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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7일은 애국지사이자 사회주의자인 이현상(1905.9.27.~1953.9.17.)이 사망한 날이다. 이현상은 지리산 빨치산인 남부군 사령관으로 토벌군과 대치하다 죽은 전설적인 민중혁명가이다. 그는 1925년 6·10만세운동의 맨 선두에 섰다가 처음으로 체포된 후 12년간의 옥살이를 했으며 일제 치하의 모진 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았다.

해방 후에는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외세와의 투쟁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진정한 휴머니스트이자 사회주의자였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보다도 민족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삶을 꿈꾼 그의 삶은 공산주의자였다는 이유로 현대사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다.

<이현상 평전>(안재성 저)에 따르면 이현상은 충남 금산군 군북면 외부리에 살았다. 꽤 큰 부자이며 지주였던 아버지 이면배는 면장으로서 덕을 베풀어 마을 주민들이 공덕비를 세웠다고 한다. 이현상의 사망일에 앞서 8월 27일 그의 생가와 아버지 이면배의 공덕비를 찾아 나섰다.

생가가 있던 곳은 외부1리 구 노인회관을 끼고 골목으로 들어가면 논과 마주하고 마당이 꽤 넓은 집(외부1길 7)이 나오는데 바로 그 곳이다. 원래 있던 집을 새 주인이 허물고 새로 지었다고 한다.

 생가터에 새로 지어진 집
 생가터에 새로 지어진 집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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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난 팔십대의 마을 주민이 그때 일을 알고 있어 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공덕비는 금산에서 대전으로 가는 길이 새로 생기면서 원래 있던 자리에서 잘 보이라고 새로 생긴 길 옆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와 함께 공덕비를 찾아 나섰다.

비는 생가터에서 한 1킬로미터 떨어진 대전으로 가는 국도 옆 야산에 세워져 있었다. 차만 달리고 인적은 드물어 원래 의도했던 것과는 달리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고 아는 사람도 드문 것 같았다. 더구나 길과 비 사이에는 담이 생겼다. 그 비 아래에 주유소(SK 가까운 주유소)가 있어 주유소 건물 옥상을 통해 그 비에 다다를 수 있었다. 관리를 안 해 길은 없고 주변엔 잡풀이 무성했다.

 이면배 공덕비
 이면배 공덕비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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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은 대한민국에 저항한 빨치산이었으나 그 이전에 애국지사였다. 언제까지 남북 간에 이념대립만 하고 있을 것인가? 이제는  대립을 버리고 대화를 해야 한다. 한 쪽이 대립을 계속 하려해도 한 쪽이 대화를 꾸준히 하고자 노력하면 결국 대화를 할 수 밖에 없다.

대화의 한 방편으로 이념에 앞서 일제에 항거한 사회주의자의 공적을 인정해 복권하였으면 한다. 공산혁명을 완수한 중국도 장개석 편에 섰던 이종인 장군에 대한 기념관을 세웠다. 우리도 남북을 떠나 일제에 항거한 독립군에 대해 재평가를 하여 명실 공히 임시정부의 전통을 이어받은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아들인 이현상의 빨치산 경력으로 집안은 풍지박산이 났고 생가는 사라졌지만, 워낙 인심이 좋아 존경받은 그 부친의 공덕비는 잘 보존되어 있었다. 그 비를 통해서나마 민중을 사랑한 휴머니스트 이현상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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