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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MBC의 노동자들의 파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공정언론, 적폐인사 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여기에 속속 밝혀지고 있는 지난 9년 동안의 언론 장악 실상이 더 큰 분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파업은 언론의 '정상화'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진의 퇴진을 요구하는 '부정'의 목소리는 두 공영방송이, 아니 한국의 언론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줄 움직임과 함께 해야 합니다. 이번 파업을 지지하는 일군의 언론학자들이 파업이 모두 종료될 때까지 <오마이뉴스>에 주 2회의 릴레이 기고를 이어가는 '라이팅 위드 스트라이트(Writing With Strike)'를 시작합니다. 언론 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이행기에 지식인들이 할 행동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며 무엇을 위해 지금의 힘겨움을 견뎌야 하는지를 제안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파업 기간 동안 모든 언론노동자들이, 그리고 시민들이 언론에 대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8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행사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인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연설. (화면켭춰)
▲ 파업 언론인을 향한 세월호 유가족 '통한의 절규' 8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행사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인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연설. (화면켭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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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8일 예은아빠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광화문 광장에 모인 언론 노동자에게 뼈아픈 일성을 토해냈다. "망가진 언론의 피해자는 여러분들이 아니라, 바로 국민들, 예은이 아빠인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지금도 진행 중인 KBS·MBC 노조의 파업에 대해 지지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편하게 근무하라는 게 아니라, 바로 내가 또 다시 죽고 싶지 않아서, 내가 언론 때문에 또 다른 고통을 받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노기 가득한 목소리에 2014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어버이날. 아이들의 영정을 가슴에 안은 부모들이 KBS를 거쳐 청와대 앞으로 모였던 그날. 길환영 KBS 사장은 앞으로 나와 허리 숙여 사과했고 며칠 후 자진 사퇴했다. 유가족들의 항의와 분노는 보도의 공정성이나 정치적 중립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망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없었던 보도와 간부의 발언, 유가족에 대한 모욕적 언사, 사과 한마디 없었던 언론 종사자들에 대한 분노가 그해 어버이날을 물들였다.

같은 구호, 그러나 다른 파업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이 파업중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을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이 파업중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을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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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3년이 흐른 지금, 바로 그 방송사들이 언제 끝날지 모를 파업에 들어갔다. "공정방송 쟁취", "방송장악 진상규명", "적폐인사 청산" 등 2012년 최장기 파업 때 썼던 구호와 피켓을 '재활용'해도 무방한 오래된 요구들이 다시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두 공영방송의 파업은 이전과 다른 상황에서 진행 중이다.

5년 전 파업이 사장과 이사 등 지배 구조를 바꿀 언론 공정성의 약속을 요구했다면, 지금의 파업은 지난겨울 광장을 메웠던 촛불과 대통령 탄핵, 그리고 정권교체라는 거대한 역사적 변환기의 연장에 있다. 언론의 문제만이 아닌 사회 곳곳의 숱한 개혁 요구 중 하나의 의제로 등장한 셈이다. MBC에서 벌어진 불법 해고와 인사조치, 공·민영 방송을 가리지 않고 청와대-국정원이 자행한 '숙청'의 증거들은 부당노동행위와 국가기구의 불법사찰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불거져 나왔다. 노동권과 인권이라는 당연한 권리의 침해가 방송장악의 수단으로 쓰였던 것이다.

이번 공영방송 파업이 이전과 다른 점은 또한 참가자들 때문이다. 5년 전 파업 때 정규직 노동자들이 전면에 나섰다면, 이번 파업은 프리랜서 방송작가와 뉴스 진행자, 파견직 AD, 비정규직 리포터, 독립PD까지 모든 노동자들의 동참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들은 생계가 걸린 외주 제작을 멈추었고, 퇴직을 감수하면서까지 제작을 거부했다. 비록 파업에 동참은 못해도 이후 불이익을 당할지 모를 공개적 파업 지지의 입장까지 밝힌 이들도 있다.

노동자뿐이 아니다. 이번 파업의 가장 큰 차이는 앞서 말한 유경근 집행위원장의 발언에서 정점에 달한다. 언론으로부터 시청자로, 국민으로 불리던 이들은 이렇게 묻고 있다. "언론의 독립과 공정성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두 공영방송의 파업을 가능케 한 전 사회적 개혁의 요구,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 없이 터져 나오는 저항,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과 같은 망가진 언론의 피해자들이 쏟아내는 분노. 이런 차이는 2017년 9월 두 공영방송의 파업을 향해 물음을 던지게 한다. "누구를 위한 파업인가"

무엇을 위해 언론인이 되려했는가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이 파업중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을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이 파업중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을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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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을 장래 희망으로 꿈꾸던 이들에게 이 직업의 매력은 단순했을 것이다. 타인이 듣고 싶었던 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줬을 때의 뿌듯함, 누군가에게 진심을 담아 썼던 글에 화답이 왔을 때의 기쁨, 주변 사람들이 몰랐던 소식을 전할 때의 자랑스러웠던 경험이 그것이다. 이 모든 행위의 근간에는 돈과 같은 대가보다 타인의 공감이, 자신의 자부심이, 공동체에 기여했다는 보람이 놓여있었다. 그러나 이런 행위가 직업이 될 때, 그것만이 생계수단이 되어 언론사라는 조직만을 위한 노동이 될 때, 그 행위는 스스로를 얽어매는 족쇄가 된다.

