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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아들이 뒷좌석에 앉아서 투닥거린다. 동글이(필자의 아들)가 하지 말라고 해도 아빠가 자꾸 건들면서 장난을 친다. 결국 아이가 아빠를 꼬집는 상황까지 갔다.

"동글이 지금 꼬집었어? 이렇게 다른 사람 꼬집고 그러면 돼? 너 친구들한테도 그래? 마음에 안 들면 친구들도 꼬집고 그래?"

아빠는 꼬집으면 안 된다는 뜻으로 친구들한테도 그러느냐고 재차 묻는다. 아이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본인이 장난을 걸어놓고 왜 애를 잡나 싶은 마음이 들지만 중간에 끼어들 수도 없고 운전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믿음반 형님이 그랬어." 예상을 빗나간 동글이 대답을 듣고 아빠와 나는 멈칫했다. '친구들한테 그러면 안돼요'라는 대답이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믿음반 형님에게 꼬집혔다니... 아이가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이 나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동글이는 이번 여름방학 때 처음으로 5, 6, 7세가 합반으로 운영되는 종일반에 들어갔다. 같은 반 친구들은 별로 없고, 낯선 친구와 형님들과 함께 해서 방학 때 유치원 가는 걸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꼬집히는 일이 있었다니 놀랐다.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내색 하지 않고 아이에게 차근히 상황을 물어보았다. 형님이 무언가를 쌓아 놓았는데 동글이가 모르고 무너뜨렸다고 한다. 미안하다고 했는데도 형님이 팔을 꼬집었고, 그런 일이 다음 날도 있었고 몇 번 반복된 듯했다.

형님이 꼬집었을 때 아팠냐고, 울었냐고 물었더니 아프긴 했지만 울진 않았다고 했다. "그랬구나, 형님에게 꼬집혀서 마음이 안 좋았겠네."라고 말해 주고 아이를 한 번 안아 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냈다.

그날 바로 와서 말하지 않은 이유는 꼬집히긴 했지만 아이가 보낸 하루 중 커다란 이벤트로 마음에 남지 않아서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아이와 대화를 마무리했다. 아이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은 일을 한참이 지난 이제 와 큰 사건처럼 호들갑 떠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그림책을 폈다.

 <친구랑 싸웠어!>
 <친구랑 싸웠어!>
ⓒ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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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친구랑 싸웠어!>에는 아이들 간 다툼이 있을 때 아이 속마음이 어떠한지 잘 나타나 있다. 화가 나 씩씩거리는 표정의 남자 아이가 벌러덩 누워있는 표지에서부터 억울한 아이 마음이 느껴지는 이 그림책은 작가가 실제 '놀이섬'이라는 아이들 놀이터에서 일어난 일을 그린 책이다.

아이들 말투로 '~다'로 딱딱 끊어지게 표현 글과 어린 아이가 그린 듯한 그림이 잘 어울려 주인공 다이의 그림일기를 보는 느낌이 든다. 책 내용은 날마다 집 근처 '놀이섬'에서 노는 다이가 친구 고타와 싸운 이야기다. 고타와 싸우다 힘에 밀려 엉덩방아를 찧고 다이는 엉엉 울며 분해한다. 엄마에게 달려가 엎드려 엉엉 우는 다이.

선생님이 찾아와 아까 친구들과 함께 만든 만두를 먹으러 가자고 하지만 다이는 절대 안 갈거라며 삐쳐있다. 자기가 화나 있으니까 엄마도 안 갈 줄 알았는데, 엄마가 다이를 두고 혼자 가버리자 너무 억울해 문을 확 열고 엄마에게 가지 말라고 소리친다.

그때 문 밖에 아이들이 와 있다. 고타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다이는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사과 하지 말란 말야!' 하고 소리친다. 여전히 분이 안 풀린 다이는 문을 닫고 엉엉 운다. 시간이 흐르고 엄마가 싸가지고 온 만두를 먹으면서 다이는 금세 마음이 풀린다.

책장 두 면 가득 다이의 행복한 얼굴이 그려진 모습을 보면 그 얼굴이 우스워 절로 미소 짓게 된다. 별거 아닌 일에 싸우고 분해하고 금세 마음이 풀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잘 그려진 이 그림책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장면이다.

빈 만두 접시를 가지고 '놀이섬'으로 간 다이는 고타와 만나게 되고, 고타가 다시 사과한다. 다이는 '헤헤헤' 웃는 것으로 상황을 넘기지만 '다음 번엔 내가 꼭 이길 거야'라고 다짐하며 이야기가 끝난다.

'친구랑 싸우지 말고 사이 좋게 지내야 된다'는 잔소리가 없는 아이들 마음이 그대로 그려진 <친구랑 싸웠어!>를 보고 나면 웃음이 난다. 다음 번에 꼭 이길 거라고 다짐하는 다이의 마음이 순수해서, 분해서 씩씩거리는 게 귀여워서 미소짓게 된다.

동글이가 꼬집힌 이야기를 듣고 나서인지 다이가 엄마에게 달려가 엉엉 우는 장면이 전보다 더 눈에 들어왔다. 동글이가 형님에게 꼬집혔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우리 아이에게 이제 내가 정말 울타리 역할을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없는 상황에서 아이는 어떤 일이든 겪을 수 있다. 맞을 수도 있고, 때릴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아이가 집에 돌아와 이야기를 하고 부모와 함께 하는 거라 생각한다.

형님에게 꼬집힌 게 여름방학 일인데 이제 와 말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앞으로 누가 때리거나 하면 엄마에게 꼭 말해야 된다"고 훈계하는 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엄마에게 말하라는 당부보다 아이와 나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아이 말과 행동에 세심히 귀 기울이고, 아이 마음을 읽어주려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다면 아이가 혼자 세상을 탐구하고 돌아와 자연스레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힘으로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친구랑 싸웠어!

시바타 아이코 지음, 이토 히데오 그림, 이선아 옮김, 시공주니어(2006)


태그:#친구랑 싸웠어, #유치원, #꼬집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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