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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우리 동네에는 택호가 '숲실댁'인 아지매가 있었습니다. 아지매는 어디를 가던 늘 걸어 다녔습니다. 그때만 해도 옛날이라 생활반경이 사방 일이십 리 안쪽이었으니 걸어 다니는 게 색다를 것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만 그래도 어지간하면 버스를 타려고 했지 일부러 걷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아지매만은 한결같이 걸어 다녔습니다. 십 리 정도 떨어져 있는 면사무소에 갈 때면 버스 정류소가 있는 큰길을 피해 일부러 샛길로 다녔습니다.

아지매가 그렇게 걸어 다닌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면 소재지에 있는 버스 정류소 집을 보기가 싫어서였습니다. 그 집 주인과 아지매는 철천지원수였습니다. 어렸을 때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아지매의 친정집은 대가 끊어져 버렸다고 합니다. 남자들이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씨가 말라 버렸다고 어른들은 말했습니다. 그때 앞장섰던 사람이 바로 버스 정류소 주인이었던 겁니다.

숲실댁 아지매가 걸어 다닌 까닭

면 소재지의 버스 정류소 주인은 평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이 늘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둘이나 되는 아들들은 폭력 사건으로 감방을 드나들었고 딸들도 행실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 집이 왜 그렇게 사납게 사는지 우리는 통 알 길이 없었습니다. 어른들은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 대에 죄를 많이 지어서 자식 대가 편치를 않은 것이 아닌가 하고들 말했습니다. 문제 자식 뒤에는 문제 부모가 있다는데, 아버지가 제대로 살았다면 자식들이 그렇게 막살지는 않았겠지요.

김대중 정부 때 전망대가 건립되어 '평화전망대'란 이름을 얻었으나 이명박 정부 때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로 이름이 바뀌어졌다.
 김대중 정부 때 전망대가 건립되어 '평화전망대'란 이름을 얻었으나 이명박 정부 때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로 이름이 바뀌어졌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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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1960~70년대 우리 동네의 그 아지매는 철천지원수인 버스 정류소 집을 보지 않으려고 늘 걸어서 다녔던 것입니다. 혹시라도 정류소 앞을 지나가야 할 경우에는 절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꼿꼿하게 고개 들고 걸어갔습니다. 쪽 찐 머리에 앙다문 입술의 결기 어린 아지매의 모습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한국동란 전후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벌써 60년도 더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 부분에서는 쉬쉬하는 분위기입니다.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이였을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고 했지요. 그중에는 죄도 없이 처형을 당한 사람들도 있었을 겁니다. 피해자 가족들은 얼마나 원통하고 절통할까요. 그래도 큰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죽은 듯이 살아왔지요. 그들은 죄인의 가족이었고, 그래서 가슴앓이하면서 숨죽이고 살았을 거예요.

민간인 희생자들의 원통한 죽음

강화도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많은가 봐요. 예전에 책을 한 권 봤는데, 바로 강화도 민간인 학살에 관한 책이었어요. 그 책에 의하면 강화도에서 좌익으로 몰려 죽임을 당한 사람이 몇백 명에 달했습니다. 강화대교 근처에는 그때 숨을 거둔 사람들을 위로하는 위령비가 있는 곳이 있더군요. 언젠가 전등사 근처의 산길을 걷는데 역시 위령비가 있더군요.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을 듯한 외진 곳에 그 비는 있었습니다. 그곳 역시 학살의 현장인 듯했습니다.

