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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 우리는 이 말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대부분 무보수로 이뤄지는 가사노동은 현실적으로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다. 심지어는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 중에도 남편의 배려가 없는 한 가사노동은 오롯이 짊어져야 하는 자신만의 것이 돼 버린다.

남자들은 운전을 하다 여성 운전자의 서툰 운전솜씨 때문에 자신의 갈 길에 방해를 받는다 싶으면, 앞지르기를 하면서 창문을 열고 외친다.

"아줌마! 집에 가서 밥이나 해!(혹은 애나 봐)"

과연 이 비성숙한 언행이 그럴 듯한 것인가. 밥 하는 일과 애기 보는 일은 여자가 한다는 전제가 바탕이 되어야 할 수 있는 말이다. 또 다분히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밥하는 아줌마', '가사 도우미', '육아 독박'의 여성들에 대한 이런 언행의 근저에는 그간 길들여진 여성비하 사회의 단면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뉴딜 정책이 말하는 여성

<집안의 노동자>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지음 / 김현지·이영주 옮김 / 갈무리 펴냄 / 2017. 8 / 304쪽 / 1만7000 원)
 <집안의 노동자>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지음 / 김현지·이영주 옮김 / 갈무리 펴냄 / 2017. 8 / 304쪽 / 1만7000 원)
ⓒ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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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지금도 남성들의 인식이 그리 달라지지 않은 데서 오는 위와 같은 해프닝은 서글픈 일이다. 요샌 불평등하게 부여된 여성의 지위나 역할의 재고를 외치는 페미니즘이 화두다.

여성의 권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이미 19세기 뉴딜 정책 속에 있었다.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에 기대지 않아도 이미 뉴딜정책은 집안에서 이뤄지는 여성들의 일을 가치 있는 것으로 다뤘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미국의 진보시대를 거치며 형성된 여성정책에 대한 연구서가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의 <집안의 노동자>이다. 이 책은 1929년 불어 친 세계 대공황과 1930~1940년대의 뉴딜정책 속 여성정책을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책을 쓴 목적을 이리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쓴 목적은 뉴딜 관련 문헌에서 빠진 부분을 살펴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이 시행한 정책에서 여성과 국가의 관계 및 가족과 여성의 역할을 밝히고자 한다." - 17쪽

책에 따르면, 뉴딜은 국가와 여성이 맺고 있는 관계, 남편을 회사로 출근시킬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여성이 집안에서 노동을 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러니까 여성이 하는 무급 재생산 노동으로 자본주의 성장 계획이 수립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간 소외되었던 혹은 인정해 주지 않았던 여성의 가정에서의 역할에 긍정적 신호를 보낸 최초의 정책이 바로 뉴딜정책이다. 국가와 노동계급간의 포괄적 합의에 여성도 포함되게 된 것이다. 재생산의 보장을 위해 가족을 돌보고 가사를 하는 여성이 국가의 경제발전에도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등장한 합의다.

여성에게 급여를 주진 않았지만 포드(포드자동차)는 여성이 반드시 결혼해서 주부로서 자기 회사원들의 임금을 관리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국가의 보조자, 회사의 보조자, 남편(임금노동자)의 보조자 그 이상은 아니었다.

책은 산업화로 인해 가전제품이 발달되어 가사를 도왔지만 여전히 여성은 가사노동에 시달려야 했음을 지적한다.

"일련의 중요한 기술혁신이 가정에서 시행되는 동안 사회과학은 가정에서 이뤄진 기술 합리화의 중요성을 이전보다 축소시켰다. 사회과학은 전적으로 여성의 역할, 즉 헌신과 희생 능력을 주요 주제로 삼았다." - 48쪽

이를 저자는 '미국 여성에게 헌신적인 노동은 매우 복잡한 문제'라고 말한다. 집안에서 가사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여성들이 심지어는 자신이 역할을 잘못해 남편이 성공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죄책감까지 갖게 된다고 말한다.

대공황과 가족의 붕괴 그리고 여성

저자는 그나마 고개를 들던 여성에 대한 자의식이 1930년대를 휩쓴 대공황으로 망가져 버렸다고 말한다. 아이들 교육을 중단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얼마간의 수입을 위해 매춘을 하는 주부들까지 생겼다고 말한다. 이런 가정의 비정상화가 또 다시 경제발전이란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1930년대 실직 노동계급이 가족 붕괴를 겪으면서 여성, 남성, 청년이 가족을 포기하였다. 어쩔 수 없이 가족을 포기한 어머니들은 많은 경우 불가피하게 매춘을 하게 되었고, 정상적인 삶의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사생아 출산이 증가했다." - 126쪽

이와 같이 경제와 국가, 가족과 여성은 맞물리는 톱니바퀴와 같은 것이다. 어느 한쪽만 생존할 수 없다. 오늘날도 페미니즘이 이런 각도에서 전개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무너진 가정의 대안적 가족 구조는 1960년대에 이르러서 여성운동으로 재기되었다. 이후 여성이 가족을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 확산되었다.

대공황으로 암울했던 즉 남편이 직장을 잃은 때에도 여성은 항상 '근무 중'이었다는 저자의 표현이 여성의 존재성을 실감나게 만든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안간힘을 썼던 여성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에도 불구하고 항상 근무 중이었다.

저자는 여성운동을 두 가지 관점에서 말한다. ▲집밖에서 고용되지 않았던 대다수의 여성으로, 이들은 구제 프로그램이나 고용주에 의존하는 남성 옆에서 싸웠다. ▲집밖에서 일했던 여성으로, 이들은 대규모 세력을 형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재계층화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즉 흑인이나 여성은 가장 먼저 실직하게 된다는 의미다.

뉴딜정책이 시행될 당시나 지금이나, 미국이나 한국이나 "가족과 여성을 사회조직의 중심축으로 삼아 노동력을 통제하려는 욕망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는 저자의 말이 실감난다. 그러면서도 여성을 비하하거나 얕잡아보는 건 무슨 자가당착인지 모를 일이다.

부의 편중, 노동자의 투쟁, 노동현장의 차별, 여성에게 강요되는 재생산 무급 노동 등은 시대를 불문하고 우리 사회의 문제다. 뉴딜정책과 대공황 시대의 연구인 이 책을 보며 우리가 사는 시대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여성 자체로서의 여성을 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집안의 노동자>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지음 / 김현지·이영주 옮김 / 갈무리 펴냄 / 2017. 8 / 304쪽 / 1만70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집안의 노동자 - 뉴딜이 기획한 가족과 여성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지음, 김현지.이영주 옮김, 갈무리(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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