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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증을 놓고 '그뤠잇'과 '스튜핏'을 연발하며 데뷔 25년 만에 '대세'로 떠오른 김생민씨, 팟캐스트와 방송에서 그가 말한 '절약 비법'들이 대중에게 큰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를 외치며 '절약' 대신 여행과 취미생활을 위해 아낌없이 쓰는 이들도 있습니다. '김생민족'과 '욜로족'으로 사는 시민기자들이 번갈아 기고하는 <김생민족 vs. 욜로족> 기획을 전합니다. 당신은 어디쯤 서 계신가요? [편집자말]
'현재의 행복 vs. 미래의 행복'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저축과 노동의 유령이 다시 브라운관을 떠돌고 있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 세대가 끊임없이 주입시킨 근면성실한 삶은 저성장시대를 맞아 불확실한 꿈으로 여겨졌는데 말이다. 그 현상이 2017년 상반기를 강타한 '욜로(YOLO)' 열풍이었다.

욜로는 '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뜻하는 'You Only Live Once'의 앞글자를 딴 용어다. 베이비부머세대의 치열한 삶의 목표가 안정적인 삶, 타인에게 금전적으로 인정받는 삶이었다면, 욜로는 그 반발에서 비롯되었다. 과거와 달리 현재의 노력이 확실한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사회에서, 차라리 100% 확실한 현재의 행복을 우선순위로 두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행복한 삶'이라는 단어 자체가 막연하다보니 그만큼 다양한 답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욜로는 '인생의 일회성'을 고찰해보는 것이 아니라 주로 '소비'에 방점이 찍혀 유통되었다. TV를 켜면 여행, 음식 등 '현재의 행복'을 위한 소비를 권장하는 예능이 넘쳐날 정도다. 그러자 이번엔 그 반발로 '미래의 행복'에 방점을 둔 김생민의 라이프코치가 등장했다.

특유의 입담과 재치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일상인 많은 시청자들의 우울함을 달래주고 있다.
▲ 김생민의 영수증 특유의 입담과 재치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일상인 많은 시청자들의 우울함을 달래주고 있다.
ⓒ KBS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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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안 쓰는 것이다."
"지금 저축하지 않으면 나중에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
"욜로 하다가 골로 간다."

김생민은 요즘 자타공인 방송가에서 가장 핫한 스타다. 그는 <김생민의 영수증>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다양한 절약방법을 전달하고 있다. 방송에서 그는 시청자들의 영수증을 분석해 재무상담과 근검절약을 위한 팁까지 내놓는다. 그리고 불필요한 지출에는 '스튜핏(Stupid)!'을, 현명한 지출에는 '그뤠잇(Great)!'을 외친다.

김생민의 화법은 항상 겸손하고 조심스럽다. 어쩌면 그가 그동안 뜨지 못한 것에는 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의 시대가 왔다. 시청자들은 큰 웃음과 불편함을 동시에 주는 독설보다 그의 조심스러운 '스튜핏'에 공감한다. 우리 '을(乙)'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사람이 조심스럽게 행동할 때는 소중한 것을 잃을까봐 두려울 때다. 그래서 그의 때늦은 전성기가 더욱 짠하고 반갑다.

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습을 보며 함께 울컥했다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 그가 20년 만에 '연예가중계' 인터뷰의 주인공이 돼 눈물을 흘리는 모습 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습을 보며 함께 울컥했다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 '연예가중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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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생민의 '스튜핏'과 '그뤠잇'에 깔깔거리며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좋아하는 커피도 남이 사줄 때만 마시고 (사준다는 사람이 없으면 못 마시는 거 아닌가), 내 하루의 위안인 음악도 1분 미리듣기만 들으면 (1분이면 전주 들으면 끝난다), 대체 난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하나 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갓생민"을 외치며 "생민한 하루(근검절약을 실천하는 날)"를 보내고 인증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결국, 원점이다. '현재의 행복이냐', '미래의 행복이냐'를 사이에 두고 우리 마음속엔 다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저성장의 시대, 우리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네, 저는 스튜핏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나는 '스튜핏'이다. 나는 2014년 일을 그만두고 긴 여행을 떠났고, 지금은 프리랜서의 삶을 살고 있다.

