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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검 서부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는 여성단체들.
 대구지검 서부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는 여성단체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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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대구의 한 교육트레이닝 학원에서 원장과 중3 여학생 사이에 성관계가 있었던 사건에 대해 경찰과 검찰은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어머니는 너무나도 억울하다며 1인 시위에 나섰고 여성단체들이 항고에 나섰다.

중학생인 A학생은 지난해 10월 9일 자신이 다니던 '공부습관 트레이닝센터'의 원장으로부터 "책임지고 좋은 대학에 보내주겠다"거나 "좋은 대학 못 가면 인생 실패다" 등의 발언을 들으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A학생은 다음날 곧바로 학교 보건실에 성폭력을 당했다고 알린 후, 대구해바라기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학원장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법 위반(강간)' 혐의로 수사했다. 그러나 강제성을 입증할 수 없다며 같은해 12월 '혐의 없음'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이어 검찰도 올해 3월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당시 검찰과 경찰은 두 사람이 성관계를 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피의자가 폭행·협박 또는 위계·위력을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강제성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또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았다는 점도 들었다.

사건이 다시 불거진 건 피해자인 A학생의 어머니가 지난달 9일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대실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면서부터였다.

A학생의 어머니 B씨는 "경찰은 증거불충분이라면서 아무런 처벌을 하지 못했고 원장은 사과 한마디 없었다"면서 "딸아이가 '엄마는 무능하다'며 원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원에서) 며칠 전 학원 내 학부모 세미나가 있으니 저에게 오라는 문자가 왔다. 저에겐 너무 가혹하다"며 "중3 학원생과 학원 원장의 성관계, 성폭행인가요? 합의하에 성관계인가요?"라고 반문했다.

어머니 B씨가 지난 8월 9일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대실역 앞에서 자신의 딸이 학원장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어머니 B씨가 지난 8월 9일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대실역 앞에서 자신의 딸이 학원장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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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B씨가 1인 시위를 벌이자 해당 학원의 원장은 이에 맞서 자신도 억울하다며 1인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해당 원장은 또 B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명예훼손과 영업방해 행위로 민형사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전국의 여성단체와 장애인단체, 성폭력상담단체들이 나서 검찰에 항고장을 제출했다. 대구여성의전화와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등 181개 단체는 18일 오전 대구지검 서부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성폭력의 특수성과 맥락을 고려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시민단체들은 "40대 남성 학원장에 의한 여중생 성폭력사건은 성폭력사건의 특수성과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며 "피해학생은 한 번도 'YES'라고 하지 않았다. 상대가 동의하지 않은 모든 성적 접촉은 성폭력"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피해학생은 사건발생 후 진행된 해바라기 진술조사와 지난 8월 진행된 상담에서도 일관되게 '하지 말라'고 말해 거부의사를 밝혔다"면서 "중학생이 40대 남성 앞에서 '하지 말라'는 말 외에 그 어떤 다른 저항이나 반항을 할 수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이들은 또 "(여중생에게 일어난 일은) 학생과 선생이라는 위력관계, 성별·나이라는 위력관계, 더 나아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성폭력"이라며 "단순히 눈에 보이는 신체적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다는 이유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존재하는 폭력적 상황을 없애지는 못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특히 청소년의 정서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당시 피해학생은 겨우 14년 3개월을 막 지난 나이였다"며 "정서적으로도 불안한 시기를 지나는 나이로 어른의 언어와 시선이 아닌 더 철저히 청소년의 언어와 시선을 가지고 수사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단체들은 여중생이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았다며 재수사를 촉구했다.
 여성단체들은 여중생이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았다며 재수사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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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숙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서로 합의했다고 하는데 합의는 서로 힘이 동등할 때 가능하다. 힘의 불균형이 있을 때는 명시적인 합의가 없으면 동의가 있을 수 없다"며 "하물며 피해학생은 '하지 말라'고 명시적인 거절의사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신박진영 대구여성인권센터 대표는 "10대 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선생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는 자가 단지 거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욕구를 위해 성적 대상으로 착취했음에도 경찰과 검찰은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면서 "항고를 받아들이고 철저한 수사와 강력한 처벌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항고장을 제출하고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과 맥락을 고려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또 동의되지 않은 모든 성적 접촉은 성폭력이라며 청소년의 정서적 특성을 고려한 수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검찰청법 제10조에 따르면 고소·고발인은 불기소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해당 검사가 속한 지방검찰청 또는 지청을 통해 서면으로 관할 고등검찰청에 항고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지난 3월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지만 피해자가 지난 8월 20일 뒤늦게 통지를 받아 항고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태그:#녀중생 성폭행, #대구 대실역, #여성단체, #불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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