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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소와 석면은 폐의 악성중피종, 염화비닐은 간의 혈관육종, 납.수은.망간은 파킨슨 효과, 시신경장애는 메칠알코올, 노말헥산은 말초신경염. 산업의학 직업성 질환 시간에 달달 외운 병인과 병명이다.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
ⓒ 나름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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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떤 경로로 위험에 노출이 되었는지, 어떠한 산업현장에서 일어난 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 당연히 피상적으로 외운 것들은 잊히기 십상인지라 1년도 안 되어 많은 것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머릿속에 다른 과목으로 채워지는 찰나에, 노동자들의 건강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시는 선생님이 책 한 권을 던져주셨다. 표지 색깔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지, 틈나는 시간마다 이 책을 펼쳐보았다.

"나는, 당신은 무슨 일을 합니까."
"우리의 질병은 어디에서 왔나요."
"우리에게 일터는 행복입니까, 고통입니까."
"건강한 삶을 위해 우리에겐 어떤 일터가 필요한가요."

프롤로그에서 던져주는 질문들에 답하기는 참 어려웠다. 일터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직접 느껴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의대생들과 함께 '삼성반도체' 산재피해자 농성장을 방문한 그때를 되새김질 해보며 나의 감수성을 다시 끌어내보았다. 그리고 간접적으로나마 책을 통해 모든 현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1. 죽음의 먼지 석면 그리고 악성중피종

현재 석면 생산은 모두 중지되었지만, 1990년대 부산 제일화학의 석면공장 근로자뿐만 아니라 공장 인근 주민들은 아직까지도 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한다. 석면폐의 경우, 고농도의 석면 노출에 의한 폐질환이지만, 악성 중피종은 저농도의 짧은 기간 석면 노출로 인해 20~30년 이후에 생기는 암이다. 이렇게, 석면질환은 과거의 문제이자 현재의 문제이기도 하다.

부산에는 아직까지 석면으로 세워진 건물들이 많다. 대규모 철거와 해체로 인해 많은 석면분진이 동네주민들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불법해체를 하는 도중에 발각된 업체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부과할 과징금은 30년 뒤에 일어날 재앙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작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책에서 보여주는 현실은 개탄스럽다. 한국에서 중단된 석면 산업은 인도네시아로 수출되어, 2008년에는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제일화학 노동자들과 똑같은 증언이 반복되었다고 한다. 석면은 아직까지도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2. 광부들의 진폐증과 레이노 증후군

진폐증은 흑연, 철, 규석, 석탄 등의 먼지가 폐를 딱딱하게 만들어 점점 호흡하기 어렵게 만드는 질환이다. 레이노 증후군은 추위나 스트레스에 노출되었을 때 손가락에 혈류가 급격히 감소하여 고통을 동반하는 질환이다. 자연치유 되지만, 스트레스가 지속될 경우 악화된다.

1960년대~1970년대 경제발전에 꼭 필요했던 싸고 좋은 석탄은, 한때 몸이 튼튼했던 광부들의 폐와 손가락을 맞바꾼 것이다. 책에서는 진폐 병동 의사가 직접 광부의 직업을 체험하기 위해 깊은 굴속으로 들어간다. 환자를 조금이라도 알기위해 들어간 의사 이야기도 감동적이지만, 완벽한 어둠과 습하고 뜨거운 공기를 버텨낸 진폐 할아버지들의 용기는 상상하기 어렵다.

질병 정도에 따라 갈리는 국가보조금 탓에 매번 온몸에 돌가루를 바르고 오는 할아버지를 보며, 비쩍 말라가는 진폐 할아버지들의 유일한 생명수단인 국가 보조금이 그들의 용기를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3. 독성간염(DHF)

DMF(디메클로포름아마이드)는 우리나라에서 합성피혁, 섬유코팅, 스판덱스 제조 업종에서 많이 다루고 있다. 특이체질일 경우 간독성은 더욱 심해진다고 한다.

간염은 몸속에 들어온 약제, 식품, 화학물질 등을 해독하는 과정에서 간세포가 심하게 손상된 상태이다. 사실, 간기능이 떨어지는 원인은 직업적 이유보다는 술과 관련되었거나 바이러스성 간염, 비만과 같은 다른 이유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즉, DMF와 같은 유기용제로 인한 독성간염은 흔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책에서는 안타까운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2001년 조선족 노동자들의 집단발병 사건이다.

2006년~2007년 부산/김해/순천 합성피혁 및 코팅공정 노동자의 사망으로 부실한 건강검진과 독성물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안일함이 드러났다. 또한 밀폐되어야 할 화학물질 배합공정은 일일이 노동자들의 수작업으로 진행되고 있었다고 한다.