우리 친정집의 먼 친척 중에도 그렇게 죽은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친정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돈을 좀 먹였으면 풀려났을 텐데 돈을 안 써서 죽었다고 하더군요. 어지러운 세상이었으니 무엇인들 제대로 된 게 있었을까요. 뒷돈을 좀 먹였다면 풀려날 수도 있었다니, 돈 없고 배경(빽)이 없는 사람만 억울하게 생목숨을 잃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들판 너머 강이 보이고 그 뒤로 산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북녘 땅입니다.
 들판 너머 강이 보이고 그 뒤로 산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북녘 땅입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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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9월 16일)은 날이 참말로 좋았습니다. 여름의 무더위가 물러난 자리에 가을이 성큼 찾아왔습니다. 어느결에 들판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차를 몰고 강화 북쪽 마을인 양사면으로 향했습니다. 강화읍을 지나 송해면으로 들어섰습니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자 오른쪽 저 너머에 강이 보이고 그 뒤로는 들판이 펼쳐집니다. 들판 너머는 산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오늘따라 더 가까이 보이는 그곳은 북녘땅입니다. 그곳도 여기 강화도와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들판에는 곡식들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고 하늘은 맑고 푸릅니다.

강 건너 그곳이 너무도 가까이 보여서 가슴이 마구 울렁거렸습니다.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은 그곳, 그러나 갈 수 없습니다. 전 세계 어디라도 다 갈 수 있지만 단 한 군데, 그곳만은 갈 수 없습니다. 이토록 가까운데 갈 수 없다니, 어찌 이런 일이 다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그런 세월이 장장 70년입니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기다려야 오갈 수 있을지 모릅니다. 왠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너무나 가까워서 더 그랬습니다.

강 건너 북녘땅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이네

평화전망대로 가는 길목에 들어섰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민간인 통제구역입니다. 평화전망대에 간다고 하니 검문을 하는 병사가 선선히 길을 열어줍니다. 아침 햇살을 받아 온 사방이 반짝입니다. 병사의 얼굴에도 햇살이 환하게 비쳤습니다.

저만치 언덕 위에 큰 건물이 하나 올라서 있습니다. 강화군 양사면에 있는 평화전망대입니다. 전망대 앞바다는 한강과 임진강 그리고 예성강이 만나서 서해로 흘러가는 기수역([汽水域)입니다. 그곳에서 민물과 바닷물은 한 몸이 되어 서해로 흘러듭니다. 그러나 물 한가운데에는 보이지 않는 금이 그어져 있습니다. 물 울타리가 높게 둘러쳐져 있습니다.

북한의 들판에도 곡식들이 익어가고 있네요.
 북한의 들판에도 곡식들이 익어가고 있네요.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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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중간에 모래톱이 드러났습니다.
 강 중간에 모래톱이 드러났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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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물에도 금을 그을 수 있을까요? 새들과 물고기들은 그 금을 가볍게 넘나듭니다.(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 땅 모습)
 하늘과 물에도 금을 그을 수 있을까요? 새들과 물고기들은 그 금을 가볍게 넘나듭니다.(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 땅 모습)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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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전망대가 있는 제적봉은 원래 이름 없는 봉우리였으나 1970년대에 당시 국무총리였던 김종필 씨의 방문으로 제적봉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김대중 정부 때 전망대가 건립되어 평화전망대란 이름을 얻었지만, 이명박 정부 때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라고 이름이 바뀌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제적봉 평화전망대'라는 이름에는 붉은 것, 곧 빨갱이를 제압한다는 뜻의 '제적(制赤)'과 '평화'가 함께 있습니다. 적을 제압해야 평화가 온다는 말일까요?

'제적'과 '평화'라는 두 단어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간극만큼이나 이쪽과 저쪽 사이의 거리는 멉니다. 물리적으로는 2킬로 내외밖에 되지 않지만, 심리적으로는 지구상에서 가장 먼 곳입니다.

평화전망대에서 올리는 간절한 기도

전망대 앞바다 한가운데에는 썰물이 들어 모래톱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바다 한가운데에 모랫길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남이니 북이니 편을 갈라 경계를 지었지만, 바다며 하늘에 금을 그을 수가 있던가요? 바다에는 물고기들이 이편 저편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헤엄치며 돌아다닐 것이고, 새들도 아무 거리낌 없이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사람들만 보이지 않는 금을 앞에 두고 이곳에 서서 저곳을 바라볼 뿐입니다.

