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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준 두레양조 대표가 브랜디를 테스팅하고 있다.
 권혁준 두레양조 대표가 브랜디를 테스팅하고 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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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와인기행, 이번에는 천안이다. 천안은 우리나라에서 거봉포도 주산지로 손꼽히는 지역으로 입장면과 성거면 일대에서 1200여 가구가 거봉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거봉포도는 알이 굵고 단맛이 강한 특징을 갖고 있다. 거봉은 일본에서 1942년에 개발한 포도품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968년부터 입장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거봉포도로 만든 거봉와인이 처음 출시된 것은 2004년. 농업회사법인 주식회사 두레양조(이하 두레양조)에서 천안지역에서 생산되는 거봉포도를 원료로 만들었다. 두레양조에서는 거봉와인을 증류한 증류주와 브랜디도 생산한다.

9월 6일, 최정욱 광명동굴 소믈리에와 함께 천안시 입장면에 자리 잡고 있는 두레양조를 찾았다. 두레양조는 2천여 평의 부지에 와인 생산설비와 지하저장고, 창고 등을 갖추고 있다. 또한 와인시음과 판매, 술 전시장을 겸하는 다목적 공간인 '천안 WINE 성'이 있다. 두레양조의 와인을 시음하거나 사고 싶다면 '천안 WINE 성' 1층에 있는 카페로 가면 된다.

권혁준 두레양조 대표가 거봉포도를 살펴보고 있다.
 권혁준 두레양조 대표가 거봉포도를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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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봉포도밭.
 거봉포도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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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권혁준 두레양조 대표와 만났다. 그의 안내로 가장 먼저 들른 곳은 포도밭. 달콤하면서도 은은한 포도향이 감도는 포도밭에서 탐스럽게 익은 보랏빛 거봉포도들이 종이에 잘 포장된 채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9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포도 수확이 시작된다. 포도 수확과 함께 두레양조의 포도 수매도 시작된다.

권 대표는 올해 200톤의 포도를 수매, 와인을 제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포도 200톤이면 와인은 140톤 정도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병으로 환산하면 1만4천 병 정도?

포도밭을 둘러본 뒤 '천안 WINE 성' 1층 카페에서 권혁준 대표와 마주앉았다. 두레양조에서 생산하는 와인과 브랜디의 상표는 두레앙이다. 무슨 뜻일까?

"둘러앉아서 먹는 술이라는 의미인데, 우리나라 고유의 '두레'라는 말에 천안의 편안한 안(安)을 붙여서 프랑스식으로 발음한 겁니다. 두레 공동체 안에서 다 같이 편안하게 살자, 이런 뜻이죠."

두레양조 '천안 WINE 성' 1층 와인시음 및 판매전시장
 두레양조 '천안 WINE 성' 1층 와인시음 및 판매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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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준 대표의 설명이다. 회사명과 상표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두레양조는 개인이 만든 회사가 아니다. 천안지역에서 거봉포도 농사를 짓는 농민 30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했다. 와인과 증류주 생산 목표를 세워 2000년에 법인을 설립하고 주류제조 면허를 받았다.

두레양조는 2001년에 제조공장 건립 공사를 시작했고, 2003년에 완공해 그해부터 거봉포도를 수매, 와인을 제조했다. 이듬해인 2004년에 첫 와인을 출시했다. 이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획하고 추진한 사람이 바로 권혁준 대표다. 그의 뚝심과 확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두레양조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와인기행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건 와인시음.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와인들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와인을 시음하니 와인 품평 역시 빠질 수 없다. 와인생산자에게 직접 와인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시는 와인 맛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와인에 숨은 이야기를 속속들이 전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그런데 두레양조에서 일본 야마나시 현에서 생산된 와인을 시음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권혁준 대표가 2016년에 일본 야마나시 현을 방문했을 때 가져온 와인 '후지노 유메(富士の夢)였다. 이 와인을 만든 포도는 산머루와 메를로를 교배한 품종이라고 한다.

