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야구계에서 불문율 논란은 존재했다. 매 시즌마다 한 번 정도는 '불문율'이라는 키워드가 언급될 정도로 불문율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팬들 사이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펼쳐졌다.

막바지를 향해 가고있는 올해 KBO리그에서도 불문율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17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두산과 삼성의 정규시즌 16차전에서 니퍼트와 박해민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상황이 벌어진 때는 3회 말 무사 1루, 김성훈의 타석이었다. 14-1로 두산이 크게 앞서고 있었고, 2구째에 1루 주자였던 박해민이 도루를 시도했다. 투수 니퍼트와 포수 양의지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고 두산 내야진도 도루를 대비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표정이 좋지 않았던 니퍼트는 2루에 도착한 박해민과 마주쳤고, 손가락으로 3루를 가리키면서 불만을 그대로 표출했다. 경기가 재개된 이후에도 불만에 가득 찬 니퍼트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다행히 공수교대 때 박해민이 니퍼트에게 사과했고, 니퍼트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잘 마무리됐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이후에도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1) 니퍼트의 행동, 마운드 위에서 분노를 표출해야만 했을까

니퍼트의 최근 흐름이 좋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대량 실점 경기도 부쩍 많아졌고, 더그아웃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이 중계화면을 통해 전파를 탄 적도 있다. 이 날 경기에서도 니퍼트는 경기 초반 든든한 득점 지원 속에서도 만족스러운 피칭을 보여주지 못했다. 속앓이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보기 드문 니퍼트의 분노 표출은 다소 아쉽다. 특히 박해민에게 삿대질을 하는 듯한 제스처를 본 야구팬들은 '정말 우리가 아는 니퍼트가 맞나'라고 입을 모으면서 니퍼트의 행동에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냉정하게 말해서 본인이 원하는대로 경기를 풀어가지 못한다고 해서 주자의 도루에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게다가 팀이 뒤지고 있던 것도 아니고 큰 점수 차로 리드하는 상황이었다. 리드를 당하는 팀에서 상대팀이 도루를 했을 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은 종종 나올 수 있어도 리드를 하고 있는 팀에서 상대팀의 도루에 불만을 갖는 것은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이 날 니퍼트는 5이닝을 소화하면서 6피안타(2피홈런) 3실점을 기록하면서 시즌 14승째를 거뒀다. 2011년부터 올해까지 7년간 94승을 기록하면서 이제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장수 외국인 선수가 된 니퍼트이지만, 이 날만큼은 팬들의 쓴소리를 피해가기 어려웠다.

(2) 여전히 풀리지 않은 불문율 논란, 개인이 아닌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

이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은 '불문율'이라는 키워드에서 시작된다. 공식적인 규칙은 아니지만 암묵적으로 모든 구성원이 지키기로 한 약속이라는 의미로, 여러 종목 가운데 불문율이 뚜렷한 종목이 바로 야구이다. 경기 후반에 크게 앞서고 있는 팀에서 도루를 감행하는 것이 야구에서 불문율을 어기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이외에도 몇 가지의 불문율이 야구에 존재한다.

양 팀은 이번 논란을 두고 비슷한 입장을 내놓았다. 두산 한용덕 수석코치는 "삼성 쪽에서 먼저 수비를 뒤로 빼서 우리도 수비를 빼는 게 맞았다. 도루를 시도한다고 해서 상황이 접전으로 흘러가서 이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러면 삼성도 방망이로 쳐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한 수석코치는 "일종의 불문율이라고 보시면 된다"라고 말했다. 니퍼트의 분노 표출이 '불문율'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언급한 셈이다.

한용덕 수석코치의 이야기처럼, 삼성이 먼저 수비를 뒤로 뺐다. 13점 차로 앞서던 3회 초 두산의 공격에서 삼성 내야진은 2사 이후 출루한 1루 주자 에반스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수비를 이어갔다. 이를 본 두산이 3회 말 수비에서 박해민의 출루 이후 야수진이 1루 주자 박해민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한 수석코치는 이를 '불문율'이라고 본 것이다.

조금 의아한 것은 삼성 측의 입장이다. 이 날 경기가 끝나고 김한수 감독은 "경기 이후 김태형 감독과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상황이 좋게 마무리됐다. 수비가 뒤로 빠졌을 때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게 있는데...거기까지만 말씀드리겠다.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승엽 역시 "수비가 뒤로 빠진 상황이었는데, 조금 어려운 문제이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조심스럽게 언급하면서도 미안함을 전했다. 이승엽은 경기 도중 더그아웃에서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하기도 했다.

정리해보면 김한수 감독도, 이승엽도 '니퍼트의 분노 표출'을 이해한다는 것이었다. 두산 측이 주장하는 불문율에 대해서 반박을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사과의 뜻을 전하기만 했다. 삼성 측에서 직접적으로 의견을 밝히지 않고 불문율 논란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내놓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니퍼트의 책임이 크다는 팬들의 의견과 달랐다.

니퍼트의 행동 못지않게 양 팀의 반응도 팬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두산의 주장이나 삼성이 전한 사과의 뜻은 두 팀 모두 어느 정도 불문율을 인정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두 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답이 명확하게 떨어지지 않은 만큼 다양한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13점 차에서 뒤진 상황에서 베이스를 훔친 박해민이 사과한 이유에 있어선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당당하게 도루에 성공한 박해민이 왜 수비에 나갈 땐 미안하다고 말해야만 했을까.

그렇게 올시즌 두 팀의 맞대결은 어제 경기로 막을 내렸다.

(3) 타고투저의 시대와 불문율 논란

올시즌 타격 관련 기록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8점 차 역전승은 물론이고 지난 7월 5일 KIA-SK전에서는 11점 차로 뒤지던 KIA가 한 이닝에만 12득점을 뽑아내며 승부를 뒤집기도 했다. 재역전에 성공한 SK의 승리 속에서도 KIA의 집중력은 빛났고, 타고투저 현상은 절정에 이르렀다.

하위권에 처진 삼성이라고 하더라도 좋은 타자들의 능력과 박해민의 도루가 나온 시점이 경기 초반인 점을 감안하면 불문율을 어긴 것이라고 보는 것은 모호하다. 도루로 기록되든 무관심 도루로 기록되든 박해민 입장에서는 한 베이스라도 더 훔쳐서 다운된 분위기를 살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두 팀은 오해를 풀고 올시즌 마지막 맞대결을 잘 끝냈다. 가장 아쉬운 것은 두 팀의 마지막 만남의 뒷맛이 개운치 않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타고투저 시대'에서, 불문율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 두 명이 아닌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언젠가 다시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 땐 또 어떤 이야기들이 오갈까. 불문율이라는 키워드가 언급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프로야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양식보다는 정갈한 한정식 같은 글을 담아내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