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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자연과학자는 때로 예언가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미국의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1907~1964)도 그런 사람이다. 지금으로부터 55년 전인 1962년 그가 쓴 책 <침묵의 봄>(Silent Spring)은 2017년 한국사회의 '살충제 계란 파동'을 미리 본 듯 예언하고 있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표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표지.
ⓒ 에코리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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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살충제 남용이 가져올 위험을 감지한 것은 그보다 더 오래 전이었다. 1945년 카슨은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통해 합성 화학물질인 DDT(유기염소 계열의 살충제)를 포함한 제초제가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는 증거를 제시했다. 여기에 이런 말도 덧붙였다.

"제 힘에 취해서 인류는 제 자신은 물론 이 세상을 파괴하는 실험으로 한 발씩 더 나아가고 있다."

미국 대학사회에서도 남녀차별이 엄존하던 1920년대.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 했던 카슨은 '실용적 선택'으로 생물학을 전공한다. 자연과학 분야에 여성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메릴랜드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초보 교수 카슨은 이미 1930년대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자연과학자의 논리적 해석과 문학소녀의 감성이 동시에 담긴 카슨의 글은 사람들을 이성적으로 설득시키고 감동시켰다. <해풍 아래서>(1941), <우리 주변의 바다>(1951) 등이 그 실제적인 사례다.

<타임>지는 레이첼 카슨을 '20세기를 변화시킨 100인 중 한 사람'으로 지목했다. 이유는 간명했다. 그녀의 미래 예측은 명료하고 정확했다. 이런 것이다.

"땅과 물을 오염시키는 원인은 원자로·실험실·병원에서 배출되는 방사성폐기물은 물론, 핵폭발 낙진, 도시와 마을에서 흘려보낸 생활 폐수, 공장에서 나오는 산업폐기물 등 다양하다. 여기에 농작물과 정원, 숲과 밭에 뿌려진 살충제가 더해진다. 이런 화학물질이 만들어내는 심각한 상호작용과 변형, 그 결과에 대해서는 연구된 바가 없다."

문제 제기와 근거의 나열, 거기에 대책 없는 현재까지를 이 짧은 문장 안에 고스란히 녹여낸 카슨은 두말할 나위 없이 '시대를 앞서간 환경주의자'였다.

"레이첼 카슨은 향후 한국의 양계장에서 살충제가 사용될 것임을 그때 이미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게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정치인이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후에야 뒤늦게 해결책을 모색하는 사람들'에 가깝다.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에 허둥지둥하던 한국의 정치인과 식품 안전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모습은 그 명제가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인간은 과거에서 배우지 않고서는 현재를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미래 또한 과거 학습과 현재의 노력이 더해져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와 우리 국민은 제2, 제3의 '살충제 식품 위기'가 오기 전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아래 인용하는 레이첼 카슨의 '경고'는 살충제가 미래세대의 평화롭고 건강한 삶까지 위협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제 말로만 '환경보호'와 '건강할 권리'를 외쳐서는 어떤 국민도 설득시킬 수 없다. 정치권의 각성과 더불어 우리의 인식 변화 또한 필요한 시점이다.

"유독물질은 모체에서 자식세대로 전해지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모유 시료에서 살충제 잔류물을 발견했다. 이는 모유를 먹고 자란 아기도 지속적으로 화학물질을 흡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성인보다 훨씬 쉽게 독극물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살충제를 포함한 화학물질의 남용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에코리브르(2011)


태그:#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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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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