야마나시 현에서 생산된 일본와인 '후지노유메'. 이 와인을 만든 포도는 산머루와 메를로를 교배한 품종으로 폴리페놀이 많이 함유되었다고 한다.
 야마나시 현에서 생산된 일본와인 '후지노유메'. 이 와인을 만든 포도는 산머루와 메를로를 교배한 품종으로 폴리페놀이 많이 함유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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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나시 현은 권 대표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1996년에 야마나시 현을 포함한 일본 전국의 포도밭과 와이너리를 방문했고, 20년 만인 2016년에 다시 야마나시 현을 찾아 변화된 일본와인산업의 모습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권 대표는 20년 만에 다시 간 야마나시 현에서 와인생산 농가들이 늘고, 생산되는 와인 종류 역시 엄청나게 늘어난 것을 보고 한국와인 역시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

일본 와인이 가격대가 비싸도 일본에서 팔리는 것을 보고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후지노유메를 시음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게 권 대표의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권 대표는 왜 1996년에 일본에 갔을까?

천안의 단국대 농과대학을 졸업한 권 대표는 농촌지도소에서 7년여를 근무하다 퇴직한다. 농업분야에서 특별히 기여할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 꿈을 구체적으로 이룰 때가 왔다고 판단, 그는 과감하게 안정된 일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 위해. 그 때 그가 주목한 것이 포도 가공사업이었다.

"정부는 1997년 1월 1일부터 포도가공식품 완전 개방 선언을 합니다. 그 이전까지 정부는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음료수를 생산하는 국내 대기업에게 농민들에게 수매하는 과실 양에 따라 가공식품 생산량을 할당해줬어요. 즉 국내 과실 수매량에 따라 외국 과실을 수입할 수 있게 한 건데, 1997년 1월 1일부터 그 규정이 없어지게 된 거죠. 그렇게 되면 대기업은 수입 과실보다 비싼 국내산 과실을 수매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두레양조 와인생산설비.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외부에 있다.
 두레양조 와인생산설비.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외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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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은 비싼 국내산 포도를 살 이유가 없다. 싼 외국산 과일을 얼마든지 수입할 수 있으니까. 이 규정은 1997년 1월 1일부터 적용이 되었지만, 그 피해는 1996년부터 시작됐다는 게 권 대표의 주장이다. 1996년부터 대기업은 국내산 포도를 수매하지 않았다. 당연한 수순으로 포도 값 폭락이 이어졌다.

"당시 (거봉)포도는 1킬로그램 당 600원 선에서 수매되었는데, 4킬로그램 한 상자에 500원으로 폭락한 거죠. 가격 폭락은 예상했지만, 그래도 충격이 컸죠."

가격이 폭락한다고 포도농사를 당장 그만둘 수 없다는 게 농민들의 현실이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생과로 파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포도를 대량 소비할 방법이 필요했다. 권혁준 대표는 그 답을 포도 가공산업에서 찾아야한다고 생각했단다.

거봉포도를 대량 소비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거봉와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론은 나왔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와인생산을 시작할 수는 없지 않나. 벤치마킹이라는 게 있는데. 권 대표는 1996년에 거봉와인 생산을 염두에 두고 일본을 방문한다.

"96년 봄에 농민 두 분을 모시고 일본에 갔습니다. 홋카이도부터 규슈까지 일본의 전 지역을 다 돌아다녔죠. 일본의 와인생산 농가와 포도밭을 전부 돌아본 거죠. 그 때만 해도 대한민국에는 와인양조와 관련된 책자가 없었어요. 야마나시 현에 갔더니 포도주 양조법 책자가 있더라고. 저걸 가져가야 하는데 안 주는 거야. 어떻게 하면 저걸 가져갈 수 있을까 궁리를 했어요."