떠남의 이유는 '원 안'에 들어서고 싶지 않아서 였다. 나를 둘러싼 세상에 원 안과 원 밖이 있다면 원 안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더 큰 아파트를 위해 적금을 넣거나 대출금을 갚는 삶이었고, 나는 이미 원 바깥에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집단에서 요구되는 삶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부모님의 아들.딸이고, 누군가의 직장동료이고 친구다. 다양한 집단과 마주하며 끊임없이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당한다. 그리고 집단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그 차이를 이유로 공격당하거나 무시당하게 된다. 그렇게 집단이 요구하는 삶은 내가 지닌 주체적인 삶의 욕구와 늘 충돌하며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 안에 들어서야 하는가?'라는 갈등이 생겼을 때, 나는 내려놓고 여행을 떠났다. 남의 시선 때문에 원치 않는 삶을 사느니, 차라리 원 바깥에 머물겠다는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녀 남은 흔적을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길이 없다고 낙담할 일이 아니라는 걸 배웠다.
▲ 삶에서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초원으로 떠났다. 초원에는 어차피 길이 없었다.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녀 남은 흔적을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길이 없다고 낙담할 일이 아니라는 걸 배웠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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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동안 나는 누구의 자녀도, 선배도, 후배도, 직장동료도, 친구도 아니었다. 그렇게 나를 규정짓는 온갖 정체성에서 벗어나자, 남의 시선에 얽매이는 삶이 아닌 내가 살고 싶은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떠나보니 절대적인 것은 없었다. 여기서는 보석이라고 믿고 살았는데, 장소를 바꿔보니 그냥 돌덩이였던 경우도 있고, 반대로 평범한 돌덩이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시금석이 되어 내 삶의 방향을 잡아주기도 했다. 길을 떠나 만난 삶의 방법도 다 달랐다. 이곳에서 '반드시'라고 말해지는 삶의 형태는 그저 무수히 많은 삶의 형태 중 하나였다.

그렇게 남의 시선에 시름시름 앓고, 가슴 졸이며 에너지를 낭비한 인생에서 '남'을 거둬내자 훨씬 살기 편해졌다.

물론 수익이 불안정한 프리랜서가 되었기에 지갑은 가난해졌다. 벌써 귓가에 김생민의 '스튜핏'이라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래도 괜찮다. 그의 시선에서는 '스튜핏'이겠지만, 내 선택은 지금도 내게 "그뤠잇"이다. 당시 내 절실함의 우선순위는 '금전적 안정'보다 '나 자신의 성장'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지갑을 열 때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덕분에 꼭 필요한 것인지 한번 더 생각해보고 사게 되었다.
▲ '스튜핏'을 외치는 김생민 요즘은 지갑을 열 때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덕분에 꼭 필요한 것인지 한번 더 생각해보고 사게 되었다.
ⓒ '김생민의 영수증'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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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슴에 절실함을 품고, "욜로(YOLO)"

누구에게나 절실함의 우선순위가 있다. 누구의 선택이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결핍된 것, 가장 필요한 것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김생민 역시 "절실하다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시청자에게 미래를 위해 목표를 지니고 성실하게 살아갈 것을 조언한다.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들자는 거다. 같은 목표를 지닌 사람들에게 김생민의 조언은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냥 티끌 자체로 행복해지고자 하는 사람이 있고, 티끌을 모으는 그 과정 자체가 좋은 사람도 있다. 나른한 오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좋아하는 음악을 구매해 들으며 즐겁게 일하는 게 좋은 사람이 있고, 그보다 차근차근 절약을 위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해 나가는 과정에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후회없이 살자'는 욜로의 원래 의미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사실 이 모든 경우가 욜로가 될 것이다.

반고양이는 오른쪽과 왼쪽 눈 색깔이 다른 오드아이지만, 그 다름으로 더욱 사랑받는다.
▲ 터키의 반고양이 반고양이는 오른쪽과 왼쪽 눈 색깔이 다른 오드아이지만, 그 다름으로 더욱 사랑받는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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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면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의 행복이냐', '미래의 행복이냐'라는 해묵은 논쟁이 아닐 수도 있다. 가장 필요한 것은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내게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기 성찰'이다. 그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타인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는 담대함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타인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성숙한 모습일 것이다.

김생민의 말대로 "절실함 이즈 베뤼 임폴턴트" 다. 우리는 모두 각자가 지닌 결핍을 채우고 행복해지기 위한 삶을 살고 있다. 단지 우리가 지닌 절실함은 모두 다르기에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도 각자 다를 것이다. 각자의 인생에는 각자의 욜로가 있다. 김생민의 욜로, 우리 모두의 욜로를 응원한다.

각자의 인생에는 각자의 절실함이, 각자의 욜로가 있다.
▲ 우리는 모두 다르다. 각자의 인생에는 각자의 절실함이, 각자의 욜로가 있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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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욜로, #김생민, #스튜핏, #YOLO, #절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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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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