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1년에 300일 가량을 혼자서 강에서 산다. 드론 구입 후에는 혼자서 드론을 띄우고 투명카약을 타면서 취재했다.
 1년에 300일 가량을 혼자서 강에서 산다. 드론 구입 후에는 혼자서 드론을 띄우고 투명카약을 타면서 취재했다.
ⓒ 김종술

관련사진보기


'금강이'를 잃었다. 지난 6월 어렵게 장만한 드론이다. 금강이는 갈매기 조나단처럼 가장 높이 날고, 멀리 볼 줄 아는 새였다. 장화를 신고 물 속에 들어가서 물고기의 눈으로 기사를 썼던 나는, 금강이를 만난 뒤부터 새의 눈으로 죽어가는 금강을 봤다. 강변 구석까지 샅샅이 훑는 금강이는 나에겐 '제3의 눈'이었다. 투명카약으로 접근이 어려운 금강의 썩은 속살까지 보여줬다. 4대강 사업 고발자이자, 나의 동반자였던 금강이가 지금은 내 곁에 없다.  

[지난 9년] 몸으로 때웠다

 지난 2010년 4대강 살리기라면 명목으로 금강의 뼈와 살을 발라내던 날에도 금강을 지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공산성에서 바라본 금강 둔치.
 지난 2010년 4대강 살리기라면 명목으로 금강의 뼈와 살을 발라내던 날에도 금강을 지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공산성에서 바라본 금강 둔치.
ⓒ 김종술

관련사진보기


'이명박근혜 4대강'에 맞선 나는 지난 9년을 몸으로 때웠다. 4대강 공사 때는 얻어터지고, 준공 후엔 내 몸을 생체도구로까지 이용했다. 죽은 물고기를 부여안고 울었다. 툭하면 녹색으로 물든 강물에 몸도 던졌다. 큰빗이끼벌레를 먹고 녹조를 마시면서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배탈이 나고 피부병에 걸렸다. 두통약 없이는 하루를 버티기도 힘든 지경으로 치달았다. 

촌구석 이름 없는 지역신문 기자로서 정부와의 맞짱은 처음부터 승산 없는 싸움이었다. '수적 천석(水滴 穿石)'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속담은 속담일 뿐이었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4대강을 취재하면서 빚쟁이로 몰리고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몸부림쳤다. 

공사인부와 공무원들과 부딪치면서 욕먹고 얻어터지는 것은 오히려 견딜만했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손을 벌리는 것도 두세 번이다. 오랜만에 보는 가족들도 혹시나 돈 부탁 할까 봐 "왜 무슨 일인데?"라며 눈부터 커진다. 수없이 가져다 썼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난 참담했지만, 미친 듯이 4대강 취재만 했다.

한 가닥 희망이 보일 때도 있었다. 굳게 닫혔던 4대강 수문이 열리는 꿈을 꿀 때였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부터 환상이 심해졌다. 곧 수문이 열릴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았다. 콘크리트 댐이 무너지는 상상은 수없이 했다. 몽유병 환자처럼 비만 오면 잠들지 못하고 캄캄한 밤에 4대강 댐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다 착각이었다. 4대강 사업에 앞장섰던 부역자는 살아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4대강 수문개방'을 지시했을 때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앞으로 잘 지내보자'던 정부 부처 인사의 전화도 거짓이었다. 4대강 수문개방은 달콤한 속삭임이었다. 여전히 권력을 행사하는 부역자들의 반발로 '찔끔 개방'에 그쳤다. 추가개방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버티기엔 너무 지쳤다.

[금강이] 절망에 날개를 달다

 지난달 금강 하굿둑이 열리던 날 금강의 숨은 모래톱이 드러났다. 드론이 없었다면 찍지 못할 사진이었다.
 지난달 금강 하굿둑이 열리던 날 금강의 숨은 모래톱이 드러났다. 드론이 없었다면 찍지 못할 사진이었다.
ⓒ 김종술

관련사진보기


 드론이 없었다면 찍지 못했을 2017년 금강 녹조.
 드론이 없었다면 찍지 못했을 2017년 금강 녹조.
ⓒ 김종술

관련사진보기


1년에 300일은 금강에서 산다. 식량을 구할 때 외에는 강변에서 먹고 강바닥을 뒤진다. 수없이 비행기도 띄웠다. 지난 6월 어렵게 드론 '금강이'를 장만한 뒤부터 날개를 달았다. 녀석들 하늘에 띄워놓고 하루에도 대여섯 차례씩 SNS에 올렸다.

금강이는 지난여름엔 '4대강 독립군'들과 함께 낙동강도 누볐다. 4대강 사업의 마지막 사업구간인 영주댐의 충격적인 진실을 알려준 것도 금강이가 찍은 아래의 동영상이었다. 낙동강물이 썩으면 맑은 물을 흘려보내겠다고 1조1천억원을 들여서 만든 영주댐이 녹조카펫처럼 썩는 생생한 현장 영상이다. 



새의 눈으로 금강을 조명하는 금강이로 인해 텅 빈 금강에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수녀님도 찾고 학생들도 다녀갔다. 수문이 열릴지 모른다는 착각에 또다시 빠졌다. 시한부 인생을 부여받은 환자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뛰어다녔다.

