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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계절이 시작되는 이쯤에 지나간 여름날 밤의 귀중한 시간을 생각하며 글을 남긴다. 이 글은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연해주 고향 마을에서 로지나 서당 친구들과 함께 했던 3일간의 기록이다.

1일 차

러시아 연해주 고향마을 숙소 로지나 서당 아이들과 어린왕자 연극을 한 곳
▲ 러시아 연해주 고향마을 숙소 로지나 서당 아이들과 어린왕자 연극을 한 곳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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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 해에 수탉의 울음소리가 마을 어귀의 논밭을 적신다. 한여름에 풀어지는 먹구름 사이로 노을빛은 지나간 빗줄기의 신발 뒤축을 훑는다. 아침이 오기 전 간간했던 북녘 하늘 소식을 전해주기라도 하듯 고랑에 흐르는 빗물은 후회도 한탄도 없이 무념무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계성의 우짖음도 노을의 빛깔도 고랑에 흐르는 빗물도 멀리 연해주에서 남녘 땅으로 보내온 한 통의 편지였다. "함께 할 수 있을까요?"라는 내용이었다.

해남지역의 문화예술 단체인 야호문화나눔센터(대표 전병오)와 이웃의 동료들은 한 짐을 꾸렸다. 공항에서 발권을 마치고 수화물을 부쳤다. 캐리어의 크기가 공항 규격과 맞지 않았다. 규격에 맞지 않은 것이 케리어 뿐이겠는가. 규격 때문에 이루어진 연해주 한인의 역사는 '기실 우리 집도 아니고 일가 집도 아닌 집이 되어버렸다'는 김지하 시인의 행간을 닮았다. 규격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1910년 강제 한일 병합이 이루어진 후, 1931년 만주까지 점령한 일본군은 연해주의 소련군과 우수리강을 사이에 두고 총을 쏘고 칼을 부딪쳤다. 이때 스탈린은 한인들이 일본인들의 첩자 노릇을 한다며 한인 강제 이주 정책 직전에 식자층을 모두 처형했다. 반항세력을 사전에 제거하려는 목적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로지나(고향마을)까지 가는 길은 반듯했다. 넓은 곡창지대를 가로지르며 걷는 반듯한 도로는 규격이었다. 사회주의 공동 도시 개발의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규격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1937년 10월, 총 124대의 수송 열차가 투입되어 17만1781명이 중앙아시아로 이송되었다. 이송되어 흐르는 한인의 눈물은 몇 그램의 규격에 맞추었을까.

강윤구(동북아평화연대 사무장)을 만났다. 성공회대 NGO 대학원 팀과 결합하여 로지나의 어린 친구들을 만날 계획이었다.

규격은 흔들려야 했다. 흔들려야 했기 때문에 정수연(야호문화나눔센터 교육팀장)은 로지나 아이들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그것은 연극이었다. <어린왕자> 연극은 과연 아이들과 함께 온 야호팀과 동료들 그리고 성공회대 팀과 마음을 이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정수연 팀장의 고민이자 더 나아가 연해주에서 새로운 만남을 가진 공동체의 염려였다.

연극을 이야기하고 아이들을 만나서 할 놀이를 생각하는 로지나 서당의 밤에 풀벌레 소리가 자욱하다. 어쩌면 역사를 아픔으로만 기억하는 것도 규격일지 모르겠다. 그리움은 규격일 수 없다. 문화예술의 규격은 풀에게 한번, 땅에게 한번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여러 번 물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교육이어야 했다.

2일 차

고향마을 숙소 실내에서 단체 사진
▲ 고향마을 숙소 실내에서 단체 사진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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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고향 마을 숙소 처마 끝으로 뚝뚝 떨어지는 빗물이, 강당에서 첫 만남을 가질 때 아이들이 보여준 엷은 미소가 셀 수 없었다.

성공회대 팀이 준비한 놀이로 가볍고도 뜨거운 첫 만남을 장식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신문지 위에 서서 오래 버티기 등은 아이들과 서먹했던 분위기를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변화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정수연은 아이들 수준에 맞게 연극 대본을 간추렸다. 열 씬으로 구성된 <어린왕자> 대본을 아이들은 어떻게 소화할까?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연극이면 좋을 것 같았다.

누구나가 예술가이다. 배우가 따로 있고 관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안에 있는 배우의 연기력을 끌어주고, 관객이 참여하여 어울리는 무대를 연해주 로지나 서당에서 펼쳐 보이면 어떨까.

전날 성공회대 팀에게 간단하게, 지난 번에 했던 고정희를 사랑한 <어린왕자> 영상을 보여줬다. 연극이라고 다가갔을 때, 연극을 처음 접하거나, 연극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이 몇몇 있었다. 남 앞에 무엇인가 자신의 끼를 꺼내어 표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연극은 결과를 관객에게 펼쳐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변화하고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얻어가는 기쁨도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다행히 성공회 대 팀은 오늘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에서 연극을 거부지 않고 한 명씩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어 공연 준비를 도와주었다.

막심이 어린 왕자 역을 맡기로 했다. 루쌈이라는 친구가 조종사 역을 하기로 했다. 대사를 외우는 것이 걱정이라고 말한 기특한 아이였다. 러시아 이름이 어려워 다 외울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시간이었다. 한 명씩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아이의 눈을 마주 보고 싶었다.

