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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을 벗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길벗이 라이딩 하면서 만난 83살 어르신과의 일화를 이야기 해주었고, 우리는 적어도 70살까지는 함께 여행을 다녀보기로 했다.
▲ 왜관에서 아침 먹으러 계단을 오르는 JH 낯선 땅을 벗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길벗이 라이딩 하면서 만난 83살 어르신과의 일화를 이야기 해주었고, 우리는 적어도 70살까지는 함께 여행을 다녀보기로 했다.
ⓒ 김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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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처음에 다큐 촬영차 달린 여행기에서 언급한 바 있다. 요지는 '방송에 담아내기에 혼자는 외롭고 셋은 많아서 둘 정도'라는 권고에 따라 둘이 달리게 되었다는 부분이다. 이를 두고 댓글에 달린 반응이 제법 뜨거웠다. '여행은 혼자가 최고'라는 것과 '둘이든 혼자든 그게 무슨 문제?'라는 이야기가 엇갈렸다.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 아니라 방송 촬영상 둘이 적정하겠다는 부분을 오독 한 거지만 이 부분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혼자 타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페이스가 다 다르고 여러 가지 일정을 맞춰 팀 라이딩 하는 것이 피곤하기 때문이다. 다만, 여행을 하는데 홀로 여행이든 둘의 여행이든 가리지 않는다. 다만, 나와의 파트너십이 가능한지 페이스를 조절해 팀워크를 유지하는데 문제가 없는지를 고려할 뿐이다.

장거리 여행이라도 고독을 견디며 난관을 극복해 가는 맛도 있을 것이고 둘이 있어 의지가 되는 맛도 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에서 작가는 이렇게 내레이션을 달았다.

"이 정도의 자전거 여행이라면 사람이든 자전거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보통이다. 혼자 왔더라면 이 그림자만 친구였을 테고 이 친구는 펑크가 나도 도움이 될 수 없겠지", "'길 위에 나를 실은 바퀴가 지나가고 길은 비워진다. 달리는 사람은 그 시각 그 좌표에서 누군가와 나눴던 생각을 추억으로 실어간다"

홀로든 둘이든 각기 다른 기억을 담아낼 뿐이다.

언젠가 다시 그 길을 찾았을 때 기억이 재생될 수 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인간의 능력이다. 여행하는 동안 JH에 관한 오래전 기억도 고개를 넘나들며 재생되고 있었다. 고집스럽고 악착스럽게 노력하고 자기를 만들어 가는 JH와 나는 다른 면이 많다. 이만하면 좀 쉬어가도 좋으련만, 고갯길마다 자신에게 지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페달을 밟는다.

누군가는 이 여행이 시작되기 전에 50줄 두 중년이 무리하며 경쟁의식으로 탈이 생기지 않을까를 염려하기도 했었다. 우려와는 달리 둘의 파트너십은 훌륭했다. 서로의 페이스를 이해하고 맞춰가려 노력했다. JH는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지지 않고 넘어 서려했을 뿐이다. 30년도 더 된 기억 속 JH가 재생되어 또 다른 추억을 만들었다.

강과 길은 나란히 달리다 때론 헤어진다. 절벽에 붙여 다리를 만들어낸 달성보 인근의 자전거 길을 달리고 있다.
▲ 달성보에 도착하다 강과 길은 나란히 달리다 때론 헤어진다. 절벽에 붙여 다리를 만들어낸 달성보 인근의 자전거 길을 달리고 있다.
ⓒ 김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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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시작되었다. 출발에 앞서 목적지를 합의한다. 오늘 여정에 주의할게 많단다. 중간에 먹을 만한 곳이 마땅치 않은 구간이 많으니 작전을 잘 짜야한다는 것이다. 지난 여름 37~8도를 넘나들던 8월의 폭염 한가운데 부산을 출발해 서울까지 오려다 구미에서 포기했던 경험을 말하는 것이다. 아침은 왜관쯤에서 먹고, 점심은 창녕군 구지면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저녁은 남지읍 내지 밀양시 하남읍에서 묵는 것으로 목표로 달리기로 했다. 남지까지는 150㎞ 가량이고 하남까지는 180㎞ 가량.

이른 아침에 시작한 라이딩은 순조로웠다. 앞선 이틀과 다른 패턴이었다. 내 페이스로 달리고 앞서가며 가끔 뒤를 확인해 맞춰가는 것이다. 많이 떨어진 것 같으면 기다려서 한 모금 축이며 기다렸다. 내 피로도 줄이고 JH의 부담감도 해결한 것이다. 속도나 순발력은 못 미치나 지구력은 검증되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선거운동이 한참이던 5월 6일 아침 칠곡군 왜관에서 순대국밥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선다.
그렇게 달성과 화원을 지나 창녕 구지까지 거의 다 왔다. 15㎞ 정도만 가면 점심을 먹겠다 싶은데 복병이 나타났다. 구지면이 산 뒤에 숨어있는 것이다. 경사도 20%에 가까운 험난한 구간이다. 여기서부터 JH가 앞서고 내가 쫒아가는 상황이 벌어진다. 끌어야 하는 구간이 싫고 지친 것이다. 자꾸 주저앉아 쉬고 싶은데 JH는 계속 나아간다. 싫든 좋든 넘어야 점심을 먹는다는 심정으로 결국 넘어섰다. 고개를 넘어서면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밀가루 음식을 싫어하지만 식당이 있을만한 소재지까지 왕복 4,5㎞는 더 소진해야 하는 것이 낭비다 싶어 가까운 중국집에서 해결하기로 한다.

