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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항쟁'과 '장미대선'을 거치며 70년 넘게 이땅의 주류로 군림해왔던 한국 보수는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저지른 '적폐'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 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분열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간의 통합론이 부상하는 가운데, 자유한국당 측에선 '성 소수자' 문제를 정치이슈화하고 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 부결 사태 과정과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자유한국당은 성소수자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동성애 혐오, 차별' 정서에 편승하거나 자극하였다.

이에 대해 "과거 반공 보수가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했던 '종북몰이'나 '색깔론'이 '반(反)동성애'로 옷을 갈아입은 듯한 모습"이라는(<경향신문> 2017년 9월 15일자)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사회적 차별'에 바탕한 프레임은 기실 한국 보수의 오래된 정치 방식이었다.

빨갱이 차별, 지역 차별, 블랙리스트, 성소수자 차별... 한국의 '차별 정치' 계보

지난 70년 동안 한국 보수는 사회적 구성원에 대한 '차별'을 통해 기득권을 강화하거나 정당화해왔다. 분단정부 수립 이후 남한사회의 주류로 부상한 친일파와 보수세력은 가장 먼저 '빨갱이 차별'을 시작했다. 1948년 국가보안법 제정은,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하였다. 또 좌익 성향 또는 항일투쟁 경력이 있던 사람들은 '국민보도연맹'이라는 전향자 단체에 가입시켜 별도의 관리 대상이 되었다.

그 이후 한국전쟁이 터지자 보도연맹 가입자들은 한국 군경에 의해 전국 각지에서 학살당하였다. "빨갱이는 죽여도 좋다"라는 담론은 이 같은 '비극의 역사'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리고 피학살자 유가족들 역시 '빨갱이'로 낙인찍혀 취업, 여행, 생활상의 각종 차별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억울함을 사회적으로 호소하기는 커녕, 숨겨야만 하는 상황이 수십년간 지속됐다.

이후 '빨갱이'에 대한 '낙인'과 '차별'은 한국정치와 사회를 지배하는 '규정적인 것'이 되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엄밀한 의미에서의 좌파'는 남한사회에서 소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역대 군사독재정권은 민주화운동을 실천하는 학생, 시민, 종교인들에게 가차없이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특히 생존권 보장을 외치며 거리에 나선 노동자들이나 철거민들에게는 '빨갱이'라는 낙인과 함께 물리적 폭력이 마구잡이로 자행됐다. 멀리 거슬러 올라 갈 것도 없이 이명박 정권 시기의 '용산참사'와 '쌍용차 사태'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이처럼 전후 한국사회에서 '반공'과 '빨갱이 사냥'은 정권 보위의 훌륭한 수단이었고,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 보장 요구를 억누르는 흉기였다. 빨갱이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멀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예컨대 납북어부들의 경우 귀향 후 중앙정보부에 의해 억울하게 간첩죄 누명을 뒤집어썼음에도 이웃들로부터 '저 집은 빨갱이 집이야'라며 소외와 멸시를 당해야 했다.

이러한 '빨갱이 차별'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접어들어 '종북 차별'로 진화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자국민을 상대로 '대북심리전'을 자행했고, 정권 비판자를 향해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실제 북의 지령을 받거나 북의 체제를 찬양한 사실이 있었느냐의 여부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저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대해 공인으로서 비판적 발언 한 마디만 해도 '종북'으로 몰아갔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작성한 것으로 밝혀진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그러한 '차별 정치'의 핵심적 기제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 이땅에는 표현의 자유, 사상과 양심의 자유, 다원적 가치를 존중하는 민주주의가 없었다. 70년 전 이승만 정부가 진보적 성향을 지녔거나 정권에 비판적이던 시민들을 '보도연맹'에 가입시켜 별도로 관리한 것과 그 본질상 하등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빨갱이(종북) 차별과 함께 한국 보수가 지금까지 유용하게 써먹은 또 하나의 차별은 '지역차별'이었다. 박정희 독재정권은 영호남을 상대로 '분리 통치'를 자행하고, 호남지역에 대한 차별정책을 노골적으로 펼쳤다. 1971년 야당(신민당)에서 김대중 후보가 출마한 대통령 선거에서 지역차별론에 기초한 흑색선전을 감행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밖에도 호남 출신 인사들은 정부 고위 인사에서 배제당하였고, 각종 공업 시설은 영남지방에 집중되었다. 결정적인 것은 전두환 신군부가 자행한 '광주학살'이었다. 호남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차별은, '유신잔당'인 신군부에 의해 '폭력'과 '학살'이라는 잔혹한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1987년 6월항쟁은 이땅에 '형식적 민주주의'의 길을 열었다. 하지만, 빨갱이 차별과 지역차별만큼은 여전히 지속되었다. 특히 선거 국면에서 지역 차별은, 빨갱이 차별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했다. 기본적으로 국회의원 총선거 제도가 '지역구 선거'였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기춘은 6공 시절이던 1991년,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의 당사자였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그 유명한 말이 화제가 된 '초원복집' 사건은, 지역차별을 조장해 정치권력을 영속하려는, 군사독재 잔존세력의 욕망과 의도를 날 것 그대로 사건이었다.

이러한 지역차별에 정면으로 맞서 싸운 인물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이에 대해 한국 보수세력은 노무현에게 '비주류'라는 딱지를 붙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후에도 그에 대한 의도적 폄훼를 멈추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 시기까지도 노무현을 지지하는 정치인과 시민들은 '친노'로 낙인찍혀 '빨갱이 취급'을 받아야 했다.

