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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가 김봉기 님, 그의 작품전시공간에서 작품을 설명합니다.
 판화가 김봉기 님, 그의 작품전시공간에서 작품을 설명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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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세요. 차 한잔하시죠. 연잎 차 괜찮지요?"
"아주 좋습니다."

경북 상주의 판화가 호재 김봉기씨 작업실. 차탁 주위에 앉습니다. 그가 익숙하게 손을 놀립니다. 침묵 속으로 연 향이 은은하게 퍼집니다. 연잎이 데워지고, 우러나자 비로소 차가 됩니다. 연잎이 연잎차로 만들어지기까지와 마찬가지로, 연잎이 연잎 차로 변하는 순간 속에는 우리네 삶처럼 많은 과정이 녹아 있습니다. 차, 한 순배씩 돕니다. 연잎 차, 그렇게 몸속에 자리 잡습니다.

"시국이 어수선했던 상황 세상서 할 일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폼 나는 예술가입니다. 그와의 만남은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당시 유황오리 집을 운영하며 식당에 판화 등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투잡족이었습니다. 말이 '예술가'지, 현실은 한 가지 재능으로 먹고살기 척박한 세상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그에게 평화로운 삶을 허락하지 않은 탓입니다. 세상은 그에게 늘 새로운 개척을 요구했습니다. 아마, 그가 쌍계사 문을 막차고 나온 순간부터 예고되었던 일인지도 모릅니다.

판화가 김봉기 님, 직접 만든 연잎차를 따릅니다. 그 향이...
 판화가 김봉기 님, 직접 만든 연잎차를 따릅니다. 그 향이...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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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깎고 쌍계사에 들어갔어요. 일 년 반 정도 있었습니다. 잠시 부산에 갔다가 상주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보고 싶다 택시 타고 와라'고 하대요. 택시를 탔습니다. 그렇게 눌러앉았습니다. 시국이 어수선했던 상황이라 절간보다 세상에서 할 일이 더 많았던 덕분입니다. 끝나면 다시 절에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아내를 만났습니다."

그가 직접 만들었다는 연잎 차. 그 맛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가 '삶의 우여곡절' 때문이었습니다. 그래 설까, 연잎 차는 연잎을 넘어 연꽃 차의 풍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한 생명에서 나왔건만 삶의 절정을 온전히 토해 낸 여부에 따라 가치가 달랐습니다.

이는 보수가 판치는(?) 경상도에서 시국에 맞설 수 있는 힘의 원천이었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불가에서 '팔정도'로 표현되는 '바른 삶'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셈입니다. 그가 내는 연잎 차를 마시는 동안 우리는 점차 연꽃 위에 앉은 부처가 되어갑니다.

김봉기 님이 손수 만든 연잎차를 마시는 동안 점차 연꽃 위에 앉은 부처가 되어갑니다.
 김봉기 님이 손수 만든 연잎차를 마시는 동안 점차 연꽃 위에 앉은 부처가 되어갑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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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으로만 치면 이 세상이 곧 무릉도원이자, 극락세계

"이번엔 매화차를 맛볼까요?"

아! 매화 꽃차까지? 주려는 마음, 고스란히 받아들이자 곧 행복이었습니다. 상주에서 이토록 호강할 줄이야! 그를 통해 상주에서 벌어졌던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듣는 순간, 연향과 매화향이 사이좋게 어우러졌습니다. 향으로만 치면 이 세상이 곧 무릉도원이자, 극락세계였습니다.

이는 동학군이 그토록 갈망하고 꿈꿨던 미래 세상이었을 겁니다. 이는 세상이 그를 쌍계사로 돌려보내지 않았던 우리네 삶의 '본심'이었습니다. 매화 꽃차 속에 봄이 상큼한 자태로 누워 있었습니다.

지인 너머로 보이는 상주 동학농민혁명 글귀가 김봉기, 그의 정신을 투영하는 듯합니다.
 지인 너머로 보이는 상주 동학농민혁명 글귀가 김봉기, 그의 정신을 투영하는 듯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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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느끼는 봄도 꽤 매력적입니다."

상주 예술촌에 자리 잡은 그의 판화 전시 공간으로 이동했습니다. 여긴 또 딴 세상입니다. 작업실이 자유로운 영혼의 공간이었다면, 이곳은 박제된 세상 속 같달까. 작품을 아름답게 전시해, 최대한 팔아내야 하는 현실적 공간. 그럼에도 불구, 그의 작품은 시공 속을 자유로이 날아다녔습니다.

걷고 또 걷다 보면 길 아닌 길 또 있을까?

  "걷고 또 걷다 보면 길 아닌 길 또 있을까!
                                 길에서 1 - 봉기"

  "길을 가는 자는 길을 묻지 않는다
                                길에서 2 - 봉기"

판화가 김봉기 님의 작품 길을 가는 자는 길을 묻지 않는다...
 판화가 김봉기 님의 작품 길을 가는 자는 길을 묻지 않는다...
ⓒ 김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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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 예술촌 내, 김봉기 그의 작품전시공간에 전시된 작품들 퍽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경북 상주 예술촌 내, 김봉기 그의 작품전시공간에 전시된 작품들 퍽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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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에 새겨진 글 한 줄 한 줄, 아니 글자 하나하나가 가슴에 들어옵니다. 심지어 "판화에 그림을 새긴 후 이에 맞는 글을 선택하기까지 7년의 세월이 필요했다"는 설명이 아니더라도, 단어 하나하나에 충분히 묻어나는 가슴을 알겠더이다.

자기가 걷는 길이 바로 '인생길'임을 아는 게지요.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자신에게 닥쳤던 삶의 고난을 넘으면서 "길을 묻지 않"아도 되는 자신만의 인생길을 터득한 게지요.

그는 앞으로도 폼 나는 예술가일 겁니다. 또한, 그는 여전히 투잡족을 면치 못할 겁니다. 세상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 또한 만만한 세상보다는 만만치 않아야 존재 가치를 느낄 테니까.

그렇지만 한계를 봅니다. 소수가 아무리 움직여봐야 파급효과가 너무 미약합니다. 이는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위해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우리들의 리그로 만들어야 할 이유입니다.

김봉기, 그의 이 작품은 그림에 맞는 글을 찾아내기까지 7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예술이란, 바로 혼임을 알게 합니다.
 김봉기, 그의 이 작품은 그림에 맞는 글을 찾아내기까지 7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예술이란, 바로 혼임을 알게 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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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 작품 과정을 설명하는 김봉기 판화가.
 판화 작품 과정을 설명하는 김봉기 판화가.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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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김봉기, #판화가, #상주예술촌, #연잎차, #매화꽃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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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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