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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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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5일, 마광수 교수가 세상을 등졌다. 향년 66세, 늙었다면 늙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요즘 시대에 떠나가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였다. 하지만 그 이른 나이보다 더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만드는 것은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다.

유족과 지인들에 따르면 그간 마광수 교수는 정신적 우울감과 신체적 고통에 경제적 사유까지 겹쳐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고 한다. 생전에 언론에서 보인 그의 존재감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쉬이 받아들이기 힘든 이별이다.

마광수라는 인물은 우리 사회에 어떻게 기억되어 있는 존재일까. 그의 사망 소식은 보도 직후 각종 포털 사이트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 이름 석자가 모든 웹사이트의 검색 순위 최상단을 점령했다. 그리고 그런 그와 함께 검색어 순위권에 오른 작품들은 <즐거운 사라>, <가자, 장미여관으로> 등이었다.

마광수 교수 저 <즐거운 사라>
 마광수 교수 저 <즐거운 사라>
ⓒ 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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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는 마광수라는 인물을 분명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 중 하나로서 인식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앞장서 사회의 엄숙주의에 저항하며 '성애문학'의 상징으로서 이해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대표작들은 과연 어떤 작품들일까. 언급한 대표작 <즐거운 사라>의 경우 '마광수'라는 이름 석자를 처음 전국적으로 알린 1992년 경의 '필화사건'의 주범이 된 책이다.

작품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유복한 집안의 딸로 태어난 '오사라'라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가족이 모두 미국으로 떠나게 되는 것을 계기로, 그녀는 '혼자만의 생활'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로서 성인클럽에서 댄서로서 일하게 되는데, 이후 여러 경험을 거쳐 '성에 눈을 뜨고, 이를 즐기면서 몸을 파는 여학생'으로 변모해 간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그리고 당대에도 보수적인 한국사회 밖에서 이정도 수위나 소재의 문학은 상당히 흔하게 존재하고, 꽤나 널리 읽히는 장르이다. 물론 이런 줄거리에 더해 <즐거운 사라>에는 매우 노골적인 묘사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와 다를 바 없는 작품 형태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같은 인물은 자신의 조국과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계의 거장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당대 보수적인 한국의 학계와 사회 분위기는 명문 대학교의 교수라는 인물이 이 같은 글을 출판한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그 결과 마광수는 연세대학교 문단에서 강연 도중 학생들 앞에서 체포되어 끌려나가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음란문서 유포' 혐의로 법정 재판에 까지 다다른 것이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사법부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실형 판결을 내리며 마광수를 교수직에서 퇴출되게 만들었다. 이는 한국 문학사에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마광수라는 한 개인의 인생사에서는 더욱 큰 비극이었다. 그는 1998년 복직된 뒤로 다시금 교편을 잡아오던 연세대학교에서 은퇴할 당시, '내 인생이 너무 억울하고 한스럽다'고 회한에 잠긴 소감을 남겼다.

대학 동료들의 따돌림, 문단에서 왕따가 된 현실, 그리고 무조건 자신을 변태로 매도하는 대중들에 시달리며 자신의 몸과 마음이 갈수록 아파만 간다는 것이다. 근 20여 년에 걸친 세월의 흐름도 사회의 변화도 마 교수가 입은 상처를 없는 것으로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의 학문적, 교육자적 지위를 짙밟은 당시 판결문은 '이 판결이 불과 10년 후에는 비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판사로서 현재의 법 감정에 따라 판결할 수밖에 없다'라고 명시하였다. 이문열과 같은 문인들은 앞장서 <즐거운 사라> 등에 맹공을 가하며 적극 공격했다. 주류 언론들도 동참하여 마광수에 대한 비판적 여론 형성을 주도했다. 

항소심에서 중립감정인으로 선임된 안경환 당시 서울대 교수(불과 얼마 전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지만 저서 내의 여성비하 표현, 당사자 동의 없는 혼인신고 등으로 논란이 돼 사퇴한 인물)는 '마광수 소설은 법적 폐기물'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회 각계 기득권층의 위치에서 예술, 혹은 학문의 입을 막고 조롱하는 모습이 당시에는 만연했다. 그 앞에서 어디에도 소속되거나 굽히지 않고 자유로움을 즐기며 살던 개인 마광수는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무렵, 우연히 교정에서 마 교수를 뵌 적이 있다. 당시 어린 나이에, 이름을 자주 들어본 몇 안 되는 유명한 교수님을 만났다는 마음에 반가워 달려가 인사를 청했다. 그렇게 처음보는 풋내기가 달려와 하는 인사에도 그분은 매우 정중히 함께 인사해 주셨고, 그 모습에 산뜻한 기쁨을 느꼈다. 그 후 얼마안가 그분은 은퇴하셨다.

당시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기에, 마광수 교수님의 떠남과 그 삶에 짙고 길게 드리웠던 억압이 더욱 서글프게 느껴진다. 부디 떠나간 곳에서는 핍박없이 자유롭게 원하는 글을 쓰시고 사랑받기를 기도한다.


2013 즐거운 사라

마광수 지음, 책읽는귀족(2013)


태그:#마광수, #문학,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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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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