평화전망대에는 망배단(望拜壇)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정성 어린 제물들을 망배단에 차려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절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라는 펼침막을 앞에 펼쳐놓고 절을 합니다. '7천만 온 겨레는 한마음으로 평화와 통일을 바라고 원한다'는 플래카드도 보입니다.

2014년 2월부터 시작한 평화통일 기원 삼백 배 정진.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합니다.
 2014년 2월부터 시작한 평화통일 기원 삼백 배 정진.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합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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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을 정성스레 모으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 이런 기운이 모여서 통일을 앞당기겠지요.
 두 손을 정성스레 모으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 이런 기운이 모여서 통일을 앞당기겠지요.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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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셋째 주 토요일에 평화통일 기원 기도가 평화전망대에서 있습니다. 2014년 2월부터 시작했다니 햇수로 벌써 4년이나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며 300배 절을 합니다.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몰아쳐도 멈추지 않았고 8월의 염천 땡볕 아래에서도 쉬지 않았습니다. 영하 십여 도를 오르내리던 한겨울에는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찻잔에 뜨거운 물을 부어놓고 정진을 한 뒤 나중에 보니 살얼음이 끼어 있더랍니다. 얼마나 날이 차가웠으면 뜨거운 찻물이 다 얼었을까요.

삼백 배 정진을 하는 그분들 중 한 분은 강화도 화도면 사람입니다. 그곳에서 평화전망대가 있는 양사면까지 오자면 근 한 시간이 걸립니다. 강화가 섬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지라 남쪽 화도면에서 북쪽 양사면까지 오자면 제법 시간이 걸립니다.

아픔도 녹인 통일 정진 기도

그분은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심백 배 정진을 할 때면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시할아버지와 시외할아버지가 떠오른다고 합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그분들의 원한과 참담함이 다가온다고 했습니다. 또 미래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안에 허덕이며 초조해하는 시어머니의 마음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댁에는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시할아버지는 반공청년단에 끌려가신 뒤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시외할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열네 살이었던 시어머니는 졸지에 소녀 가장이 되어 정신 줄을 놓다시피 한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시어머니는 두려움도 많고 늘 불안해한다고 합니다. 그런 시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고부간에 갈등도 많았는데, 통일 기도를 올리면서 어느 날 시어머니의 아픔이 보였고 꾹꾹 누르고 참아왔던 시댁의 슬픔이 보였다고 합니다.

뜨거운 찻물이 살얼음이 되도록 추운 날씨였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추위도 물리쳤던 통일 기원 기도.
 뜨거운 찻물이 살얼음이 되도록 추운 날씨였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추위도 물리쳤던 통일 기원 기도.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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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천만 온 겨레는 평화와 통일을 염원합니다.
 7천만 온 겨레는 평화와 통일을 염원합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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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입으로는 평화니 통일이니 말을 하지만 사실 가슴으로 온전히 느끼지는 못합니다. 또 설혹 작은 힘을 보탠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하는 게 과연 통일에 도움이 될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평화와 통일은 너무나도 대단한 주제라서 일개 개인에 불과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도 있잖아요. 또 거대한 댐도 작은 구멍으로 무너진다는 말도 있고요.

이처럼 우리의 작은 정성들이 모여서 우리 민족을 옥죄고 있는 분단의 사슬을 끊을 수 있다면 삼백 배, 아니 삼천 배인들 못 하겠습니까. 비록 한 달에 한 번 올리는 통일 정진이지만 통일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면 한겨울의 추위며 삼복의 더위쯤이야 가볍게 넘길 수 있을 것입니다.

절을 마친 사람들이 둥글게 손을 맞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부릅니다. 노랫말에 담긴 뜻을 가만히 되뇌며 따라서 함께 부르노라니 가슴 속에서 불끈 힘이 솟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평화와 통일이 오리라는 믿음도 생깁니다. 그런 우리 모습을 일찍 핀 코스모스들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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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평화전망대, #제적봉평화전망대, #강화도, #정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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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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