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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은 지방에 있더라도 본사는 서울에 많아요. 피치 못하게 전국 각지에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상경 투쟁을 하게 돼요. 그런 사람들이 투쟁 과정에서 편하게 자고 먹고 쉬고 빨래라도 해서 입고 나갈 수 있는 열린 공간 하나 정도 있으면 좋겠다. 이게 '꿀잠'이 생긴 이유죠."

건물 개조작업 위해 여름 내내 땀 흘려  

'꿈꾸는 자 잡혀간다'고 쓴 시인 송경동(50)은 지난여름을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에서 해머 드릴 등 연장을 들고 보냈다. 꿀잠은 파업 중이거나 해고당한 비정규직 노동자와 그들을 돕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지난 4월부터 8월 19일 개관 전까지, 송 시인은 그곳에서 '건축 잡부'로 일했다. 꿀잠 건립추진위원회(집행위원장 황철우)가 사업으로 모은 기금 7억 원가량에 빚 6억 원을 더해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주택을 사 개조하는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에서 해머드릴로 천장 콘크리트를 깎아내고 있는 송경동 시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에서 해머드릴로 천장 콘크리트를 깎아내고 있는 송경동 시인.
ⓒ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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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지하 1층과 지상 1층, 4층, 옥탑에는 노동자와 장애인 등을 위한 쉼터, 샤워실, 식당, 세탁실, 공연 및 전시 공간이 마련됐다. 2, 3층은 모자란 기금 확충을 위해 기존 세입자들에게 계속 임대를 하고 있다. 비정규노동자, 해고노동자, 투쟁하는 노동자, 비정규활동가 등이 요즘 이 공간을 무료로 사용하고 있다. 지난 5월 19일 서울 영등포역 내 한 카페에서 송 시인을 만나고, 지난 10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했다.

꿀잠을 만들게 된 취지와 과정을 설명하는 송경동 시인.
 꿀잠을 만들게 된 취지와 과정을 설명하는 송경동 시인.
ⓒ 김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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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의 삶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송 시인에게 건축 현장은 익숙한 곳이다. 1985년 고등학교 졸업 후 가진 첫 직업도 일용직 잡부였다. 새벽 일찍 인력소개소에 나가면 대개 건축현장 일이 떨어졌다. 이후 배관공, 목수 보조, 용접 조공 등 현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틈틈이 책을 읽고 시를 썼다. 2001년 <내일을 여는 작가>와 <실천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본격 활동을 시작한 그는 2009년 발행된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에서 이런 고민을 드러냈다.

손으로 일하지 않는 네가 / 머릿속에 쌓고 있는 세상은
얼마나 허술한 것이냐고 / 한뜸 한뜸 손으로 쌓아가지 않은
어떤 높은 물질이 있느냐고 / 물렁해진 내 머리를
땅땅땅 치는 소리 
('목수일 하면서는 즐거웠다' 중)

송경동 시인 시집 표지.
 송경동 시인 시집 표지.
ⓒ 도서출판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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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평범한 삶, 일상적 삶의 이해와 요구로부터 나의 의식이나 생각이 멀어지면 안 된다, 늘 거기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힘들고 고단한데 나의 심신만 편해지고 그러면 안 되잖아요."

송 시인은 등단 후에도 노동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2009년 쌍용자동차, 2010년 한진중공업 대량해고 사태에 반대하는 '희망버스'를 기획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오체투지 행진 등 크고 작은 현장에 그가 있었다. 몸을 다치고 갇히기도 했다. 시위 도중 굴착기에서 떨어져 발꿈치뼈가 산산조각이 난 일이 있고, 희망버스 때문에 특수공무집행방해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1심에서 2년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가 되기도 했다. 세월호 진상규명 투쟁 과정에서 집시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사건도 아직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한 마디로 치열한 삶이다. '문학에 관심을 두고 시라는 걸 써보겠다고 덤빈 게 아니라 현실에 먼저 눈을 떴고 시는 현실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뿐'이라던 고 김남주 시인(1946~1994)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송 시인은 1990년 도서출판 한길사가 개설한 한길문학학교에서 시인 김남주, 이시영, 정희성 등으로부터 문학을 배웠다고 한다.