한국에 대해 궁금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을 텐데, 언어 장벽은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아마도 루쌈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언어를 표현하기 전에 마음으로 드러내는 몸짓, 그리고 개별적으로 접근하여 아이들과 교감하는 방향을 고심했다. 내일 비가 많이 오면 아이들이 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일정을 끌고 간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그나마 4시 무렵 아이들을 데리고 갈 차를 기다리는 짬 시간 동안 한국에서 가져온 과자를 나눠 먹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떠나고, 텅 빈 마당을 바라봤다. 머릿속에 로지나 아이들은 불특정하게 그려졌다. 고려인의 후손이다는 상식 정도로 그려낸 허깨비였다. 그러나 실제로 만난 아이들은 한국의 어느 아이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스마트폰 게임을 좋아하고, k-pop 가수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는 평범한 아이였다.

순하고 순박하고, 그래서 사심 없이 손을 내밀 줄 아는 아이들을 이제부터 세어보려고 한다. 셀 수 없는 것이 많은 만큼 셀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우리의 노력이지 않을까. 

3일 차

연극 캐릭터 소개 장면 공연을 시작하며 아이들이 맡은 배역을 소개하고 있다
▲ 연극 캐릭터 소개 장면 공연을 시작하며 아이들이 맡은 배역을 소개하고 있다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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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연습 기간이었지만 아이들도 정이 들었는지 내게 말을 붙인다. 러시아 말이라 하나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됐다고 손사래 치는 아이를 보기가 민망했다. 

연극 공연을 위해 천을 두르고 머리띠를 한 아이들이 자리에 앉았다. 손에는 나불이 하나씩을 쥐고 있다.

비가 올 수도 있다는 기상 예보와 달리 날씨는 야외 공연을 하기에 최적화되어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습기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

명예찬의 장단 연극의 첫 포문을 한국의 장구 장단으로 열었다.
▲ 명예찬의 장단 연극의 첫 포문을 한국의 장구 장단으로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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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포문은 명예찬씨의 장구 장단으로 시작되었다.

"제가 한국에 있는 해남의 두륜산이 있는데, 거기에서 산 공부를 하다 왔는데요. 여기에 저랑 가까운 사람이 많다고 해서 여기까지 비행기 타고 날아왔는데, 장구를 치면서 여러분들의 복을 제가 나눠드리고,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나쁜 기운을 제가 가져가려고 합니다."

한국말을 못 알아 듣는 만큼, 김산하(로지나 서당 교사)의 도움을 받았다. 이날 공연에는 우정마을에서 함께 동거동락을 했던 식당의 아주머니들, 마을 주민 몇 분도 참석을 했다. 명예찬의 장단에 어깨를 들썩거리기도 하고 '얼쑤 좋다' 등의 추임새를 넣기도 했다.

종이 박스에 쓴 한국어와 러시아어 어떤 장면을 연기하는지 알기 쉽게 하기 위해 만든 소도구
▲ 종이 박스에 쓴 한국어와 러시아어 어떤 장면을 연기하는지 알기 쉽게 하기 위해 만든 소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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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추락한다"는 조종사의 대사를 시작으로 연극은 시작되었다. 종이 박스를 오려 한국말과 러시아말을 병행하여 관객에게 보여줬다. 아이들은 둘씩 짝을 지어 춤을 추기도 하고 맡은 배역에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 간혹 대사를 잊어버렸을 때는 아이들 옆에 찰싹 달라 붙은 어른들이 한국말을 천천히 말해주었다.

나불이를 부는 아이들 연극의 절정에 아이들은 나불이로 아리랑을 불었다.
▲ 나불이를 부는 아이들 연극의 절정에 아이들은 나불이로 아리랑을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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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연극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특히 연극의 절정기에 아이들은 자신들이 다듬은 나불이로 아리랑을 불었다. 작은 나무통의 울림이 우정마을의 숙소를 한없이 채우고 있었다.

정들자 이별이라고 했던가. 아이들을 한명씩 포옹하고, 우리는 스냅사진의 한 컷처럼 아이들의 마음을 담았다. 위로가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고향반도를 떠나온 자들의 후예라는 멍석도 불필요 해보였다. 나는 그들의 삼촌뻘이고 이 아이들은 우리의 조카요, 아들이요, 딸이었다.

연극이 끝난 후 단체 사진 아이들과 연극을 하고 난 후 복장 그대로 스텝 모두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 연극이 끝난 후 단체 사진 아이들과 연극을 하고 난 후 복장 그대로 스텝 모두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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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의 여우의 말이 떠오른다.

"네가 나를 기르고 길들이면 우린 서로 떨어질 수 없게 돼, 넌 나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사람이 되고 난 너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될테니까."

어린왕자라는 연극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멀리 떨어져 있는 타인이 아닌 서로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그런 친구 말이다. 해가 지는 것을 보려면 해가 지는 쪽으로 가야하는 것처럼, 다시 한번 이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1984년생. 명지대 문창과졸업. 전남해남지역에서 청년문제,문화예술교육,지역신문칼럼집필 등을 하고 있습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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