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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나는 당신의 이름과 사는 곳을 정확히 모르지만, 성씨가 김씨였던 것은 어렴풋이 기억할 수 있습니다. 지난 6월 강원도 화천군 진동면 오음리 '파월교육대' 유적지를 견학하고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 당신이 큰소리로 읊은 얘기를 나는 잊지 못합니다.

당신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내 옷깃에 달려 있는 노란 리본을 보고 왜 그런 것을 달고 다니느냐는 말을 던졌습니다. 못마땅한 표정이었고 다분히 시비조의 언성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잘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난감하기도 해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관련 기사 : 군복에 세월호 배지 달고, 47년 만에 찾아 간 파월교육대)

그런데 당신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내 태도가 섭섭했는지, 또는 내가 더욱 같잖게 보였는지 버스 안에서 상당히 취기 어린 목소리로 나와 노란 리본을 힘껏 성토했습니다. 세월호 사고가 3년 전 일인데 여태까지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고도 했고, 일종의 교통사고인데 왜 그걸 가지고 계속 물고 늘어지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당신은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동료들의 동조를 유도하는 것도 같았습니다.

당신의 그런 소리에 찬동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멀지 않은 자리에서 환히 느끼고 있었지만,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유치하고 천박하기조차 한 발언에 대응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괜히 당신과 말을 섞었다가는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오히려 누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상대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당신이 이해할 수 있을지 난감할 뿐이었고, 내 능력의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도 누릿빛으로 생동하는 세월호 리본과 배지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에서 만든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바치는 기도'의 뒷면에 있는 그림이다. 우리 부부는 매일 이 기도를 바친다.
▲ 세월호 희생자들을 품에 안으신 성모님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에서 만든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바치는 기도'의 뒷면에 있는 그림이다. 우리 부부는 매일 이 기도를 바친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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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나는 내 옷깃의 세월호 리본을 다시 매만졌습니다. 아침에 오랜만에 군복 조끼를 입었을 때 아내가 달아준 리본이었습니다. 아내는 내게 '파월전우회' 행사에 가면서 굳이 이런 걸 달고 갈 필요가 뭐 있느냐는 말을 할 법도 한데, 그런 말은 일절 하지 않고 중요한 일인 것처럼 리본을 찾아다가 달아주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세월호 문제를 포함하여 정의와 민주주의 등과 관련해서는 동지 관계입니다.
일찍이 우리 부부는 세월호 배지나 리본에 대해 이런 다짐을 했습니다. 아내는 세월호를 인양하고 미수습자들을 모두 찾을 때까지는 리본과 배지를 떼지 않기로 다짐했고, 나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온전히 규명될 때까지 배지와 리본을 달고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러며 우리 부부는 과연 누구의 바람이 성취될지, 그래서 누가 먼저 세월호 배지와 리본을 떼게 될지 궁금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느 쪽도 바람이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는 인양되었지만, 미수습자들이 온전히 수습되지도 않았고,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규명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부는 세월호 배지와 리본을 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단지 그런 이유 때문에 세월호 배지와 리본을 달고 사는 건 아닙니다. 그것들보다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지면의 협소함 속에서 조악하게나마 그것을 설명 드려 보겠습니다.

'망각의 덫'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 민족이 사는 길

광화문광장에서는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하며 함께 눈물 흘리는 시민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 세월호 유족과 시민 광화문광장에서는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하며 함께 눈물 흘리는 시민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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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기억'에 관한 사항입니다. 우리 부부는 세월호를 잊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 이후 기억의 가치와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것은, 단지 세월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잊고 살았습니다. 망각의 늪에 빠져서, 다시 말해 망각이 습성화되어 수많은 중요한 것들을 잊고 살았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최초의 해양 참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과거의 한성호, 창경호, 남영호, 서해훼리호 참사에서 매우 비슷한 사고 원인과 수습 과정, 정부의 대처 등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해양 사고들로부터 아무런 대처 방법이나 능력을 축적시키지 못하고 완전히 망각한 탓에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고, 결국 세월호 참사는 '인권참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참사 당시의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를 국민들의 기억에서 지우기 위해 갖가지 폭거와 같은 행위들을 저질렀고, 수많은 국민들이 부화뇌동하듯 망각을 찬양하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세월호가 왜 침몰하게 되었는지, 정부는 왜 조사를 방해하고 유족을 핍박하며 무엇을 감추려고 했는지, 딱 그거 한가지다!"라는 유족들의 절규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하지만, 내가 세월호를 잊지 않으려는 것에는 깊은 '반성'이 깔려 있습니다. 망각의 편리와 거짓 합리화를 추구하는 심리가 내 안에도 잠복해 있지 않았나? 라는 자문 앞에서 나는 몸을 떨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우리 국민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반성에 대한 사유 공간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 안에는 반성 공간이 매우 협소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많은 국난을 겪으면서도 원인을 분별하고 대비책을 확고히 수립하는 능력을 기르지 못한 것은 뼈저린 반성이 기초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김형, 혹 '역사의식'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예전에 어떤 친구는 과거의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이 역사의식이라고 강변하더군요.

역사의식이란 한마디로 ''역사에 대한 관심과 사랑'입니다. 오늘의 역사를 슬기롭고 아름답게 만들려는 마음과 노력이 바로 역사의식입니다.

세월호의 노란 리본을 비난하시는 김형도 조금이나마 역사의식을 지니고 사시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세월호배지, #노란 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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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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