"가끔 시인인데 노동운동 같이하는 거 모순이 아닌가, 괴리감이 큰 거 아닌가 묻는 사람이 있는데 제 안에서는 시인과 노동운동 사이에 경계나 충돌이 없어요. 문화예술이든 언론이든 특별한 사람, 지식인 일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가장 아름다운 세상은 그가 누구든 일을 하면서 글을 통해 자기의 사상, 감정이나 사물 혹은 세계에 대한 인식을 글로 써낼 수 있고 자기 삶을 반추해나갈 수 있는 곳이죠."

블랙리스트 책임자 고소·고발에도 앞장 

"문화예술은 제 삶의 또 다른 사법기관이에요, 우리 사회에 억눌려 있거나 은폐된 진실들을 캐서 드러내 주는 게 문화예술의 역할이에요. 놀 거리나 제공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그런 오락 기능만 하는 게 아니죠. 문화예술이 갖는 사회적 역할과 의무, 가치가 있죠. 그런데 글이나 노래가 수많은 노동자, 민중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도록 하고 사회 지배계층의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어요. 직접 못하면 사회 문제에 대해 눈 감고 침묵하도록 만들거나."

박근혜 정부는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 9473명을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올려 정부 지원금을 배제하는 등 은밀히 탄압했다. 송 시인도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다. 그는 지난해 11월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을 만들고 문화예술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노숙농성을 벌였다.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등 블랙리스트 핵심 관계자를 고소·고발하기도 했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도 청구했다.

"정권이 자기 이해를 위해 1만 명에 이르는 문화예술인들을 블랙리스트라는 명단으로 사전에 사찰, 통제, 배제하려 한 건 심각한 문제예요. 국가 권력 전체가 동원된 조직적 폭력이고, 헌법을 유린한 심각한 범죄 행위였어요. 실제로 누가 어떤 피해를 보았나, 힘들지 않았나, 이렇게만 얘기되면 안 되는 일이에요."

청년은 저항하고 있다,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만으로 올해 쉰 살이 된 송 시인이 여전히 치열하게 사는 것과 대조적으로 요즘 청년들 중에는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에 나서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러나 그는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비정규 일자리를 전전하고, 미래를 설계하기 힘든 청년들이 과거처럼 집단으로 투쟁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청년 학생들은 어떤 식으로든 잘못된 기성의 제도와 기득권에 대해 저항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좀 더 진일보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행보에 나서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08년 광우병 촛불항쟁, 2016년 (국정농단) 촛불항쟁에서 청소년, 대학생들은 과거처럼 어느 학교의 학생운동이라는 깃발 아래 뭉쳐서 나오진 않았죠. 하지만 사회적 불의에 저항하면서 열린 광장으로 나왔거든요."

송 시인은 1967년 전라남도 벌교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읍내 장터에서 과자 등을 만들어 파셨는데, 불화가 심했다. 그는 "어두운 내면을 감추기 위해 우악스러운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등 3권의 시집을 냈다. 사회활동을 하며 우러나는 생각을 시로 쓰는 그를 '거리의 시인'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송 시인은 현재 꿀잠 외에 블랙리스트 진상규명위원회, 적폐청산을 위한 문화예술계 대책회의, 전북남원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소셜미디어인 페이스북을 통해 '2017 미당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걸 거부했다고 밝혔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친일, 군사독재 부역 행적 때문이다. 송 시인은 "이제 오십도 넘고 해서, 내년에는 문학에 좀 더 집중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저널리즘스쿨대학원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송경동, #단비뉴스, #꿀잠, #비정규직, #꿈꾸는 자 잡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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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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