언론인이라는 정체성, 공영방송의 구성원이라는 정체성은 그래서 양가적이다. KBS와 MBC에서 자행된 통제와 억압의 9년은 언론인의 정체성을 오직 국익이라는 이름의 정권 보호를 위한 KBS의 정체성으로 바꾸어 버렸다. 공영방송만이 아니었다. 방송의 목적이 이윤을 위한, 아니 대주주의 사익을 위한 것으로 바뀔 때, 기자·PD의 취재와 제작은 시청자가 아닌 사장과 회장을 위한 일이 돼버렸다.

지난 9년은 시민과 공동체보다 국익이라는 허상에 충실한 언론인, 대주주가 방송사를 사유화해도 생계를 위해 침묵해야 하는 언론인의 시간이기도 했다. 언론인이 되기를 소망했던 예전의 기억과 희망은 사라졌고, 도리어 그 기억과 희망으로 국가를 변호하고 자본을 옹호하는 방송사를, 신문사를 버티게 만든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렇게 국가와 자본에 의해 지배당한 언론인들은 시청자, 또는 시민들을 또 다른 정체성으로 호명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유귀족'으로, 물대포에 쓰러진 부모 앞의 자식을 '빨갱이'로, 자신의 땅을 지키려는 농민들을 '폭도'로, 사발면과 젓가락이 담긴 가방만 남기고 세상을 떠난 열아홉 청년의 죽음을 '사고'로 불렀다. 언론 노동자가 만드는 생산물은 TV 영상이나 신문의 기사가 아니다. 바로 이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과정 그 자체가 이들 노동의 산물이다.

함께 하는 물음과 걸음의 파업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이 파업중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을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방송독립 연대파업 출정식’이 파업중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을 비롯한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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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파업은 그래서 다르다. '공정 언론', '언론 적폐 청산', '방송 독립'과 같은 구호들은 여전해도, 파업을 지지하고 응원하며 참여하는 이유는 다르다. 정규직 PD와 기자가 아니어도, 공영방송이 직장이 아니어도, 자신이 원했던 일은 이것이 아니었다는 권력과 자본에 대한 거부가 터져 나오는 중이다. 뉴스 화면의 자막을 치고 교정하는 일, 섭외부터 심부름까지 온갖 잔심부름을 떠맡아야 하는 일, 납품마감일을 앞두고 '갑질'을 감내해야 하는 일. 업무의 종류를 떠나 더 이상 이렇게 일하고는 싶지 않다는 거부의 몸짓과 목소리가 이번 파업의 동력이다.

파업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또 어떠한가. 지난 9년 동안의 언론에 대한 분노는 정치적 중립이나 객관성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의 수"와 같이 단지 숫자로만 보였던 세월호 희생자들의 분노처럼, 시민들은 방송사라는 '공장'에 갇힌 언론인들에게 자신을 '사람'으로 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파업의 지지는 언론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지지이다.

결국 이번 파업은 KBS와 MBC의 파업, 언론노조 KBS, MBC본부 조합원들만의 파업이 될 수 없다. 설령 사장과 이사장이 사퇴해도 그것이 기자와 PD라는 직업 정체성의 회복만을 위한 것이라면, 공정 보도와 정치적 중립이라는 추상적 목표의 달성만을 위한 것이라면,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YTN의 한 해직 기자는 복직을 앞두고 축하한다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복직이 되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해고는 원인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하면 안 되는 일을 강요하고 억압한 그 직장이 바로 원인입니다. 해고를 당하면서도 바꾸려 했던 그 곳이 그대로라면 복직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고대영과 김장겸의 퇴진, 공영방송의 정상화, 공정 언론, 정치적 독립. 그 어떤 구호와 목표라도 기자가 말한 '복직'과 같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파업의 구호와 요구는 기자와 PD라는, 공영방송이라는 정체성의 회복에만 그칠 수 없다. 비정규직들까지 나서 제작을 거부하는 방송, 언론 노동자가 아니라 바로 '내가 고통받았던' 방송은 권력과 자본이 강요하고 억압한 모든 노동과 인권을 위한 투쟁을 통해 달라져야 한다.

유경근 집행위원장의 말이 다시 비수처럼 가슴에 꽂힌다. "망가진 언론의 피해자는 언론 노동자가 아니라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KBS·MBC의 파업은 방송사 두 곳이 아니라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한 투쟁이 되어야 한다. 훌륭한 기자와 PD라는 직업을 되찾기 위한 파업이 아니다. 이 파업은 언론 노동자들이 누군가에게 자랑스러운 부모가, 자식이, 이웃이, 동지가 되기 위한 투쟁이다. 오래전 멕시코 라깡도나 밀림의 사파티스타들이 그랬듯 이번 파업은 '물어가며 함께 걸어가는'(preguntado caminamos)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이 되어야 한다. 이 글은 앞으로 이어질 연속 기고의 첫 글이자, 그런 물음과 걸음의 시작이다.


태그:#공영방송총파업, #K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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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동조합(全國言論勞動組合, National Union of Mediaworkers)은 대한민국에서 신문, 방송, 출판, 인쇄 등의 매체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가입한 노동조합이다. 1988년 11월 창립된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론노련)를 계승해 2000년 창립되었다.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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