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얼>과 <군함도>가 스크린에 올랐다. 개봉 이전부터 두 영화는 대형배우의 출연과 함께, 순제작비가 각각 115억, 220억으로 흥행가도를 달릴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리얼>은 손익분기점인 320만에도 미치지 못하는 47만 명으로 그쳤고, <군함도>는 8월 16일 기준 650만 명으로, 800만의 손익분기점마저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전까지의 기록을 보면 <군함도>가 흥행할 만한 여건은 충분했다. 국내 메이저 영화사 CJ가 배급하고, 류승완 감독이 연출했다. 흥행 보증수표로 꼽히는 배우들도 대거 출연했다. 그러나 결국 본전은 못 찾고 눈총만 받게 되었다. <리얼>도 CJ가 배급하고 김수현 등의 대형 연예인들이 출연해 이목을 끌었지만, 얼마못가 관객들의 비난과 질타가 빗발쳤다. 이쯤 되면 영화를 흥행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궁금해진다. 한국 대형 상업영화의 흥행저조는 영화의 성패를 가르는 변수가 유동적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리스크는 크고 열매는 달콤하다

그림 1  2008-2017년 한국 상업영화 흥행기록 그래프  <그림1>은 눈에 띄게 흥행하거나 부진한 국내 상업영화의 추이가 요약된 그래프이다. 근 10년 간 개봉한 1,717편의 한국영화 중 통계상으로 두드러지게 흥행한 상업영화는 ‘추격자(2008)’ 외 38편이며, 실적이 저조한 이상치(outlier) 영화는 ‘미스터고(2012)’ 외 15편이다.

▲ 그림 1 2008-2017년 한국 상업영화 흥행기록 그래프 <그림1>은 눈에 띄게 흥행하거나 부진한 국내 상업영화의 추이가 요약된 그래프이다. 근 10년 간 개봉한 1,717편의 한국영화 중 통계상으로 두드러지게 흥행한 상업영화는 ‘추격자(2008)’ 외 38편이며, 실적이 저조한 이상치(outlier) 영화는 ‘미스터고(2012)’ 외 15편이다. ⓒ 김민준




국내 상업영화 시장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통합전산망 데이터를 기반으로 2008년부터 2017년 5월까지 개봉한 영화들의 통계 분석을 실시했다. 투자액 데이터가 한정된 점을 감안하여, 이를 영화의 규모를 유추할 수 있는 '첫 주 스크린 수'로 대체했다. <그림1>은 눈에 띄게 흥행하거나 부진한 국내 상업영화의 추이가 요약된 그래프이다. 근 10년 간 개봉한 1,717편의 한국영화 중 상업영화는 964편이었다. 이중 통계상으로 두드러지게 흥행한 상업영화는 <추격자>(2008) 외 38편이며, 실적이 저조한 이상치(outlier) 영화는 <미스터고>(2012) 외 15편이다.

그림 2  2008-2017년 첫 주 스크린 수 대비 매출액으로 본 한국영화 흥행실적  지난 10년간 부진한 한국영화들은 대부분 국내 메이저 영화사에서 배급한 영화들이다.

▲ 그림 2 2008-2017년 첫 주 스크린 수 대비 매출액으로 본 한국영화 흥행실적 지난 10년간 부진한 한국영화들은 대부분 국내 메이저 영화사에서 배급한 영화들이다. ⓒ 김민준


<그림2>을 보면 지난 10년간 부진한 한국영화들은 대부분 국내 메이저 영화사에서 배급한 영화들이다. 규모가 커질수록 손익부담도 커지는 고예산 영화산업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림 3  2008-2017년 4대 메이저 영화사의 흥행성과 비교 롯데를 제외하고는 국내 상업영화의 흥행률이 실패율보다 3~4배가량 높다.

▲ 그림 3 2008-2017년 4대 메이저 영화사의 흥행성과 비교 롯데를 제외하고는 국내 상업영화의 흥행률이 실패율보다 3~4배가량 높다. ⓒ 김민준


물론 <그림3>에서 보면 롯데를 제외하고는 국내 상업영화의 흥행률이 실패율보다 3~4배가량 높다. 앞선 통계는 한국영화를 기준했기 때문에 외국영화 배급까지 고려한다면 롯데를 포함한 국내 4대 영화사 모두 수익원이 안정권에 있는 셈이다. 덧붙여 롯데는 국내 배급사 중 외국영화 배급에서 가장 높은 관객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근래 2년 간 메이저 영화사의 상업영화가 실패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그림2). 이는 이전보다 영화를 성공시키기 위한 조건이 까다로워졌다는 점을 시사한다. 일부 대형 배급사들이 실패위험을 낮추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감행한 스크린 독점과 유통 개입이 필연적인 성공으로는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흥행을 판가름 낼 변수에 있어서 대형 배급사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던 것이다.

