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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이 습한 기온으로 땀띠가 가시지 않던 날 더위를 좀 잊을 겸 소설 <홍어>를 집어 들었다.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먼지가 내려앉고 빛바랜 책갈피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껏 수십번을 이사하면서도 버리지 못했던 오래된 친구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책들.

남편은 이상하게도 이사할 때마다 무겁고 더 이상 읽지도 않으면서 방 한구석에 자리를 차지 하고 있는 책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그때마다 버리라고 성화였지만 결코 버릴 수 없다고 차곡차곡 박스에 담아서 끌고 왔다. 우울할 때나 기쁠 때나 가슴 한켠에 허전한 바람이 불 때면 책 만큼 위로가 되는 것이 없었다.

이날도 그랬다. 갑자기 늘어난 체중 때문인지 목줄기로 흘러 내리던 찐득한 습기가 주는 불쾌감을 안고 소설 <홍어>와 씨름하였다. 햇빛에 노랗게 타버린 책장을 한장한장 넘기면서 그제서야 잊혔던 홍어를 알았고, 숨어 있던 기억의 파편이 조각조각 살아나기 시작했다.

시어머니가 만들어준 홍어찜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는 없던 입맛도 살아 나더니만 낳고 나서는 입맛이 똑 떨어졌다. 무얼 먹어도 맛이 없고 힘을 쓰지 못했다. 산후조리가 끝나도 돌아오지 않는 입맛 때문에 피죽 한 그릇도 못 먹은 사람처럼 누렇게 뜬 얼굴로 시댁을 방문했다.

시댁과 가까이 살아서 주말마다 찾아뵙는 경우라 어쩔 수 없이 그날도 가게 되었는데 시어머니는 입맛 없어 하는 나에게 한 상 그득 차려 주셨다. 특히 홍어찜과 죽순 초무침은 새콤하니 입맛을 돌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홍어인지 가오리인지 잘 모르겠지만 홍어라 생각하고 싶다. 

그렇게 안 보면 궁금하고 애 쓰고, 서로 아리고 쓴 정이 다 들 때 쯤 우린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서울살이 20년이 지난 지금 남편의 바람대로 다시 부산으로 왔다. 돌덩이가 구르던 온천천은 그 사이 새롭게 단장되었고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탈바꿈되었다. 하천 위로는 기차가 지나가고 그 옆에 우리가 살게 되었다.

칙칙폭폭 기찻길(지하철)옆 우리집은 금정산이 훤히 내다 보이는 정경 좋은 20층 꼭대기층에 위치하다 보니 오밀조밀 동네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나마 고즈넉한 저녁 풍경과, 작은 골목 사이사이로 일렁이는 사람 사는 냄새가 풍겨와서 좋았다. 기차가 지나갈 때면 소음으로 인하여 남편은 싫어했지만 어쩐지 나에게는 고향의 소리가 있다면 이런 소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히려 정겹게 들렸다. 그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와 조금은 시궁창 냄새가 나는 것도 그다지 나쁘진 않았다.

하천을 따라 15분 정도 걸어가면 시어머니 집이 나온다. 우리 부부는 다시금 그 옛날로 살고 있다. 십여년 동안 부산에서 살아서인지 막상 돌아와 보니 그래도 살만했다. 매주마다, 홀로 계시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외식도 하고, 이것저것 챙겨드리려고 애쓰고 있다.

꼿꼿하던 허리가 90도로 굽으셔서 힘들다며 처음에는 나가시는 것도 마다 하셨지만, 막상 바깥 바람 쐬며 초록으로 물든 가로수와 꽃길이 눈에 들어오자 살가워 하셨다.  "세월이 흘러 또 봄이 오고 여름이 왔구나. 나는 이렇게 늙었고 너희들은 새롭게 또 피어나는구나." 하시는데 왠지 짠했다. 누구나 늙음을 막을 수 없을 테니까.