한편,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 국정원이 자행한 '대국민 심리전'(댓글과 게시글)의 내용 역시 이러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모두 빨갱이, 종북, 호남, 가부장 등 한국보수의 전통적 차별담론에 기초하고 있었다.(이와 관련해선 윤성환, <세월호 이후, 극우는 어떻게 준동하는가>, <시민과 세계>26 참고) 그런 점에서 최근 자유한국당이 들고나온 '성소수자 차별(또는 혐오)'는, 촛불항쟁 이후 종전의 차별 담론이 힘을 잃자 새롭게 들고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달라졌을 뿐, 방법과 형식은 의구할 뿐더러 유치하기조차 한 것임은 긴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차별정치의 악영향... 소외와 공포

그렇다면 이러한 한국 보수의 차별 정치는 그동안 이 땅에 어떤 영향을 미쳤던가? 그것은 한국사회에서 두 가지 형태의 공포를 조장했다. 하나는, '낙인에 대한 공포'였다. 사회구성원들로 하여금 혹시나 빨갱이로, 종북으로, 호남출신으로, 동성애자로 낙인찍힐 것을 두려워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검열'의 늪에 빠지게 하고, 사상 양심 표현의 자유를 짓눌렀다.

또 다른 하나는 '소외에 대한 공포'였다. 차별과 낙인은 필연적으로 소외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소외'와 '고립'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형벌'과 다름 없는 것이다. 몸이 감옥에 있지 않아도 실제로는 감옥에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특히 '블랙리스트'의 경우처럼 '밥줄'을 무기 삼아 '낙인과 소외에 대한 공포'를 조장할 경우 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공포는, 결과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기존의 차별담론을 더욱 내면화하고, 강화하는 형태로 이어졌다. 내가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 주류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기존의 차별담론이 나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면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차별과 공포가 한국인의 자아형성과 심리에 어떠한 악영향을 남겼는지는 추후 심리학계에서 연구해야 할 과제이겠지만, 그것이 그동안 친일파-(군사)독재 부역자로 이어지는 한국 보수의 기득권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음은 틀림없을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인들의 '인맥중시 풍토' 역시 이러한 차별정치와 불가분의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어린 아이들마저 "인맥"을 입에 올리고,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인맥', '물질(부유함)'과 같은 '이해관계'로 구성되는 한국인의 사회적 관계는, 그동안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어왔다. 전세계 자살률 1위는 이를 상징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인간관계에서 유달리 '인맥'과 '부(富)'에 집착하는 까닭은,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소외'와 '천시'에 대한 강한 두려움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즉, '내가 혹시 남들로부터 천시(소외)받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사회적 관계의 기준을 '인맥'과 '물질'에만 두는 이유가 되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역시 한국 보수의 '차별정치'가 낳은 사회적 영향의 결과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차별', '소외', '천시', '그로 인한 공포'는 모두 '식민지적 감수성'이라는 점이다. 근대 이후 식민지는 기본적으로 '차별에 바탕한 세계'였다. 한번 일제 식민지 시기를 떠올려보자. 일제는 우선 조선인과 일본인을 대상으로 '민족차별'을 자행했다. 일본제국 안에서 일본인은 일등국민, 조선인은 이등국민이었다. 또 조선인 내부에서도 친일파로 출세해 사실상 일등국민으로 대접받은 인간이 있는가하면, 항일투쟁의 길로 나아가 '불령선인'(=블랙리스트) 취급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다. 불령선인에 대한 낙인과 공포는 식민지 조선인들을 짓누르는 유력한 무기였다.

이처럼 한국 보수의 '차별 정치'는 일제 식민지 시대에서 기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차별 정치는, '지난 100년 동안 쌓여온 적폐'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한국 보수의 기원이 친일파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 한국의 보수는 일제로부터 배운 정치방식을 21세기에 접어든 현재까지 써먹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적폐청산'은, 아직도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진정한 해방'을 이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태껏 한국의 보수세력은 기실 '한국말 쓰는 일제 식민통치자'들에 불과했던 것이다.

차별정치와 결별할 수 있는 방법은

그렇다면 '차별 정치'라는 '100년 묵은 적폐'를 근절할 수 있는 방법을 무엇일까? 우선 촛불항쟁 과정에서 제기된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에서 제외되어 아쉬움을 남기지만, 향후 시민들과 시민사회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공론화한다면 충분히 입법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법적 장치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교육'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인맥'을 운운하는 아이들에게 왜 우리사회의 인간관계가 이토록 황폐화되어 있는지, 타자를 차별해온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은 어떤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타인을 차별하지 않고 상호 존중하며 살아가는 길은 무엇인지 등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는 역사교육이 단순한 암기교육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과 모습에 토대를 둔 교육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 스스로 '깨어있는 시민'으로 거듭나려는 노력 역시 중요할 것이다. 한국 보수의 지역차별 조장에 정면으로 맞서 싸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깨어있는 시민'을 강조했다.아마 그가 말한 '깨어있는 시민'이란, 기성의 지배담론에 포획당하지 않고, 그것에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며 투표하는 시민을 가리킬 것이다. 그렇다. 우리 스스로, 한국의 보수세력은 '한국말 쓰는 일제 식민통치자'들임을 자각하고, 그들이 유포하는 담론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는 첩경이 될 것이다.


태그:#차별 정치, #차별금지법, #노무현, #일제 식민지배, #한국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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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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