감독과 장르는 정말 유의미한 성공의 열쇠일까

영화를 흥행하게 만드는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중 '감독', '장르'는 기존의 연구를 통해 꾸준히 주목받아온 주요 요인이다.

첫 번째로 감독을 살펴보자. 감독의 인지도가 높은 경우 신작영화가 주목 받을 가능성은 다분하다. 그러나 그것이 흥행과 직결되느냐는 다른 문제다. 2008~2017년의 영진위의 자료를 검토해본 결과, 흥행작을 만든 감독이 또 다시 흥행에 성공시키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었다. 10년 내에 2회 이상 영화를 성공시킨 감독은 8명으로 흥행감독 31명 중 26%를 차지했다. 최동훈 감독은 <전우치>(2009), <도둑들>(2012), <암살>(2015) 세 작품을 성공시킨 유일한 단기최다 흥행감독이다.

하지만 과거에 성공했던 경험이 꼭 차기작의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실미도>(2003), <귀신이 산다>(2004) 등의 강우석 감독은 '10년 내 두드러지게 부진한 영화'에 집계될 만큼의 실패를 <고산자, 대동여지도>(2016)를 통해 맛봤다. 또 다른 예로 <국가대표>(2009)를 흥행시킨 김용화 감독은 차기작인 <미스터 고>(2013)를 흥행시키지 못했다.

장르도 의미 있는 변수가 될 수 있다. 앞선 통계를 바탕으로 10년 내 흥행한 한국 상업영화의 장르 비중을 따져보니 29.6%로 '드라마'가 가장 우세했다. 그 다음 '액션'이 23.9%로 2위를 차지했다. 3위인 코미디(12.68%), 4위 범죄(7%)와의 격차를 감안하면, '드라마'와 '액션'은 한국인이 선호하는 장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의 문맥을 그대로 받아들여 무작정 '드라마'나 '액션' 영화에 뛰어든다면 실패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저조한 실적을 기록한 영화에서도 '드라마'의 비중이 36%로 1위였다. 2위 역시 액션(16%)이었다.

그림 4  2008-2017년 국내 상업영화의 장르별 성공 순위 10년간의 전체 상업영화에서 장르별 흥행률을 보면 전개가 달라진다. 결과적으로, 장르 자체는 개별 작품의 성공을 담보해주진 않는다.

▲ 그림 4 2008-2017년 국내 상업영화의 장르별 성공 순위 10년간의 전체 상업영화에서 장르별 흥행률을 보면 전개가 달라진다. 결과적으로, 장르 자체는 개별 작품의 성공을 담보해주진 않는다. ⓒ 김민준


그런데 10년간의 전체 상업영화에서 장르별 흥행률을 보면 전개가 달라진다(그림4). 2위로 많이 제작되는 장르는 드라마(22%)로, 성공률은 5.2%, 부진율은 3.3%다. '드라마' 장르는 다른 장르와 겸해서 2차 장르로 매겨진 경우도 가장 많았다. 종합하면 '드라마'는 가장 무난하게 쓰이는 장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반면 '액션' 장르의 보급은 5.88%로 낮은 편에 속했다. 흥행에 성공한 비율은 16.1%로 1위를 차지했다. 게다가 실패율이 1.8%인걸 보면 '액션'은 중저예산으로 제작하긴 어려우나'고수익'을 노리기에는 용이한 장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정리하자면, 장르 자체는 개별 작품의 성공을 담보해주진 않는다. 2001년 유현석 교수도 영화흥행 변수에 대한 연구에서 장르는 유의미한 흥행요인이 될 수 있지만 영화를 둘러싼 여러 가지 외부환경에 의해 얼마든지 '흥행 가능한 장르'의 영화도 실패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혔다.

이렇게 본다면 '감독'과 '장르' 모두 명확한 흥행요인이라고 말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흥행성과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한 두 조건 모두 뚜렷한 구분점을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선행된 연구들 중에서는 감독과 장르 외에도 개봉 시기나 스타배우의 출연이 유효하게 작용한다고 밝힌 경우도 있다. 그러나 <리얼>과 <군함도>의 경우처럼, 최근 '배급사', '감독', '장르', '스타', '시기' 등의 흥행공식이 통하지 않는 사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전략만으로는 한국영화계의 새로운 변화를 설명하기에는 마찬가지로 부족한 감이 있다.