권혁준 대표
 권혁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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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권 대표는 아는 사람을 통해서 어렵게 포도주 양조법 책자 복사본을 손을 넣었다. 귀국한 권 대표는 일본어로 된 이 복사본 번역을 일본어를 잘 아는 지인에게 부탁했다. 번역을 하는데 3개월이나 걸렸지만, 그 사이에 그는 그 책을 달달 외울 정도가 되었다. 그의 말을 빌자면 '포도주 양조 도사'가 됐다고 한다. 물론 책으로만.

"그 때 일본에서 처음 포도는 10차 산업이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포도가 가장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것도 배웠죠."

우리나라는 농업과 관련, 6차 산업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앞으로 우리 농촌이 나아갈 방향이 6차 산업이라며 적극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 1990년대 말에 10차 산업이라니, 앞서 가도 너무 많이 나간 것 아닌가? 권 대표는 아니란다.

"생산이 1차 산업이죠. 가공이 2차 산업이고, 3차는 유통, 서비스 산업을 말합니다. 4차 산업은 지식산업이죠. 4차 산업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활용해서 돈을 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 중국에 (와인)컨설팅을 해주는 겁니다. 포도밭을 만들어주고, 양조장 만들어주면서 양조 시설 팔고 컨설팅을 해주는 거죠. 이게 4차 산업입니다. 1차, 2차, 3차, 4차를 전부 더하면 10차가 나오죠? 이게 10차 산업인 건데, 포도가 그렇다는 거였어요."

일본을 두루 섭렵한 뒤에 이번에는 유럽으로 눈길을 돌렸다. 유럽 여러 나라를 둘러보고, 미국까지 돌아본 뒤 그는 본격적으로 포도 가공사업 준비를 한다. 투자설명회를 열어 농민 30명을 조합원으로 유치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두레양조 설립을 추진했다. 조합원들이 생산한 포도를 수매, 와인을 만들어 농가의 수입을 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두레양조가 성공하면 생과로 팔리지 않고 남아도는 포도를 지속적으로 수매해서 와인 생산량을 늘리면 된다. 첫 해인 2003년에 와인 20톤을 만들었다. 병으로 환산하면 2만 병이다. 생산 품목은 거봉 스위트와인과 증류주. 첫 출시된 거봉와인 맛은 나쁘지 않았다. 그 해에 생산된 빈티지가 지금도 두레양조 지하저장고에 스무 병 남짓 남아 있다.

두레앙 거봉와인과 증류주
 두레앙 거봉와인과 증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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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욱 소믈리에의 와인 팁

두레앙 와인 : 거봉포도는 생과로 먹기 좋지만 껍질이 얇고 수분(과즙)이 많아 진한 와인을 만들기 어렵다는 편견이 있습니다. 거봉으로 화이트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들도 일부 있으나, 레드(로제)와인을 만드는 곳은 두레양조가 유일합니다.

거봉와인은 한국인에게 친숙한 거봉포도의 향이 은은하게 퍼져 나와 코를 자극하며, 적절한 산도, 가벼운 바디감을 지니고 있어 식욕을 돋워 줍니다. 연어 등의 생선요리, 맵지 않은 볶음요리, 양념이 강하지 않은 닭갈비, 순대볶음 등의 요리와 잘 어울립니다. 또한 떡이나 초콜릿 등의 가벼운 음식과 함께 먹어도 좋습니다. 

두레앙 브랜디 : 거봉와인을 증류해 오크통에서 5년~7년 이상 숙성한 두레앙 브랜디는 오크향과 묵직한 바디감이 일품입니다. 스트레이트로 마시면 알코올의 굳건한 바디감과 오크에서 우러난 은은한 바닐라와 카라멜 향이 조화를 이룬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온더 록으로 마시면 천천히 변화하며 피어나는 브랜디의 향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음식은 숯불에 구운 갈비나 양념을 한 돼지고기와 아주 잘 맞습니다.


태그:#한국와인, #최정욱, #두레양조, #권혁준, #거봉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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