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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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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군주

세종대왕 이도는 다른 왕들에 비해 모범생 이미지가 강하다. 경제도 안정시키고, 문자도 창제하고, 과학도 발달시키고, 정치도 안정시키고, 영토도 넓혔다. 이런 가운데 공부까지 열심히 했다. 그는 궁 안에서 항상 뭔가 읽고 열심히 일하는 군주였다. '촛불혁명'의 대상일 확률이 지극히 낮은 군주였다.

그런데도 세종은 역대 왕들보다 궐 밖 나들이가 잦았다. 요즘에는 이런 모습이 활력적으로 비치겠지만, 옛날에는 꽤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옛날에는 왕의 나들이가 쉽지 않았다. 지금은 대통령도 아무렇지 않게 휴가를 가지만, 예전에 달랐다. 백성들이 야외로 나가 달구경을 하는 추석 같은 때도, 왕은 왕실 사당에서 추석제 같은 의례를 지내야 했다. 대궐에 갇힌 채 살았던 것이다. 

옛날로 가면 갈수록 왕과 수행자는 잘 구분되지 않았다. 종교와 정치가 합치된 제정일치 시대는 물론이고 그 후에도 왕은 수행자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조선시대까지도 그랬다. 유학자들은 수행을 열심히 하라며 군주를 압박했다. <조선 국왕의 일생>에 실린 김지영 서울대 선임연구원의 '먼발치에서 왕을 느끼다, 왕실의 행차'에 이런 대목이 있다.

"구중궁궐 속의 임금님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왕은 겹겹이 둘러싸인 궁궐 안의 존재로 여겨졌다. … 왕이 궁궐 밖으로 나가는 일에는 제한이 많이 따랐다. …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대학>의 원리를 군주의 통치론에도 적용했던 조선의 성리학적 군주론은, 군주 스스로 몸가짐을 단속하며 덕을 닦으면 백성의 교화와 정치의 안정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으로 여겼다. 때문에 군주가 백성들 앞으로 자주 나아갈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것으로 여겼다."

군주가 수행자의 면모를 갖췄기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궁은 신성한 공간이었다. 이곳은 왕이 정치뿐 아니라 종교적 수행도 함께하는 장소였다.

절을 지키는 승려, 성당을 지키는 신부, 교회당을 지키는 목사는 존경을 받는다. 이런 분들을 카페나 극장 같은 곳에서 자주 만나면 서로 어색해진다. 마찬가지로, 왕들은 궁을 지킬 때 존경을 받았다. 궁을 지켜야 정치와 수행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외출 자주 했던 세종, 이유는

왕의 일상적 집무실이자 수행 공간인 편전. 사진은 창덕궁 편전인 선정전. 서울시 종로구 와룡동 소재.
 왕의 일상적 집무실이자 수행 공간인 편전. 사진은 창덕궁 편전인 선정전. 서울시 종로구 와룡동 소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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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보면, 세종 같은 이상적인 군주가 궐 밖 출입을 많이 한 것은 좀 특이한 일이다. 세종은 사신 환영, 군사훈련, 농사 시찰, 사냥, 온천 여행, 약수터 방문 등을 위해 외부 출입을 자주 했다.  

세종의 잦은 외출은 그가 육체적으로 활력적이었다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SBS <뿌리 깊은 나무>에서는 배우 송중기와 한석규가 각각 청년 세종 및 중장년 세종을 연기했다. 이 배우들의 외모를 보고 실제의 세종을 연상하면 안 된다.

왕이 된 스물두 살 때 세종의 외모가 어땠는지는 아버지 태종 이방원의 말에서 드러난다. 이방원이 세종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얼마 뒤에 한 말이다. 음력으로 세종 즉위년 10월 9일자, 양력으로 1418년 11월 6일자 <세종실록>에 따르면, 이방원은 세종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몸이 뚱뚱하고 무거우니, 이따금 외출해서 몸을 조절해야 한다."

세종은 몸이 비대했다. 외출을 기피하는 성격이었다. 책상에 앉아서 책 보는 것만 즐기는 사람이었다. 상왕이 된 이방원은 그런 세종을 데리고 야외로 나가 사냥을 했다. 아버지가 임금이 된 아들을 데리고 사냥을 나가야 했던 것을 보면, 이때만 해도 세종이 얼마나 움직이기 싫어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임금이 될 때만 해도 뚱뚱하고 무거웠던 세종은 불과 몇 년 사이 싹 바뀌고 말았다. 멋있는 쪽으로 바뀐 게 아니었다. 왕이 되기 전에는 공부하느라 건강을 망쳤다. 왕이 된 후에는 공부에 더해 업무까지 열심히 했다. 그래서 몸이 더 망가졌다.

