 아프리카 전통 양식으로 꾸며졌지만 내부는 침대 등 양식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하여 손님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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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개발의 붐이 일어나고 있는 활기찬 나라, 보츠와나

우리 청바지팀은 짐바브웨에서 보츠와나까지는 택시를 대절해서 갔다. 국경에서 입국 수속을 받고 나서 40여 분 달려 아프리카의 전통식 가옥 모양을 한 초가집 형태의 카산의 한 로지에 머물게 되었다. 로지가 있는 주변 마을은 완전히 시골 동네였다. 길거리에 닭과 개들이 돌아다니고 조그만 초가집들이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 청바지가 묶을 로지에 도착하였더니 사장은 뚱뚱한 흑인 여자였다. 흑인 남녀 종업원들은 퍽 친절하였다.

우리 일행은 가지고 있는 라면, 국수, 햇반 등을 이용하여 점심을 해결한 다음 카산 시내를 둘러볼 예정이었으나 숙소에서는 많이 떨어져 있어서 오후의 남는 시간은 우리가 묶고 있는 동네를 둘러보았다. 보츠와나는 국토면적은 우리나라 남북한을 합친 것의 2.5배 정도 되는데, 인구는 220만 명을 조금 넘기고 있으니 인구밀도가 1㎢당 3명 정도밖에 안 된다. 얼마나 사람들이 귀한 나라인지 알만하지 않은가?

가운데 있는 남자가 우리의 최팀장이고, 맨 왼쪽은 18세의 홈스쿨 5년차, 아운데는 학생의 엄마, 맨 오른쪽은 78세의 외할아버지다.
▲ 카산의 한 시골 가정에서 가운데 있는 남자가 우리의 최팀장이고, 맨 왼쪽은 18세의 홈스쿨 5년차, 아운데는 학생의 엄마, 맨 오른쪽은 78세의 외할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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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은 인근에 있는 보츠와나와 짐바브웨가 전쟁을 벌인 것을 기념하는, 우리의 충혼탑과 같은 곳엘 가 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어디서 코끼리가 나올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주의를 주었다. 우리 일행은 그런 주의를 들으며 로지에서 약 700~800m 정도 떨어져 있는 집들이 보이는 언덕을 향해서 올라갔다. 닭울음 소리도 들리고, 개 짖는 소리도 들리는 곳을 향해서 계속 걸어가다 보니 한 민가가 나왔다.

마침 이 집의 마당에 중년의 한 흑인 여성이 보여, 들어가도 좋으냐고 했더니 들어오라는 것이다. 그 마당에 들어갔더니 그의 친정아버지라는 분이 나와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연세가 78세라고 하는데 정정해 보였다. 그 옆에는 젊은 처자가 보여서 중년 여성에게 "따님이냐?'고 했더니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따님이 학교는 다니느냐?"
"홈스쿨 5년 과정을 하고 있다."
"홈스쿨? 그러면 누가 가르치는가?'
"1주일에 2회 정도 홈스쿨링을 하는 선생님이 찾아온다."
"따님의 나이는 얼마인가?"
"18살이다."

이러 저러하게 궁금한 내용을 질문을 통하여 확인했지만 충분히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돌아와서 동네 둘러보기에 나서지 않았던 김은형 샘에게 이런 사실을 이야기했더니, 이 나라의 교육제도가 흥미롭다고 하며 연구를 해 보아야겠다고 한다. 이 나라가 국민교육을 위하여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던데, 이와 같은 시골 마을에 일일이 학교를 세울 수가 없어서 홈스쿨링 교사를 파견하여 교육하는 것 같았다.

학교를 세우려면 예산도 많이 드는데, 이런 식으로 교사를 보내어 교육을 한다면 시골 마을에 흩어져 있는 청소년들에게도 국가가 교육 혜택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아프리카에서 잘 나가는 나라라서 그런가 보다 하면서 "우리도 이런 면은 배울 점이 있지 않나?"라는 의견을 나누기도 하였다.

