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1994년 마광수 교수가 연세대에서 강의하는 모습.
 지난 1994년 마광수 교수가 연세대에서 강의하는 모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나는 학내언론사 활동에 푹 빠져 자체 휴강을 밥 먹듯이 하던, 불성실한 대학생이었다. 그랬던 내가 자발적으로 청강까지 하면서 열정을 보였던 수업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마광수 교수님의 '연극의 이해'.

마광수 교수님의 수업을 청강했던 2013년 무렵, 당시 나는 대학 교육이란 것에 크게 실망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수업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소통이 실종된 지루하고도 뻔한 강의. 거기에 덧붙여진 고리타분한 교수들의 권위적인 설교. 그런 것들로는 도저히 내 지적갈증을 해소할 수 없었다.

'마광수 교수'에 대한 오해

'비싼 등록금을 내가면서 내가 대체 뭐하고 있는 걸까'라는 고민에 한창 빠져있던 그때. 마 교수님께 <연세춘추>(연세대 대학언론사) 취재와 관련한 조언을 들을 일이 있어서 몇 번의 연락을 주고받으며 인연을 맺게 됐다.

대학언론사 기자로 활동하다보면 여러 교수님들께 자문이나 조언을 구할 일이 잦다. 그런데 조금 유명하다 싶은 교수들은 취재요청을 무시하기 일쑤다. 거절도 아닌 무시. 몇 번이나 공손하게 연락을 드려도 이렇다저렇다 답조차 안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어디 그뿐인가. 다짜고짜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며 시비를 걸어오는 교수들도 간혹 있었다. 이런저런 희한한 교수들에게 시달리다가 알게 된 분이 바로 마광수 교수님이었다.

마광수 교수님은 달랐다. 별것 아닌 질문에도 성심성의껏 답변해주셨고, 학생 기자에 불과한 나를 인간적으로 존중해주셨다. 사실 나도 마 교수님과 직접 소통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냥 변태 기질 있는 별난 교수'쯤으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척 신사적인 모습에 오해가 깨지면서 마광수 교수님이 어떤 분인지가 무척 궁금해졌다. 그래서 당시 휴학생이던 나는 교수님께 청강해도 되겠느냐는 메일을 드려 허락을 받은 뒤 '연극의 이해'를 듣게 됐다.

한국 사회의 '가면'을 질타하던 마 교수

 2013년의 어느 날, 마광수 교수님의 저서에 받았던 사인.
 2013년의 어느 날, 마광수 교수님의 저서에 받았던 사인.
ⓒ 박일훈

관련사진보기


마 교수님이 가장 강조하셨던 말씀 중 하나가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였다. 연세대 교훈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구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다. 연세대가 미션스쿨이기 때문이리라. 마 교수님은 요한복음의 구절에서 '자유'와 '진리'의 순서를 바꿔버리셨다. 이렇듯 자유를 중요시하는 분이다 보니 출석체크 같은 건 당연히 생략.

그러다 보니 개강날엔 넓은 백양관 대강당을 가득 채울 만큼 많던 학생 수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소수정예화 됐다. 수업시작 전 대강당 뒤 전자출결기에 체크만 하고 홀연히 사라지는 학생, 친구들의 학생증을 무더기로 들고 와 대신 찍고서 당연하다는 듯 유유히 떠나가는 학생. 수업시간마다 그런 진풍경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펼쳐지곤 했다.

내가 과제라든지 성적부담이 없는 청강생이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척 배울 게 많은 내 인생 최고의 강의였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출석 찍튀'를 하는 학생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이제는 꽤나 시간이 지나버려서인지 그때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들이 아주 구체적으론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 느꼈던 지적 자극과 황홀함은 여전히 짜릿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발칙함.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금기시되는 바로 그 사고방식. 고로 한국 사회 어디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생각하는 법'. 그것을 마 교수님께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소위 '문돌이'(문과생)로서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지적허영심을 부리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많다. 쉽게 할 수 있는 말도 뭔가 있어 보이게끔, 괜히 어려운 말로 바꿔써야 할 것 같은 느낌. 마 교수님의 수업을 통해 그런 가면이 얼마나 우습고 부질없는 것인지에 대해 알 수 있게 됐던 기억이다.

부디 그곳에서는 평안하시길

 마광수 교수님이 많은 사람들과 활발히 소통하던 마광수닷컴. 이제는 비공개 홈페이지가 되어버렸다.
 마광수 교수님이 많은 사람들과 활발히 소통하던 마광수닷컴. 이제는 비공개 홈페이지가 되어버렸다.
ⓒ 박일훈

관련사진보기


그러한 솔직함에 반해 난 교수님의 팬이 됐고, 종강 이후에도 교수님이 운영하시던 마광수닷컴에도 자주 들어가곤 했었다. 이런저런 무의미한 글들에도 친절히 답변을 해주시며 소통하던 교수님이 무척 좋았다.

그런데 정년퇴임 후 극심한 우울증을 호소하시던 교수님께서 누리집을 닫으시려고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더니 지난해 말엔 오랫동안 운영해온 누리집을 결국 폐쇄하시고야 말았다. 꾸준히 이어오던 작품 활동도 올해 1월에 발간했던 총결산 시집 <시선>을 끝으로 중단하셨다. 모난 돌이 정 맞는 한국 사회로부터 너무나도 많은 상처를 받으셨기 때문일 터.

내 인생 최고의 스승 중 한 분이신 마광수 교수님께서 다시 힘을 내실 수 있길 간절히 바랐는데, 스스로 생을 마감하셨다는 비보를 전해 듣게 돼 너무나도 안타깝다. 비록 마 교수님은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그분 특유의 솔직함과 천진난만함은 그의 작품 속에서 오래오래 기억됐으면. 부디 그곳에선 평안하세요, 교수님.

 지난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댓글6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