세종 4년 11월 1일자(1422년 11월 14일자) <세종실록>에 따르면, 즉위 4년 뒤인 스물여섯 살 때의 세종은 살쪘던 과거를 부러워해야 할 정도였다. 이때 그는 허손병에 걸려 있었다. 몸이 극도로 수척해지고 쇠약해져 있었다. 예전에 입던 옷이 너무 커서 못 입을 정도가 됐던 것이다.

허약하면서도 집념에 찬 사람

세종의 건강은 나이 먹을수록 더 나빠졌다. 종합병동 수준이었다. 두통·이질·당뇨·부종·임질·안질·시력저하·어깨통증·가슴떨림·중풍·보행장애 등이 있었다. 각각의 질병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다들 하나같이 심각했다. 거기다가 서른아홉부터는 등이 굳어 잘 움직이지도 않았다. 45세부터는 어두운 데서 지팡이 없이 걷기 힘들어졌다. 죽기 1년 전인 53세 때는 언어장애까지 생겼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훈민정음'은 이런 고통의 산물이었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는 비교적 기운 있어 보이는 중장년 세종이 묘사됐지만, 실제의 세종은 아파서 골골하면서도 공부와 일을 놓지 못하는 허약하면서도 집념에 찬 사람이었다. 

아버지 태종은 젊은 세종을 운동시키려고 사냥터에 데리고 나갔다. 이게 자극이 됐는지 세종은 사냥을 많이 다니는 왕이 됐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자신이 직접 건강을 챙기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한번은 사냥 나갔다가 가슴이 철렁한 적도 있다. 서른 살 때인 1426년. 강원도로 사냥 가느라 도성을 비운 사이에 한양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2170호의 민가와 관청 일부가 불에 타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아픈 경험도 있었지만, 건강도 지키고 군사훈련도 참관할 목적으로 사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냥뿐 아니라 온천 여행도 자주 했다. 책과 서류를 많이 보자면 안질을 치료해야 했다. 그래서 온천을 활용한 것이다. 이런 모습이 한의학자 이상곤의 <왕의 한의학>에 이렇게 설명돼 있다.

"세종은 안질 치료에 온천을 활용했다. 세종은 역시 실험 정신이 강했다. 눈병을 고치려고 여러 온천의 물을 길어와 무게를 측정했다. 실록은 경기도 이천 갈산의 온천물이 가장 무거운 것을 알아내고 세종이 행차했는데, 효험이 컸다고 기록하고 있다. 세종은 평산, 온양, 이천 등지의 온천을 열심히 다니면서 지병인 허리와 어깨의 강직 현상을 치료했다."

온천의 풍경. 지면에서 열이 올라오고 있다. 사진은 백두산 장백폭포에서 북쪽으로 900미터에 있는 취룡천이란 노상 온천.
 온천의 풍경. 지면에서 열이 올라오고 있다. 사진은 백두산 장백폭포에서 북쪽으로 900미터에 있는 취룡천이란 노상 온천.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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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질 치료를 위해 약수터 방문도 병행했다. 세종 26년 2월 28일자(1444년 3월 17일자) <세종실록>에서는 "주상과 왕비가 청주 초수리로 거둥했으며, 세자도 어가를 수행했다"라고 말했다.

초수는 떫고 찬 물로 일종의 탄산수다. 이런 물로 만나고자 지금의 충북 청주시 내수읍에 있었던 초수리 즉 초정리를 방문했던 것이다. 세종은 이곳에 임시 궁궐인 행궁을 세우고 두 달간이나 머물렀다.

왕은 궐 안에서 정치와 수행에 전념해야 했다. 그러자면 궁을 떠나지 말아야 했다. 세종도 그러고 싶었을 것이다. 궐 안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책을 즐기는 데 전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건강이 너무 취약했다.

그래서 몸을 치료할 목적으로 부득이하게 궐 밖 출입을 자주 했다. 궐 안에서 건강하게 살려면, 궐 밖을 자주 다닐 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달구경 나가는 추석 같은 때도 왕실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야 하는 군주였지만, 그는 건강을 위해 남보다도 더 많이 나들이를 해야 했다.


태그:#왕의 행차, #세종, #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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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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