[동행 취재] 금강이가 사라졌다

 충남문화재단이 금강의 옛길을 찾아 걷는 ‘이제는 금강이다’ 충남 공주시 청벽코스. 드론이 찍은 마지막 사진이다.
 충남문화재단이 금강의 옛길을 찾아 걷는 ‘이제는 금강이다’ 충남 공주시 청벽코스. 드론이 찍은 마지막 사진이다.
ⓒ 김종술

관련사진보기


지난 4일 금강에 손님이 왔다. 충남문화재단에서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금강을 찾았다. 반가웠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금강을 말했다. 코스로 잡아놓은 자전거 길을 옛길로 돌렸다. 최고의 선택이었다. 탐사대는 환호했고 나는 즐거웠다.

지난 7일 일정으로 가끔씩 다니던 절벽 길을 선택했다. 공주시에서 세종시로 편입된 곳이다. 세종시 불티교 아래 청벽 길은 쉽사리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질퍽한 펄이 쌓여 접근이 어려웠다. 보트를 타고 걸어서 돌아오는 코스로 바꿨다.

당일 아침 9시 탐사대와 함께 보트로 탔다. 기암절벽의 산수화와 같은 아름다운 금강이 펼쳐졌다. 겸재 정선의 작품 속 배경이다. 웅장한 바위에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소나무에 감탄사가 쏟아졌다. 16년 전까지 도로로 이용되다 불티교가 건설되면서 묻힌 옛길이다.

4대강의 아픈 속살과 함께 탐사대를 담고 싶었다. 보물 1호 금강이를 띄워 올렸다. 새털처럼 가볍게 날아올랐다. 금강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험 운전을 마치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먼지라도 묻을지 몰라 깨끗한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소설 <금강>의 저자인 김홍정 작가가 금강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넋을 놓고 김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탐사대의 모습을 찍으려고 다시 금강이를 띄워 올렸다. 10m, 20m 부드럽게 날아오른다. 일직선으로 찍기 위해 절벽 쪽으로 날렸다.

그 순간 자석에 이끌리듯 40m 높이의 직벽 바위 쪽으로 빨려들었다. 순식간이었다. 안간힘을 다해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눈 깜박할 사이에 절벽에서 자라는 나뭇가지 속으로 파고들었다. 파닥거리는 날갯짓과 함께 동작은 멈췄다. 나뭇가지만 바라보고 뛰었다. 40m 가량의 높은 일직선 절벽엔 접근할 수 없었다.

[구조에 나서다] 세 번에 걸친 금강이 수색 작업

 충남산악구조대 대원들이 3회에 걸쳐 드론 찾기에 나서주었다. 이 자리를 통해 감사드린다.
 충남산악구조대 대원들이 3회에 걸쳐 드론 찾기에 나서주었다. 이 자리를 통해 감사드린다.
ⓒ 김종술

관련사진보기


머릿속에 하얗게 됐다. 손발에 힘이 쭉 빠졌다.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아 털썩 주저앉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생명이 아닌 물건 구조는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절벽을 타고 오를 산악인이 있는지 지인들에게 수소문했다. 충남산악구조대로 활동하는 지인과 연락이 닿았다.

청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저녁 6시가 되어서야 후배 산악인 2명을 데리고 달려와 주었다. 울컥할 정도로 고마웠다. 순식간에 날씨가 어두워졌다. 헤드 랜턴을 머리에 착용하고 밧줄을 등에 지고 가파른 절벽 바위를 기어올랐다.

시야에서 사라지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밧줄을 타고 내려오면서 수색에 들어갔다. 떨어진 곳으로 짐작되는 나무까지 올라서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밤 9시가 되어서 포기하고 돌아서야 했다. 축 처진 어깨를 어루만지며 내일 다시 찾아 주겠다고 용기를 줬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온통 금강이 뿐이었다. 

 충남산악구조대 대원들이 3회에 걸쳐 드론 찾기에 나서주었다. 이 자리를 통해 감사드린다.
 충남산악구조대 대원들이 3회에 걸쳐 드론 찾기에 나서주었다. 이 자리를 통해 감사드린다.
ⓒ 김종술

관련사진보기


9일 지인의 후배인 전문산악인 다섯 명이 도움을 주기로 했다. 오후 3시부터 다시 바위산을 오르고 나뭇가지까지 흔들어 보았지만, 발견되지 않았다. 순식간에 날이 어두워졌다. 수색대의 안전을 생각해서 수색을 다음 날로 미뤘다.

10일 산악인 아홉 명이 총출동했다. 낮부터 로프를 걸고 오르락내리락하기를 수차례, 금강이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 빗방울이 흩뿌렸다. 저녁부터 많은 비가 온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이젠 포기해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촉촉이 눈가가 젖었다.

금강이를 생산하는 회사에 이메일로 구제를 신청했다. 조작 실수가 아닌 기체 결함으로 보이는 에러가 발생하여 일어난 사고로 분실 보상을 요청했다. 그러나 최근에 같은 기종을 소유한 지인도 복귀 도중 에러가 발생하여 분실 보상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이 밤, 한 줄기 희망의 빛을 기다려본다. 마지막 희망은 기체결함 분실보상이다. 4대강 적폐 청산의 동반자였던 금강이는 하루빨리 금강으로 귀환하라.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