진짜 큰 손, 기술자들

그림 5 2008-2017년 5월 한국 상업영화의 특수기술자들의 흥행실적 통계는 오히려 상대적으로 주목받을 기회가 없었던‘영화계 기술자’들이 영화를 만들고 흥행까지 이끌어내는 데에 상당한 변수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그림 5 2008-2017년 5월 한국 상업영화의 특수기술자들의 흥행실적 통계는 오히려 상대적으로 주목받을 기회가 없었던‘영화계 기술자’들이 영화를 만들고 흥행까지 이끌어내는 데에 상당한 변수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김민준




데이터를 분석하던 중 흥행영화의 스태프 목록에서 중복되는 이름들을 발견했다. 이들은 영화의 특수효과를 만드는 VFX 디자이너들이었다. 앞서 제시한 통계에서 10년 간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31편의 한국 상업영화를 살펴보니, 2명의 기술자가 흥행영화 31편 중 절반가량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흥행영화의 주요 기술자 중 약 75%가 근 10년 내 좋은 성적을 거둔 타 영화에 2편 이상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부진영화 명단에 4번 이상 등장한 상위 세 명은 흥행영화 참여기록이 1.5~2배로 많은 기술자들이었다.

<그림5>는 한국 영화시장에 대한 이야기들이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감독과 장르 등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분명 흥행에 기여하는 바가 없지는 않지만, 통계는 그것이 흥행영화를 만들기 위한 엄밀한 조건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주목받을 기회가 없었던 '영화계 기술자'들이 영화를 만들고 흥행까지 이끌어내는 데에 상당한 변수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10년 간 흥행률이 높았던 것으로 드러난 '액션', '사극', '범죄'장르가 특수효과가 필요한 기술집약적 장르라는 점과도 연결된다. 결국 기술발전의 흐름에 따라 영화산업에서도 최신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제대로 갖춰져 있느냐가 흥행에 있어 중요한 변수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산업 내 독과점 문제도 다른 각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투자한 금액을 회수하기 위해, 혹은 더 큰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벌어진 스크린 독점은 더 깊게 들어가면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무엇'에 투자하였는가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발전된 기술은 영화의 전달이 보다 직관적이고 감각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돕는다. 그러나 기술에 대해 접근기회가 희소해지면 제작비는 큰 폭으로 증가하게 된다. 그 제작비를 감당할 수 있는 대기업 자본은 기술점유를 바탕으로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들어 더욱 이슈되고 있는 영화계 양극화 문제에 있어서도, 이는 사회적으로 숙고해보아야 할 문제다.

다시 '사람'의 문제로

그림 6  2015년 예술활동 직업 고용형태 [전업] 중 영화, 통계청 영화종사자들의 불안정한 고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 그림 6 2015년 예술활동 직업 고용형태 [전업] 중 영화, 통계청 영화종사자들의 불안정한 고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 통계청




한편, 영화를 제작하는 VFX디자이너들은 많으나 '선택받는 자들'은 한정되어 있다. 신인 발굴과 처우 개선에 대한 목소리는 여전히 부족하다. 실제로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개인추천'에 의해 데뷔하는 기술 스태프의 비중은 46.7%에 달했다. 사적 네트워크가 필요 이상으로 작용해 진입장벽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열악한 대우도 문제다. 영화진흥위원회는 2014년 초 '작업내용의 정량화, 작업기간의 보장, 계약완료 시점의 명확화' 등을 골자로 하는 '표준VFX 계약서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전까지 기술자들은 4대보험 가입이 의무화되어 있지 않거나, 작업료를 제대로 지불받지 못하는 등 부당노동행위에 쉽게 노출되어 왔다. 그러나 이마저도 '권고 수준'에 그쳤던지라 아직 영화현장에서의 표준계약서는 일부를 제외하면 의무사항이 아니다. <그림6>에서 볼 수 있듯 영화종사자들의 불안정한 고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결국 흥행과 시장질서의 문제는 기술자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기술독점을 완화하는 데에서 그 해결책이 나온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올해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문화예술 공약이 눈에 띈다. 현 정부는 예술인실업급여제도 마련을 통해 기본적인 생계유지는 할 수 있도록 하고 표준계약서를 의무화하는 공약을 걸었다. 향후 변화에 대해서는 꾸준히 지켜봐야겠지만, 결국 이것도 '사람'의 문제라는 공감대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충분히 고무적이다.

기술자들 독과점 리얼 군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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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읽고 보고 쓰고 있습니다. 활동가이면서 활동을 지원하는 사람입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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