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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주의'는 한두 개의 특정한 단어나 짧은 문장으로 규정하기 쉽지 않은 개념이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19세기를 전후로 전세계적인 착취와 억압을 일삼았던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사상과 문화를 총칭해 탈식민주의라는 범주로 분류한다. 문제는 제국주의의 영향력이 매우 광범위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같은 탈식민주의의 틀 안에서도 매우 다양한 차별점들이 존재한다. 이런 차이들은 각각의 피지배 집단이 처했던 상황이 달랐기 때문에 나타난다. 가령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 제국주의에 침탈 당하기 전부터 '조선'이라는 독자적인 국가를 운영하고 있었다. 반면 이 글에서 이야기할 아프리카의 경우 서구 제국주의가 영향력을 행사하기 전까지 여전히 부족 공동체의 형태로 유지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치누아 아체베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치누아 아체베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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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대적, 지역적, 또는 문화적 차이 등이 합쳐져 다양한 형태의 탈식민주의 사상으로 발전되어 왔다. 치누아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라는 책은 그 중 아프리카 지역의 탈식민주의를 대변하는 문학 작품이다. 저자는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난 인물로서 이 작품을 시작으로 일생 동안 아프리카의 정서를 대변하는 글들을 발표해 왔다.

작품의 줄거리는 다분히 전형적이다. 오콩코는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마을 우무오피아의 지도자급 위치에 오른 인물이다. 그의 성격은 다분히 권위적이고 불같으나, 부족과 그 전통을 아끼고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강하다. 그렇기에 마을의 촌장이 되고자 하는 야망도 있었으나, 우연찮은 실수로 인해 7년간 마을을 떠나야 하는 형벌에 처해진다.

문제는 그가 마을을 떠난 7년 사이, 백인과 그들의 세계가 유입되었다는 것이다. 부족의 전통에 따라 소외받던 이들이 기독교를 매개로 백인 집단을 추종하기 시작하며 마을은 혼란에 빠지고, 서서히 외세의 지배 아래에 놓여가게 된다. 오콩코는 이에 분개하게 되며 종국에는 이들과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한국인들 역시 제국주의의 피해자가 되어본 경험이 있기에,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에 드러나는 스토리 구조는 상당히 익숙하게 다가온다. 전근대적인 (오늘날의 관점에서) 미신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사회, 거기에 불현듯 찾아온 '근대적'인 이방인 집단, 그리고 그들에 의해 붕괴되는 공동체와 이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 식민지 시대를 겪었던 사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문학의 플롯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나이지리아와 아프리카 대륙을 넘어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널리 읽혔다. 아체베 역시 같은 방향성의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 2007년 부커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프리카'라는 지역적 특수성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된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대만, 한국 등을 중심으로 빠르게 현대 국제체제에 편입된 아시아와 달리 아프리카는 오랜 세월 방치된 땅으로 남아 있었다. 기존에 존재하던 국가가 없다는, 위에서 언급한 그 차이로 인해 여전히 유럽을 비롯한 열강의 영향력이 강력하게 남아 있게 되었다. 여기에 억눌려 있던 종족간의 분쟁들도 터져나와 근대화를 방해했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인들의 목소리는 국제 사회에 널리 퍼지지 못했는데, 아체베의 작품은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몇 안되는 문학적 창구였다. 또한 이미 그 식민시대의 문제가 '과거'의 것이 되었고 그 정리와 청산이 중요한 과제가 된 동아시아 국가 등과 달리, 아프리카 지역의 '탈식민주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과제이다. 그렇기에 다른 지역의 탈식민주의 문학들에 비해 아프리카의 것들은 여전히 '살아있는'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은 몇 십 년 동안 이어진 국제원조와 자정노력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혼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유혈 냉전은 일상화 되었고 소수의 군벌이나 독재자들은 국민을 착취하거나 분열시키고 있다. 21세기에 접어든 후에도 라이베리아 내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분쟁, 다르푸르 분쟁, 그리고 남수단 내전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비극들이 있었다.

이런 '무너져내림'의 근원을 하나로 단언할 수는 없겠으나 서구 제국주의에 강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문학의 힘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데에 있다. 아체베는 2013년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이 땅에 남아 아프리카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끊임없이 말하고 그에 대한 세계의 성찰을 이끌어갈 것이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민음사(2008)


태그:#서평, #북리뷰, #문학, #탈식민주의,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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