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하찮은 범죄가 수천 개의 선한 일로 무마될 수는 없을까? 하나의 생명을 희생시켜 수천 개의 생명을 부패와 해체에서 구하는 거지. 하나의 죽음과 백 개의 생명을 서로 맞바꾸는 건데, 사실 이거야말로 대수학이지 뭐야! 게다가 저울 전체를 놓고 보면 이런 폐병쟁이에 멍청하고 못된 노파의 목숨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중에서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의 문제의식과 맞닿아있다.

과연 인간이 인간을 단죄할 권리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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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에는 연쇄살인범이었지만 지금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수의사 김병수(설경구). 그는 얼굴에 경련이 생길 때마다 단기 기억상실에 빠진다. 그의 첫 살인 동기는 아버지에서 비롯된다. 아버지의 반복되는 극단적 폭력 앞에 그 날도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병수는 구타당한다. 질식할 것만 같은 폭력 상황 앞에서 열다섯 살 병수는 아버지의 눈빛에서 살인마를 보았고, 결국 아버지를 베개로 질식시켜 죽인다. 그 후 병수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을 죽이는 연쇄살인범이자, '짐승'을 살리는 수의사가 된다.

병수의 연쇄살인은 17년 전 기억 안에 갇혀있다. 딸 은희(설현)와 단둘이 살며 일상을 살아가는데 우연한 접촉사고로 민태주(김남길)를 만난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눈빛을 가진 태주가 최근 마을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범임을 직감한다.

은희의 남자친구가 된 태주와 그리고 딸을 지키고픈 아버지 병수. 연쇄살인범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그들에겐 가정폭력이라는 또 다른 분모가 있다. 어머니를 단죄하겠다며 발가벗겨 내쫓는 아버지를 가진 태주. 가엾은 어머니는 마땅히 아버지를 증오해야 했음에도 태주의 머리를 다리미로 때려 심각한 외상을 남긴다. 어머니에 대한 지독한 상흔만큼이나 여성에게 지독한 증오심을 품게 된 것이 태주의 살인 동기가 된 것이다. 그렇기에 두 남자의 살인은 자의적이지만, 동시에 타의적이다. 자살이 죽이고 싶은 대상을 내면에 투사해서 자신을 죽이는 것처럼 말이다.

죽여야 할 사람을 죽이는 것과 죽이고 싶은 사람을 죽이는 것은 다른 것일까? 영화는 태주의 입을 빌려 말한다. "죽어야 할 사람 또한 당신이 정하는 것 아닌가? 나도 내가 정한 사람을 죽인 것이다. 그러니 본질에 있어서 당신과 나는 같은 살인마일 뿐이다"라고.

인간이 인간을 단죄하는 것

노모스(nomos: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인간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믿는 것은 신의 권능에 대한 도전이자 그 결과는 항상 비극이다. 소설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는 노파를 죽인 후 극심한 죄의식과 내부분열에 시달린다. 영화 속의 병수 또한 메마른 피부와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경련을 통해 암흑의 터널 같은 고통스러움 속에 살아왔음을 암시한다.

"70년의 인생…. 내 마음은 사막이었다."

병수의 독백이다. 영화가 끝나는 내내 나는 울먹일 수밖에 없었다. 짐승(아버지)을 죽이기 위해 짐승이 되어야 했고, 짐승의 삶을 구원해준 딸을 살리기 위해 망각과 고통 속에서 싸워야 했던 한 인간의 참담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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