많은 단속과 관리로 지금은 DMF 독성간염의 사례가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단속과는 거리가 먼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하청 노동자가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다루는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근본적인 것이 해결되지 않는 한, 언제 뇌관이 또 터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4. 근골격계 질환(회전근개파열, 디스크 탈출증, 요추간판 탈출증, 근막통증 증후군)

근골격계 주요 질환은 회전근개 파열(어깨를 지탱하는 근육 및 인대파열), 수근관 증후군 (반복적인 손목사용으로 인한 손가락 및 손목저림, 통증), 테니스 엘보, 요추간판 탈출증 등이 있다. 근골격계 질환의 발병률은 IMF 이후 비정규직이 확대되고, 노동강도가 세짐에 따라 증가했다. 결국, 근골격계 질환이 완화되려면 노동강도와 스트레스가 줄고, 쉬어야 한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휴식이란 사치다. '인간다움'은 어떤 노동을 하는가에 따라, 같은 노동을 하더라도 어떤 고용 관계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책에서 잠깐 언급되긴 하지만, 최근 들어 많은 이슈로 떠오르는 '급식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은 참담하다.

매일매일 기름이 튀고, 뜨거운 증기와 열기를 이겨내야 하지만, 급식조리원의 노동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가사노동'처럼 평가절하 된다. 결국 매일매일 쏟아지는 일에 아파도 아파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미덕이 되어 버렸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과 함께 심각한 통증이 엄습되어야만 결근을 고려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은 우리 국과 밥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안전한 사회를 허공에다 외쳐대지만 말고, 여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라.

5. 과로사

심장과 뇌에 생긴 심근경색증이나 뇌경색, 뇌출혈이 주 원인이다. 주로 극단적인 노동시간과 많은 일이 주어진 상황, 장시간 노동과 휴일 없이 연속해서 일한 사람들에게 해당한다. 야간 노동자의 경우 비만, 수면장애, 심혈관 질환의 위험도가 증가한다.

책에서 말하길, 여성노동자, 집배원, 택배기사, 게임개발자까지 한해 수백 명의 직장인이 과로사로 살해 당하고 있다고 한다. OECD 나라 가운데 가장 많은 노동시간(2위를 육박)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기업 회사원에게는 휴가와 주말, 정시퇴근, 인력충원은 먼 이야기다.

이러한 저열한 제도 아래에서 장렬히 산화 당한 노동자들은 성실하고 회사밖에 몰랐던 사람, 직장인의 모범, 가장의 전형 등으로 미화된다. 영원히 돌고 있는 쳇바퀴 안에서 말이다.

6. "1베이는 불임, 2베이는 불임, 난소제거, 3베이는 뇌종양, 4베이는 유방암, 폐질환 및 아들의 심장질환. 8베이 갑상샘 항진증, 9베이 백혈병. 증설된 신설베이에는 갑상샘암, 심장질환, 탈모 포상기태"

위의 질환들은 화학물질 노출에 의한 호르몬교란, 세포변성, 다양하며,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쉽게 걸리기 어려운 질병들이다. 모두 삼성반도체, LCD 집약공정 산재피해자들의 몸에서 생긴 것들이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제조업은 이른바 집약적이고 깨끗한 산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수십 수백종의 화학물질을 내뿜는 '화학물질 집약산업'이다.

삼성 반도체 피해자들을 지키고 있는 '반올림'의 이야기가 책에서 나온다. 그들이 수십 번, 수백 번 주장하는 것은, 삼성에서 지급하는 방진복은 노동자의 건강이 아닌 제품을 위한 작업복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맞는 것인지, 현재까지 79명의 사망자와 약 200명의 피해자가 이어지고 있다. 바뀌지 않는 산업 환경은 계속해서 노동자들의 생명을 앗아 가고 있다. 현장을 둘러보고 나니, 사실 학교에서 배운 '산업의학'은 직업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건네준 귀중한 자료들이었다. 결국 교재를 뒤적거려가며 다시 익혀보았다.

석면=악성중피종=제일화학 산재피해자. 석탄=진폐증=진폐 할아버지. 근골격계질환=비정규직 조리급식 노동자. ,벤젠 및 vocs=백혈병, 뇌종양=삼성반도체 피해자. 독성간염=DHF=조선족 노동자. 뇌출혈, 심장질환=과로사=수백명의 직장인.

그리고 프롤로그에서 던져준 질문에 답해본다.

"건강한 일터는 기업과 사회의 몫이며, 당신이 아픈 이유는 당신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프다고 주눅 들지 마세요. 굴뚝으로 들어간 의사들이 다시 나와서 당신의 목소리를 더 크고, 더 선명하게 만들어 줄 것이니까요."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 일하다 죽는 사회에 맞서는 직업병 추적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 나름북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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