시골 동네에는 우리의 새마을 운동처럼 집을 개량하는 현장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정부 보조로 이루어지는 사업 같았다.
▲ 보츠와나 새마을운동 시골 동네에는 우리의 새마을 운동처럼 집을 개량하는 현장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정부 보조로 이루어지는 사업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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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서 나와 사람들이 좀 더 많은 마을 쪽을 향해서 내려오는데, 마을을 새로 세우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많은 집을 새로 짓고 있거나 고치고 있었다. 현 대통령인 이안 카마가 지난해에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하였다는데,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이 이곳까지 전수가 되었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초가집같이 보이는 건물들을 헐고 벽돌 등을 이용하여 집을 새로 짓고 있는 광경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누구나 친절하였다. 외국인들과도 잘 어울렸다. 핸트폰 사진을 보여주며 놀고 있다. 청소년들은 축구를 즐기고 있었다.
▲ 아프리카의 아이들과 놀고 있는 최균석 샘 아프리카 아이들은 누구나 친절하였다. 외국인들과도 잘 어울렸다. 핸트폰 사진을 보여주며 놀고 있다. 청소년들은 축구를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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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큰 도로변으로 나왔더니 넓은 운동장이 나왔다. 시설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잔디가 심겨 있고, 양쪽 가장자리에는 축구 골대가 세워져 있었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청소년 몇몇이 공을 차고 있고, 주변에는 초등학생 또래의 아이들이 몰려서 놀고 있었다.

최균석 샘은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곳으로 가서 핸드폰에 들어있는 여행 사진 등을 보여주면서 잘 어울렸다. 축구를 하기 위하여 젊은이들이 계속 모여들었다. 다들 일제 도요타나 독일제 폭스바겐과 같은 외제차들을 타고 모여들었다. 그들이 축구하는 것을 좀 지켜보고 있는데, 우리가 묵고 있는 로지의 종업원이 우릴 찾아왔다. 지나가다가 들렀다고 하면서 로지를 찾아가는 길을 자세히 알려주고 그 친구는 떠났다.

카산의 한 시골 마을을 지나다 주민들이 모여있는 곳에 들렀더니 발효술을 즐기고 있다가 우리에게도 권하였다. 우리네 70년대 농촌 모습이다.
▲ 아프리카 발효 음식 카산의 한 시골 마을을 지나다 주민들이 모여있는 곳에 들렀더니 발효술을 즐기고 있다가 우리에게도 권하였다. 우리네 70년대 농촌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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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다시 로지를 향해서 걸어오는데, 마당에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놀고 있어서 그 집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랬더니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가 생맥주 컵 같은 것에 들어있는 음료를 우리더러 건네주면서 마셔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약간 주저하다가 마셔보았다.

어떻게 만든 술인지는 모르지만 수숫대 같은 것을 발효시켜 알코올 기운이 도는 일종의 술인 것이다. 그것을 마시고 그 젊은 남자는 약간 취기가 돌아 말이 많아졌다. 나도 약간 마셔보았는데, 알코올의 도수가 높아 보이진 않았다. 마당에는 역시 개와 닭, 고양이들이 뛰놀고 있고, 건너 쪽에도 5~6명의 사람이 보여서 담소를 나누다가 우리 일행을 보고는 반갑게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마당 구석에서는 양쪽에 돌을 놓고 그 위에 들통 같은 시커먼 양은그릇을 얹어놓고 나무를 때면서 뭔가를 마구 끓이고 있었다. 아마 닭 같은 것을 삶는 것 같았다. 우리네 60년대 시골 마을 풍경인 것이다. 균석 샘은 3~4살 정도 보이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에게 가지고 있는 돈 미화 5달러를 건네주며 아기 사탕이라도 사 주라고 하였다.

