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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부엌 식탁에 앉아있다. 우리 집에서 가장 밝은 곳이 부엌이다. 책방의 조명은 노리끼리해서 계란 노른자 속에 있는 기분으로 조금은 단백하지만, 장시간 있다 보면 아무래도 눈이 퍽퍽해진다.

집에 와 부엌 식탁에 앉으니 이제야 조금 흰자도 같이 맛보는 균형 있는 달걀프라이를 먹는 기분이(아닌 게 아니라 달걀프라이 먹고 싶)다. 시야가 밝으니 잠도 달아났다. 잠이 달아났으면 난 할 일이 있다. 뭐냐고? 뭐긴, 책방일기를 쓰는 것!

그렇다. 나도 책방일기를 부엌 식탁에서 쓴다. 왜 나도 냐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부엌 식탁에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썼다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오해 마시라.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따라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원래 부엌 식탁에서 글 쓰는 걸 좋아한다. 왜냐하면 우리 집 부엌에는 언제나 과자와 볶은 땅콩이 있으니까.

손을 뻗으면 닿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실 수도 있다. 맥주와 함께 볶은 땅콩은 내 입으로 들어간다. 우리 집 고양이들도 부엌을 좋아하니 식탁에 놓인 노트북에 올라와 delete 키를 눌러 쓰던 중인 글을 지운다. 웽? 아니 아니 글을 잘 쓰라며 내 손등을 핥아주고는 간다. 밥솥도 옆에 있으니 글을 쓰다 출출하면 바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반찬은 계란프라이(글은 언제 쓰냐?).

 최근 발행된 여섯 번째 영향력. 표지는 모음을 빼고 자음만으로 영향력을 나타내고 있다.
▲ 여섯 번째 영향력 최근 발행된 여섯 번째 영향력. 표지는 모음을 빼고 자음만으로 영향력을 나타내고 있다.
ⓒ 영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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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먹기에 알맞은 간식들이 있는 부엌 식탁에 앉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이제 그만 쉴 만도 한 그 시간에, 나는 (그리고 당신도) 글을 쓰고 있다. 이 익숙한 장소는 글을 쓰는데 어떤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런 글들이 독립출판물 '키친테이블라이팅 계간 문예지 <영향력>'에 실려있다.

<영향력>은 작년 봄 1호를 시작으로 계절마다 어김없이 발행되어 최근 6호까지 나왔다. 책방에 많은 독립잡지들이 있지만 <영향력>만큼 꾸준한 잡지가 없다. 아주 폭발적인 사랑을 받는 건 아니지만 꼭 잊지 않고 찾는 이들이 있다. 문학 감수성이 넘치는 이들로 누군가의 식탁 위에서 적은 글들이 궁금한 독자들이다.

그리고 그 독자들의 눈빛에서 '나도 부엌 식탁에서 (땅콩 좀 씹으며) 글 좀 쓰는데 이 지면을 채우고 싶다'라는 소망이 느껴진다. 그 소망의 영향을 받아 <영향력>은 매 호 독자들의 투고로 만들어지고 있다.

아마추어의 글이지만 단단한 글로 채워져 있다. 어떤 호를 집어들든 영향받을 만한 글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난 편집진이 <영향력>에 쏟는 노고를 짐작해 본다. 수많은 글에서 고르고 고르는 일. 대충 해서는 지금의 <영향력>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영향력>1호에 은미향 편집인은 이렇게 적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진지하게 계속해보려고 한다.' 그 진지함이 1~6호까지 59편의 시와 17편의 단편소설, 18편의 초단편 소설, 5편의 장르소설과 11편의 산문, 연재 중인 1편의 장편과 8편의 미완의 글 그리고 편집인의 말 6편을 만나게 했다.

그 꾸준함이 나에겐 재고의 부담을 주었지, 아니 아니 최근 판매가 매우 수월합니다. 그러니 계속 힘내 주세요. 영향력!

자 이제 독자들이여, 영향력을 발휘해 보시라~ <영향력>은 전국의 독립책방에서 구입할 수 있답니다.

 시와 소설 산문 장편소설이 연재된다.
▲ 여섯 번째 영향력 목차 시와 소설 산문 장편소설이 연재된다.
ⓒ 황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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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독립출판물로 6호까지 나온 계간문예지 키친테이블라이팅 <영향력>에 많은 영향력을 발휘해주세요



여섯 번째 영향력

영향력 편집부 지음, 밤의출항(2017)


태그:#영향력, #키친테이블라이팅, #계간문예지, #이후북스, #독립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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