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

ⓒ (주)쇼박스


지난 20일 기준 누적 관객 1200만 명을 돌파한 지금까지, 올해 최고 흥행 영화는 <택시운전사>다. 송강호, 토마스 크레취만 주연의 영화는 <고지전> <의형제> 등을 연출한 장훈 감독의 손에서 완성되었다. 송강호의 압도적인 연기력과 토마스 크레취만의 세밀한 캐릭터 재현이 관객을 스크린에 몰아넣는다. 그리고 류준열과 유해진 등 조연들의 연기는 관객에게 웃음과 눈물의 조화를 만들어 준다.

하지만 이 영화의 스토리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픽션이 조금 담기긴 했지만, 1980년 5월의 광주는 영화가 담아낸 것 이상의 것을 겪었다. 그렇기에 오늘 이야기할 영화는 송강호에, 송강호에 의한, 하지만 1980년 5월의 광주를 위한 영화 <택시운전사>다.

지극히 평범하고,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는 택시운전사

 <택시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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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는 관심도 없고,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향해 혀를 끌끌 차는 택시운전사는 아내가 떠나고 남은 딸과의 삶이 모든 것이었다. 아내를 잃고 남겨진 택시 한 대가 그의 삶을 대변했고, 그에게 택시는 딸과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택시 옆에서는 아이들이 공놀이도 못 하게 하는 치졸함도 보인다. 그러던 그에게 우연히 들어온 10만 원을 벌 기회는 그의 삶을 바꿔놓는다.

'외신기자를 광주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면 10만 원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김만섭은 힌츠페터와 함께 광주로 향한다. 광주로 향하기조차 쉽지 않았지만 만섭의 기지와 약간의 행운은 그들을 광주로 이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광주는 그 어느 곳보다 잔인한 현실을 보여준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을 향한 무자비한 군의 탄압은 만섭과 힌츠페터를 위협한다. 죽음의 위기를 같이 겪으며 둘은 단단해졌다. 영화는 그렇게 클라이맥스를 지나 엔딩으로 향한다.

고단한 삶에 지쳐 사회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만섭의 삶은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시간과 함께 변화를 맞이했다. 독재정권의 잔인한 탄압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운 광주의 시민들은 만섭에게 더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힌츠페터는 광주에서 무사히 탈출하고, 만섭은 시간이 지나 힌츠페터의 소식을 신문에서 맞이하며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난다.

영화 내내 송강호의 연기력을 빛을 발한다. 관객을 웃음바다로 만들다가도 대사 한 마디로 관객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든다. '송강호가 웃는 포스터의 영화는 엄청 슬프다'는 말처럼 <택시운전사> 역시 송강호의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김만섭의 캐릭터를 그려내며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있었던 일들을 그려낸다. <택시운전사>라는 영화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방식이 송강호라면, 관객들의 가슴 속에 남기고 싶었던 것은 1980년 5월의 광주다.

1980년 5월의 광주, 그 치열한 현장 속 이야기

 <택시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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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는 실제 광주의 참혹함을 담기 위해 큰 노력을 한 영화다. 제작 전부터 실제 사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영화의 주인공인 김사복씨를 찾기 위해 노력을 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으로 인해 실제 힌츠페터 기자가 촬영한 장면을 영화에서 재현해 내기도 했고, 뒤늦게나마 영화의 실제 주인공의 아들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했다.

실제 영화는 힌츠페터 기자의 인터뷰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1980년의 광주와 닮을 수 있었다. 광주의 소식을 외부에 전하기 위해 도착한 외신기자를 반갑게 맞이해주는 광주시민들의 모습도, 시위대를 위해 주먹밥을 만들어 나누어주던 아낙네들도, 택시운전사들에게 무료로 기름을 주던 주유소 역시 모두 실화에 근거해 영화에 반영된 요소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민주주의를 외치던 시민들을 총과 칼로 무자비하게 학살한 것도 실화다. 당시 힌츠페터를 비롯한 외신 기자들의 필름에 담긴 사진들은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군은 시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했고, 거리에는 시체가 넘쳤다. 영화에서는 힌츠페터의 필름을 바탕으로 묘사한 부분들이 있지만, 실제 1980년 5월을 기억하는 이들의 증언만큼은 담지 못했다.

영화는 이렇게 실제 이야기와 장면들을 담아내면서 관객들에게 1980년의 5월로 여행을 떠나게 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너무나도 끔찍한 일들이 있었고, 137분간 관객을 즐거움과 슬픔, 분노케 한다. 이런 감정들을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영화를 연출한 장훈 감독의 노력과 실제 장면들과 이야기들을 담아낸 과정에 있었다.

민주주의 지키기 위한 숭고한 희생, 돌아보기 충분한 2시간

 <택시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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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이 넘는 시간의 상영이 끝나고 가장 먼저 들었던 감정은 분노였다. 그리고 그다음은 감사였다. 다른 무엇이 아닌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누구든지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고, 정부가 하는 말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도 내던진 1980년 5월의 광주의 시민들 덕분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말 중에 '역사는 진보한다'는 말이 있다. 광주민주화항쟁을 힐난하는 이들은 그렇게 당하고도 다음 정부를 제대로 선택하지 못했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말처럼 역사는 진보했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2017년 서울의 촛불이 되었다. 그리고 역사는 진보해 국민은 옳은 선택을 했다.

잔혹했던 5월의 광주 속 작은 이야기였던 힌츠페터와 김사복의 이야기는 우리가 왜 광주민주화항쟁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준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그들에게 있어 쟁취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는 그런 민주주의에서 사는 것이다. 광주의 시민들은 다음 세대에는 독재정권의 탄압이 아닌 민주주의 국가의 자유에서 살기를 바랐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쳐 얻어낸 민주주의 국가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영화의 상영 시간은 2시간이 조금 넘지만, 영화를 보는 2시간을 통해 스스로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고귀하고 소중한 것인지 느끼게 하는 영화다. 당신이 이 영화를 꼭 봐야 하는 이유는 당신의 민주주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했는지를 알 수 있는 2시간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임동준 시민기자의 네이버 블로그(easteminence의 초저녁의 스포일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택시운전사 광주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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