점심을 먹으며 작년 여행길에서 뜨거운 햇살 아래 고생했다는 구간을 피해 잘 돌아온 것 같다고 JH가 말한다. 그 말의 여운도 가시기 전에 고개 넘어 소 막사를 보고서야 확인한 악몽의 그 고개가 바로 여기였단다. JH의 기억이 잘못된 것이었다. 바로 창녕시 이방면 송곡리에서 장천리를 넘는 구간으로 강가에 갑자기 솟아난 절벽 위 무심사에서 시작되는 구간이다. 낙동강을 달려본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구간이다.

창녕시 남지면에 도착하기 전 도초산 기슭 같다.
▲ 유독 급격한 경사구간이 많았던 3일차 창녕시 남지면에 도착하기 전 도초산 기슭 같다.
ⓒ 김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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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승고도 100미터 이상을 네 번 넘어야 했다.
▲ 3일차 라이딩 주행기록 상승고도 100미터 이상을 네 번 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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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문경새재에서부터 시작된 물길은 부산까지 줄곧 아래로 흐른다. 그게 자연의 이치고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자전거 길은 다르다. 물이 절벽을 만나 피해서 물길을 만들어내지만 사람의 발은 물 대신에 절벽을 넘어야만 다시 물길과 만난다. 어지간한 구간에서는 절벽 곁을 따라 길을 내지만 이 구간에서는 그것도 안 되는 모양이다. 비포장 구간도 만나기도 하고 마침 비까지 내리기 시작하니 더욱 난감해진다. 올라가기보다 조심스러운 내리막을 가슴 쓸어내리며 넘어섰다.

그리고 이제 정말 고개 구간은 끝났다는 JH의 말은 막판에 다시 등장하는 고개로 인해 무색해지고 만다. 큰 고개가 다시 두 개가 나타난다. 합천 창녕보를 지나 낙서면에서 남지읍으로 넘어가기 위한 박진고개 아래서 여러 무리가 자연스럽게 모인다. 때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이기도 했을 것이다. 60대의 단체 라이딩 그룹, 둘 또는 셋의 팀들, 그리고 홀로 나선 이들까지 40여 명이다.

비가 잠시 주춤하자 하나 둘 용기를 내 나서기 시작한다. 2/3는 끌고 1/3은 타고 넘는다. 길가에 둘러쳐진 담벼락은 온통 낙서로 가득하다. 아무개가 언제 이 구간을 지나갔다고 적어 두었다. 나이 지긋한 15명의 무리가 고개를 굴러 넘는데 저절로 경외감이 인다. 지구력만큼은 나보다 나아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막판이 아니라 체력이 충분한 상태라면 넘지 못할 고개는 아니었다.

막판에도 길의 배신은 있었다. 도초산 능선을 타고 남지읍까지 이어지는 막판으로 다시 험난한 산길을 넘어야 했다. 비가 내린 오후의 초입엔 바람막이로 비옷을 삼았다. 계속되는 고갯길, 바람막이는 고통스러운 장애물이었다. 벗어던진 지 오래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려 생쥐 꼴이 되었다. 남지읍 입성하기 전 마지막 고개를 앞두고.
▲ 3일차 라이딩 막판 하루 종일 비가 내려 생쥐 꼴이 되었다. 남지읍 입성하기 전 마지막 고개를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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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한창 내리는 6시 무렵 남지에 달했다. 모텔 촌을 찾아 가장 근사해 보이는 모텔을 잡는다. 자전거 여행객을 많이 받는지 '자전거 여행객 환영, 세탁 가능'이라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숙소를 잡고 먼저 빨래를 하고 샤워를 마친다. 탈수기를 돌려준다는 주인장의 말에 대충 주무른 빨래를 맡기고 저녁을 먹으러 나선다. 오늘 저녁은 막창.

수고롭고 힘겨운 또 하루를 보냈다. 비가 내리는 창가에 앉아 내다보지만 지치고 힘듦보다 이제 거의 다 마치고 있다는 보람이 앞선다. 오늘 150㎞를 달렸고 이제 남은 거리는 100㎞가량이다. 내일까지 달리고 자갈치 시장을 찾아 회라도 한 접시 먹고 일요일 아침에 돌아가기로 한 계획의 변경이 필요하다. 토요일 오전이면 일정이 끝나게 된 것이다.

탈수기에 돌려 물기만 살짝 머금고 있던 빨래와 함께 두 친구의 피로가 밤사이 증발되고 만다. 아침이 되자 옷도 몸도 뽀송뽀송해졌다.

부산아 기다려라. 우리가 왔다.

덧붙이는 글 | '두 바퀴로 만나는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자전거 여행기를 담아보려 합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 매체인 '전북 포스트'에 동시에 보냈습니다.



태그:#자전거 여행, #두 바퀴로 만나는 세상, #길벗 자전거 여행, #낙동강 종주, #구미-창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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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는 한의사, 자전거 도시가 만들어지기를 꿈꾸는 중년 남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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