로지에서의 저녁 식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쌀과 부식들을 꺼내어 식사 준비를 하였다. 미리 이곳 사장에게 전화를 하여 카산에서 올 때 생닭과 맥주 등을 사다 달라고 하여 같이 요리를 만들어서 이곳 종원들과 나누어 먹었다. 우리가 하자는 대로 그들도 잘 어울렸다. 다들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초베 국립공원과 초베강에서 사파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카산 시내에 들러 균석 샘은 외손자에게 선물한다면서 아이 옷을 샀다. 50% 할인 매장인데, 별로 싸지 않았다. 제품들은 남아공이나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다. 옷, 가방, 신발 등 생활용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마트에 들러 과일 등을 사고, 길거리 노점에서는 흰색 고구마 등을 샀다. 삶아서 간식으로 먹기 위해서였다.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한 2대 대통령 '퀘트 마시레이'

다음날 카산에서 오코방코 델타로 이동하기 위하여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에서 심심하여 비행기 좌석에 꽂혀있는 잡지를 보았더니, 보츠와나의 2대 대통령으로 18년간 재직했던 퀘트 마시레이 전 대통령이  9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있어 관심이 갔다. 그 잡지의 표지 인물도 퀘트 마시레이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집권 기간에 대통령 연임 조항을 개정하여 중임밖에 할 수 없도록 하였고, 자신은 임기를 마치고 깨끗이 물러났다.

경제발전은 물론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힘이 원동력이 되어 퇴임 후에도 이곳 남부 아프리카를 넘어 전 아프리카 지도자들을 묶어 세우는데 구심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중학교를 나오고 고향에서 교사를 하다가 농업혁명가로 이름을 날리고, 사회운동과 정치 운동에 뛰어들어 오늘의 보츠와나를 만들어내는데 세레체 카마와 함께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만델라와 견줄만한 지도자이다. 이런 지도자들을 보면서 다시 우리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묵은 마운도 오코방고 델타의 관문인데, 그 변두리 숙소에 묶었더니 주변이 다 습지이다. 거기서 풀을 뜯고 있는 당나귀들이다.
▲ 오코방고 델타 마을에서 우리가 묵은 마운도 오코방고 델타의 관문인데, 그 변두리 숙소에 묶었더니 주변이 다 습지이다. 거기서 풀을 뜯고 있는 당나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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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아프리카 전통식의 펜션이다.지었고, 이곳도 흑인 여사장인데, 다른 아프리카인들과 달리 적은 돈도 잘 깎아주질 않았다. 사람마다 차이야 아디나 그렇지만.
▲ 마운의 숙소에서 겉은 아프리카 전통식의 펜션이다.지었고, 이곳도 흑인 여사장인데, 다른 아프리카인들과 달리 적은 돈도 잘 깎아주질 않았다. 사람마다 차이야 아디나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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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의 마운의 현지인 사장 '판들리'이다. 쾌활하고 유쾌한 친구인데, 이 친구는 장사속이 밝은 것 같았다. 요 친구도 계산이 인색한 편이었다.
▲ 현지 여행사 사장 30대의 마운의 현지인 사장 '판들리'이다. 쾌활하고 유쾌한 친구인데, 이 친구는 장사속이 밝은 것 같았다. 요 친구도 계산이 인색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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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의 숙소도 짐바브웨와는 달리 흑인 여성이 사장이었다. 당연히 종업원들도 다 흑인이었다. 다음날 오카방고 델타 사파리 투어를 이끌었던 여행사 사장도 '판들리'라는 젊은 흑인 남성 사장이었다. 이렇게 보츠와나는 경제를 발전시키면서 국민들의 일자리를 늘리는 일에 적극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자국인들이 나서서 직접 경영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곳 카산이나 마운 등은 남아공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수도 가보로네와는 남과 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여러 가지 자료를 보면 수도 가보로네는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고 도로, 상하수도, 숙박시설 등 도시로서의 기반 시설이 훌륭하다고 한다.

인구도 30만을 바라볼 정도로 큰 도시이다. 그런 가보로네와는 비교가 안 되겠지만 마운이나 카산 등의 변방 도시들도 도로를 뚫고 포장을 하고, 공항을 짓고, 학교 시설도 확충하면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등 국민 행복을 위하여 활기찬 모습이 여행자의 눈에도 들어왔다. 먼 아시아에서 온 이방인인 나이지만 모범적인 민주주의와 국민 행복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나라에 대하여 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태그:#세레스 카마, #쿼트 마시레이, #정치, 경제 민주화, #아프리카의 선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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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초등위원장,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을 거쳐 현재 초록교육연대 공돋대표를 9년째 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혁신학교인 서울신은초등학교에서 교사, 어린이, 학부모 초록동아리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미래, 초록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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