시어머니의 기억은 어떨까

시어머니는 아직 나에게 현관문을 활짝 열어 놓고 계시지는 않는다. 당신이 사시는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으신지 막내 며느리 보기에 민망함인지 얼른 가라고 손짓으로 막으시는데 도리가 없다.

자식집에 오시기도 하련만 절대 오시려 하지 않는다. 맏아들도, 맏며느리도 아닌 막내여서 그럴까. 집집마다 아픔이 없는 집 없듯이 아픈 속 마음을 이렇게 밀쳐 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연로하셔서 청소든 설거지든 식사거리가 걱정이 되는데, 아직은 너희들이 걱정할 필요없다고 밀쳐내는 것이다. 

옆에 늘 계시던 분이 안 계시면 어떨지. 시아버님의 버럭하시는 성격으로 종종 밥상머리 싸움도 하셨지만 속정이 깊으신 분이었다. 시어머니께서 식사라도 소홀하다 싶으면 이것저것 끔찍이도 챙겨 주시던 시아버님이셨다.

지금은 한줌 흙이 되어 현충원에 계신다. 평소엔 살갑게 안아드리지 못하다가 한줌 재로 돌아왔을 때 현충원까지 안고 가면서 전해오던 그 따뜻함을 남편은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시어머니의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 감히 이해한다 할 수 없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온도는 알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어느 순간 모든 것을 걸어 잠구셨다. 현관만이 아니라 마음 속까지 빗장을 걸어 두시고 밖으로 나오지 않으셨다. 다 자식들의 불찰로 그리 되었지만 다시 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것을 우리 부부가 조금씩 열려고 한다. 우리라도 해야 되니까. 더 늦기 전에 말이다.

소금밭처럼 하얗게 펼쳐진 시골 풍경 위로 가오리연을 날리며 성장해가는 소설 <홍어> 속의 소년은 어릴 때 우리의 모습이다. 산골에서 자랐던 나의 어린 시절과 몹시 흡사하다. 그래서인지 애착이 가는 소설이기도 하다.

기다림과 그리움이 응집된 채 하얀 서리 위로 발자국을 찍던 나의 어린 시절도 그랬다. 어린 아이의 그리움이 무엇이었을까. 난 늘 그리웠고 도도했었다. 사는 것이 힘들어 아기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자라면서, 부모님이 그리웠고 형제자매가 그리웠고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그 길이 즐거웠으면서도 돌아올 때면 그리웠던 것이다.

결혼하여 시부모님과 매주 만나서 식사하고 이것저것 별 이야기 거리가 없으면서도 손주재롱에 또 한번 웃고 그렇게 수다를 떨며 보냈던 시간들이 하나둘 밤하늘의 별마냥 떠올랐다 사라졌다 한다.

송정 바닷가며 해운대를 거닐던 모래사장도 이젠 아릿한 아픔과 행복했던 순간이 모래알 처럼 서걱거린다. 이 모든 걸 시어머닌 기억하고 계실까. 서로 다른 이미지로 저장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돌이켜 보면 다 애정 어린 살가운 정이 깃들었다.
 
아마도 아버지가 돌아오리라는 어머니의 믿음과 기대였던 소설 <홍어>는 그리움과 사라져가는 가족 간의 정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 또한 한 시대의 부모로서 며느리로서 사랑과 정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아니 그렇게 살아 가라고 은연중에 바라는 것이다.  

오늘 같이 더운 날 상큼한 초고추장에 시어머니의 홍어찜이  먹고 싶다. 자갈치 시장에 가면 있을라나 한번 가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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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보고 느낀점을 수필형식으로 써보고 싶습니다. 제이름으로 어느곳이든 글을 쓰고 싶었는데 마땅한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던중 여기서 여러기자님의 글을 읽어보고 용기를 얻어 한번 지원해보고 싶어졌습니다. 김해등님의 글이 자극이 되었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이런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 실력은 없습니다. 감히 욕심을 내보는 것이지만 그래도 한구석엔 이런 분들과 함께 할수 있을만큼 되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